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기(BC91) 요약
❶ 기원전 334년에 燕의 동쪽에는 조선 및 요동이 있었다. 東有朝鮮遼東
❷ 기원전 300년 이후 燕은 동호를 쳐서 1천여리 물러나게 하고 東胡卻千餘里 조양에서 양평에 이르는 장성을 쌓은 뒤 築長城自造陽至襄平 상곡군, 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그리고 요동군을 설치하여 오랑캐를 막았다. 置上谷漁陽右北平遼西遼東郡以拒胡 이는 천산 산맥까지 영토를 넓힌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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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15 長城
사기에는 진장성이 임조에서 요동까지로 되어 있다. 조양에서 요동까지 구간은 연이 동호를 1천리 내쫓고 쌓은 장성을 물려받았다.┆운양에서 구원까지 길을 통하게 하거나 황하 건너 양산을 기반으로 북쪽을 공략한 것은 모두 흉노를 겨냥한 것이다. 진장성과 관련된 이야기에 나오는 胡나 戎狄은 흉노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장성을 쌓아 확보한 하남은 황하의 남쪽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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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0 ⁺ ◾東胡 朝鮮
사기(-91)에는 진개가 동호를 밀어내고 요동을 차지한 사건과 연나라가 진번과 조선을 복속시킨 사건이 별개로 취급되어 있다.
염철론(-81)에서도 비슷한 내용이지만 동호를 밀어내고 차지한 땅이 천리라는 거리가 더해져 있다.
위략(265)에서는 두 사건이 진개 한 사람이 한 일로 합쳐져 있고 차지한 땅도 2천리의 조선 땅으로 되어 있다.
사기와 위략의 이야기가 충돌하는데, 기록의 연대를 볼 때, 사기를 역사적 사실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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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의 흐름
물의 큰 흐름은 황하인데, 악이다사(鄂爾多斯 Ordos)를 돌아오는 가지를 빼고 감숙에서 동으로 흘러 서안과 태행산맥 남쪽을 지나 바다로 들어가는 흐름만 놓고 보면, '머리는 롱과 촉에 있었고 꼬리는 발해의 갈석으로 빠졌다'는 표현과 일치한다. 하나라 시기에는 태행산맥 남쪽을 지난 황하가 동북쪽으로 흘렀고 상산 구문을 지났다.
'옛 중국의 뫼와 물은 동북쪽으로 흘렀다'는 말이 그러한 사실을 반영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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