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6 발해 이후
발해가 망한 이후 요나라에 대항해서 부여, 맥 그리고 발해를 재건하려는 시도가 모두 일어났다. 특히 맥인이 세운 정안국은 송사(1345)에 970년부터 991년까지 행적이 나타난다. 이는 왕씨고려가 고려를 계승하였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왕고말까지도 맥인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이는 1370년에 이성계가 압록강 북쪽을 정벌할 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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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81 宋史(1345)
女眞의 사신이 조공하러 가는 길이 定安國을 거치게 되자 그 왕 烏玄明이 그 편에 표문을 올렸다. 내용은 宋의 거란 정벌 계획을 지지하며 자신은 고려의 옛 땅에 사는 발해의 유민(臣本以高麗舊壤渤海遺黎)인데 契丹의 침공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조부가 백성들을 이끌로 이주하여 지금에 이르렀고 扶餘府도 뜻을 같이 한다는 내용이었다. 宋은 겨울을 넘긴 뒤 토벌을 시행할 것이며 발해와 부여도 뜻을 같이 하니(渤海願歸於朝化 扶餘已背於賊庭) 동참하라는 조서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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