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陸과 半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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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북아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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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기(BC91) 요약
❶ 기원전 334년에 燕의 동쪽에는 조선 및 요동이 있었다. 東有朝鮮遼東 ❷ 기원전 311년 이후 燕은 동호를 쳐서 1천여리 물러나게 하고 東胡卻千餘里 조양에서 양평에 이르는 장성을 쌓은 뒤 築長城自造陽至襄平 상곡군, 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그리고 요동군을 설치하여 오랑캐를 막았다. 置上谷漁陽右北平遼西遼東郡以拒胡 이는 천산 산맥까지 영토를 넓힌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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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랑, 대방 그리고 조선의 이동
대동강 유역에 설치되었던 낙랑과 대방은 대릉하 유역으로 옮겨졌다가 다시 역수 유역으로 옮겨졌다. 대동강 유역의 낙랑군에 소속되었던 조선현은 사라졌다가 난하 유역의 북평군 소속 현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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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8~0675 한국과 중국의 충돌
▐ 한나라는 -108년에 차현과 죽령 이북에 각각 진번군과 임둔군을 설치하여 통치하였고 245년에는 옛 진번군 지역을 회복하려다 한국과 충돌한 바 있다. 당나라는 660년에 신라와 함께 백제를 침공하여 왕조를 무너뜨렸고 668년 이후에는 신라까지 삼키려다 충돌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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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15 長城
○ 사기에는 진장성이 임조에서 요동까지로 되어 있다.조양에서 요동까지 구간은 연이 동호를 1천리 내쫓고 쌓은 장성을 물려받았다. ○ 운양에서 구원까지 길을 통하게 하거나 황하 건너 양산을 기반으로 북쪽을 공략한 것은 모두 흉노를 겨냥한 것이다. 진장성과 관련된 이야기에 나오는 胡나 戎狄은 흉노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장성을 쌓아 확보한 하남은 황하의 남쪽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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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8 @흉노 @동호 @오환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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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45¦
이 해에는 (1) 선비와 흉노가 요동을 침공하였다가 遼東太守 祭肜에게 패하여 대부분 죽거나 사로잡혔고 (2) 한나라 군대가 오원관을 나가 오환을 공격했다가 크게 패하여 돌아갔으며 (3) 선비가 上谷과 중산을 침략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약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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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49┆
이 해에는 (1) 맥이 右北平, 漁陽, 上谷 그리고 太原을 침략하자 遼東太守 祭肜이 불러 항복시켰고 (2) 오환의 대인이 내조하였으며 (3) 남선우가 사신을 보내어 변방의 신하가 되겠다고 하였고 (4) 선비가 처음으로 사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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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65┆ 사기와 위략
▐ 위만 이전의 경계에 대해 사기(BC91)와 위략(265?)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사기에서는 燕이 동호를 1천리 내쫓고 요동까지 장성을 쌓았다가 다시 조선과 진번을 복속시켰는데 漢이 패수까지 국경을 물렸다고 되어 있고, 위략은 燕이 조선의 서부 2천리의 땅을 빼앗아 만번한까지 차지했다고 되어 있다. 사기의 기록이 3백년 이상 앞서고 또 동호와 같은 다른 정황과도 더 어울린다. 위략의 2천리는 사기의 동호 1천리와 조선 1천리를 묶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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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80~0289┆幽州
▐ 진장성은 임조에서 요동까지였는데 당빈이 복구한 장성은 온성에서 갈석까지였다. 이 구간은 화북 평원을 감싸는 태행산과 연산을 잇는 선이다. 그런데 온성은 서진의 도읍이었던 낙양의 동북쪽에 있다. 가장 잘 방어해야할 도읍 바로 인근에서 장성이 끝난다는 대목에서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당빈이 장성을 쌓은 계기는 북평이 침략을 당한 때문이고 당빈이 장성을 쌓으며 맡은 직위는 유주제군사였다. 따라서 장성의 범위는 유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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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94 진서(648)
진서(648)에는 당빈이 溫에서 발해에 접한 碣石山까지 장성을 복구했다고 하나 통전(801)에는 武遂에서 진장성이 시작된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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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98 武遂 → 北新城(-206) → 新昌²(533) → 遂城²(598)
❷² 위서(南營州 遼東郡 新昌²縣), 수서(武遂 → 新昌² → 遂城²), 구당서(北新城 → 新昌² → 遂城²) 등의 기록을 종합하면, '전국시대에 나오는 武遂에 한나라가 중산국 北新城현을 설치하였는데, 후한때 탁군으로 소속이 바뀌었다가 서진때 다시 고양국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533년에 북위가 이곳의 영웅성에 남영주를 설치하고 그 아래에 요동군 新昌²현을 두었는데, 598년에 수나라가 遂城²으로 개칭하였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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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56~1861 洛水 洛陽 渭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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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석 @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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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常山에서 碣石까지
▶화북평원의 북쪽을 두르고 있는 험한 지형은 常山에서 시작해서 碣石山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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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의 흐름
물의 큰 흐름은 황하인데, 악이다사(鄂爾多斯 Ordos)를 돌아오는 가지를 빼고 감숙에서 동으로 흘러 서안과 태행산맥 남쪽을 지나 바다로 들어가는 흐름만 놓고 보면, '머리는 롱과 촉에 있었고 꼬리는 발해의 갈석으로 빠졌다'는 표현과 일치한다. 하나라 시기에는 태행산맥 남쪽을 지난 황하가 동북쪽으로 흘렀고 상산 구문을 지났다. '옛 중국의 뫼와 물은 동북쪽으로 흘렀다'는 말이 그러한 사실을 반영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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