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 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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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75 현도군이 옮겨간 곳은 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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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03 국내성과 혁도아랍
청나라가 성장한 혁도아랍은 옛 고구려현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맥고려가 성장한 국내성에서 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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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5 현도와 高句麗
현도군은 심양과 薩爾滸城(살이허성) 사이에 있었고 고구려현은 赫圖阿拉(혁도아랍)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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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5 현도와 高句麗
현도군은 심양과 薩爾滸城(살이허성) 사이에 있었고 고구려현은 赫圖阿拉(혁도아랍)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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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三國史記 - 주몽
압록강의 한 지류인 졸본천 또는 비류수 영역은 맥인의 근거지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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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70 이성계의 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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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88.03 高麗史(1451)
▐ 1342년에 雙城摠管府와 開元路 사이에 있었던 소통 경로, 1370년에 東北面에서 출발해서 黃草嶺, 雪寒嶺, 鴨綠江 그리고 亏羅山城을 거쳐갔던 이성계의 정벌 경로 그리고 1388년에 요동도사가 보낸 지휘 2인이 鐵嶺衛를 설치하러 江界까지 온 경로는 모두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遼東에서 鐵嶺까지 설치하려던 70참도 이 경로를 따라 예정되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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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88~1393¦鐵嶺城
❶ 1342년에 雙城摠管府와 開元路 사이에 있었던 소통 ❷ 1370년에 東北面에서 출발해서 黃草嶺, 雪寒嶺, 鴨綠江 그리고 亏羅山城을 거쳐갔던 이성계의 정벌 ❸ 1388년에 요동도사가 파견한 지휘 2인의 江界까지의 이동 그리고 ❹ 遼東에서 鐵嶺까지 설치하려던 70참이 모두 같은 경로에 있었던 듯하다. 그렇다면 鐵嶺城도 奉集이 아니라 이 경로에 있는 集安이 어울린다. 铁岭市에서 동남쪽으로 500리쯤 떨어져 있고 왕고와의 경계였던 鴨綠江 북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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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4.15 복기대 비판 ①
▐ 다툼이 생기게 된 지역과 그것으로 인해 전쟁이 벌어지는 지역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1388년 3월에 요동도사가 보낸 지휘 2인이 병사 천여 명을 데리고 강계에 이르러 철령위를 설치하려 하였지만 같은 해 4월에 우왕이 공격하겠다고 밝힌 곳은 강계에서 멀리 떨어진 요양이었다. 요동도사가 요양에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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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貉 貊 㹮 貃 陌 狛 貘 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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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압록강 유역
▐ 발해와 그 뒤를 이은 여진은 중국과 교류할 때 압록강을 이용하였다. 허천강은 압록강의 지류이니 완안부와 허천강 유역의 교류도 아주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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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류수(渾江) 유역
졸본 또는 홀본은 하천가이고 흘승골성 또는 흘두골성은 그 인근의 산성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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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록강 유역
한나라는 위만 조선을 멸망시키고 압록강 유역과 옥저를 묶어 현도군을 설치하고 옥저성에 치소를 두었다. 그러나 거리가 멀어 옥저를 낙랑군에 소속시키고 현도군의 치소는 고구려 서북쪽으로 옮겼다. 그래서 현도군에는 압록강 유역의 고구려, 상은태 그리고 서개마만 남게 되었다. 서개마는 개마대산 서쪽에 있었고 고구려는 혼강 유역에 있었으니 상은태로 설정할 수 있는 공간은 강계 밖에 없다. 이곳은 압록강에서 예로 가는 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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