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2
「後漢書」 二十五春正月 遼東徼外貊人寇右北平·漁陽·上谷·太原 遼東太守祭肜招降之 是歲 烏桓大人率衆內屬詣闕朝貢 「三國志」 建武二十五年 烏丸大人等率衆詣闕 使居塞內 布列遼東屬國·遼西 ·右北平·漁陽·廣陽·上谷·代郡·鴈雁門·太原 ·朔方諸郡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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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까역사
한국사 관련 한중일 사서 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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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21 험독과 왕험
應劭曰 朝鮮王滿都也 依水險 故曰險瀆 「史記」 燕 筑長城 至襄平 置遼東郡 「漢書」 遼東郡 縣十八 襄平 險瀆 ... 「漢書」 滿 王之都王險 尼谿相參 殺朝鮮王右渠來降 王險城未下 遂定朝鮮為四郡 樂浪郡 縣二十五 朝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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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20 요서백제
「宋書」 高驪略有遼東 百濟略有遼西 百濟所治謂之晋平郡晋平縣 「솔까역사」 慕容略有遼東 段略有遼西 段所治謂之北平郡北平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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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49? 中原高麗碑
高麗大王이란 표현은 스스로를 고려라 불렀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新羅土內幢主란 표현은 건립 시기에 고려 군대가 신라 영토 내에 주둔하고 있던 실정을 알려주며, 신라를 東夷라고 부른 표현은 당시 고려의 천하관을 엿볼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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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49 中原高麗碑
古牟婁城이 언급되고 있는데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비석이 있는 충주로 추정된다. 일본서기의 369년과 512년 기록, 광개토왕릉비(414) 그리고 중원고려비(449)에 나오는 牟婁, 古牟婁 그리고 比利는 연대가 서로 멀지 않기 때문에 세 기록에 따로 나오더라도 각각 동일한 장소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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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49 中原高麗碑
▐ 중원고려비의 내용은 東夷寐錦이 高麗大王에게 世世토록 兄如弟의 관계를 원하자 고려가 衣服과 敎를 내린다는 이야기다. 東夷寐錦上下至于伐城으로 보아 신라왕이 고려의 성까지 찾아간 듯하고 新羅土內幢主나 新羅土內衆人는 고려가 신라 영토 안까지 영향력을 미친 정황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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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49※ 古牟婁
❶ 중원고려비의 내용은 東夷寐錦이 高麗大王에게 世世토록 兄如弟의 관계를 원하자 고려가 衣服과 敎를 내린다는 이야기다. 東夷寐錦上下至于伐城으로 보아 신라왕이 고려의 성까지 찾아간 듯하고 新羅土內幢主나 新羅土內衆人는 고려가 신라 영토 안까지 영향력을 미친 정황을 암시한다. 이러한 문맥에서 볼 때 古牟婁城守事下部大兄에 나오는 古牟婁城은 신라와의 접경 지역에 있던 성으로 보인다. 당시 중원고려비 인근에는 고려 國原城이 있었으므로 이 성이 가장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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