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7~0668 맥고려와 낙랑고려의 제사
맥고려 때 宗廟, 靈星, 社稷 그리고 隧神에 대한 숭배가 나타나고 낙랑고려 때 日神, 可汗神 그리고 箕子神에 대한 숭배가 나타난다. 기자가 조선으로 갔다는 때는 -1046년경인데 맥고려 때는 기자 숭배가 없다가 낙랑고려에 와서야 나타난다. 이것은 고려가 평양 천도 이후에 낙랑의 기자 숭배를 계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단군 숭배는 맥고려는 물론 낙랑고려에서도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낙랑고려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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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2 高麗史(1451)
▐ 기자는 낙랑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소재였다. 따라서 낙랑에서 그를 숭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낙랑을 병합한 고려도 기자를 숭배했다고 기록에 나온다. 왕씨고려에 이르러 기자의 무덤은 물론 사당도 없었다는 것은 고려의 문화가 신라와 그 뒤를 이은 왕씨고려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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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사
삼국지(289)에는 靈星과 社稷에 제사지낸다고 되어 있는데, 구당서(945)에 와서는 靈星神·日神·可汗神·箕子神에 제사지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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