0554 新羅의 왜 의식
여창과 여러 장수들이 샛길로 도망하여 돌아왔다. 이 때 신라 장수들이 백제가 지쳤음을 모두 알고 드디어 멸망시켜 남겨두지 않으려 했다. 한 장수가 “안된다. 日本 天皇이 任那의 일 때문에 여러 번 우리나라를 책망하였다. 하물며 다시 百濟官家를 멸망시키기를 꾀한다면 반드시 후환을 부르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으므로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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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54 百濟官家
여창과 여러 장수들이 샛길로 도망하여 돌아왔다. 이 때 신라 장수들이 백제가 지쳤음을 모두 알고 드디어 멸망시켜 남겨두지 않으려 했다. 한 장수가 “안된다. 日本 天皇이 任那의 일 때문에 여러 번 우리나라를 책망하였다. 하물며 다시 百濟官家를 멸망시키기를 꾀한다면 반드시 후환을 부르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으므로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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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54.12 日本書紀(720) Ⓐ
여창이 신라를 정벌할 것을 계획하자 원로가 “하늘이 함께 하지 않으니 화가 미칠까 두렵습니다”라고 간하였다. 여창이 “늙었구려. 어찌 겁내시오. 우리는 대국을 섬기고 있으니 어찌 겁낼 것이 있겠소”라 하고 드디어 신라국에 들어가 久陀牟羅에 보루를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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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54.12 日本書紀(720) Ⓑ
그 아버지 명왕은 여창이 행군에 오랫동안 고통을 겪고 한참동안 잠자고 먹지 못했음을 걱정하였다. 아버지의 자애로움에 부족함이 많으면 아들의 효도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생각하고 스스로 가서 위로하였다. 신라는 명왕이 직접 왔음을 듣고 나라 안의 모든 군사를 내어 길을 끊고 격파하였다. ▐ 50명의 군사로 신라를 습격하려 했었다는 삼국사기(1145)의 설명은 어색하다. 아들을 격려하기 위해 가다가 습격을 받았다는 일본서기(720)의 설명이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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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54.12 日本書紀(720) Ⓒ
이 때 신라에서 좌지촌의 사마노 苦都(다른 이름은 谷智다)에게 “고도는 천한 노비이고 명왕은 뛰어난 군주이다. 이제 천한 노비로 하여금 뛰어난 군주를 죽이게 하여 후세에 전해져 사람들의 입에서 잊혀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얼마 후 고도가 명왕을 사로잡아 두 번 절하고 “왕의 머리를 베기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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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54.12 日本書紀(720) Ⓓ
명왕이 “왕의 머리를 노비의 손에 줄 수 없다”고 하니 고도가 “우리나라의 법에는 맹세한 것을 어기면 비록 국왕이라 하더라도 노비의 손에 죽습니다”라 하였다(다른 책에는 “명왕이 호상에 걸터 앉아 차고 있던 칼을 谷智에게 풀어주어 베게 했다”고 하였다). 명왕이 하늘을 우러러 크게 탄식하고 눈물 흘리며 허락하기를 “과인이 생각할 때마다 늘 고통이 골수에 사무쳤다.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구차히 살 수는 없다”라 하고 머리를 내밀어 참수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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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54.12 日本書紀(720) Ⓔ
고도는 머리를 베어 죽이고 구덩이를 파 묻었다(다른 책에는 “신라가 명왕의 머리뼈은 남겨두고 나머지 뼈를 백제에 예를 갖춰 보냈다. 지금 신라왕이 명왕의 뼈를 북청 계단 아래에 묻었는데 이 관청을 도당이라 이름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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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54.12 日本書紀(720) Ⓕ
여창은 포위에서 빠져나오려 하였으나 나올 수 없었는데 사졸들은 놀라 어찌 할 줄 몰랐다. 활을 잘 쏘는 사람인 축자국조가 나아가 활을 당겨 신라의 말 탄 군졸 중 가장 용감하고 씩씩한 사람을 헤아려 쏘아 떨어뜨렸다. 쏜 화살이 날카로워 타고 있던 안장의 앞뒤 가로지른 나무를 뚫었고 입고 있던 갑옷의 옷깃을 맞추었다. 계속 화살을 날려 비오듯하였으나 더욱 힘쓰고 게을리 하지 않아 포위한 군대를 활로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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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54.12 日本書紀(720) Ⓖ
이로 인해 여창과 여러 장수들이 샛길로 도망하여 돌아왔다. 여창이 국조가 활로 포위 군대를 물리친 것을 칭찬하고 높여 “안교군”이라 이름하였다(안교는 우리 말로 くろじ라 한다). 이 때 신라 장수들이 백제가 지쳤음을 모두 알고 드디어 멸망시켜 남겨두지 않으려 했다. 한 장수가 “안된다. 일본 천황이 임나의 일 때문에 여러 번 우리나라를 책망하였다. 하물며 다시 백제관가를 멸망시키기를 꾀한다면 반드시 후환을 부르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으므로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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