辟卑離·辟中·辟支·碧骨·辟城·避城·金堤┆古沙夫里·古四·古阜·平倭┆意流村·州流須祇·州柔·周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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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 日本書紀(720)
是以 百濟王父子及荒田別木羅斤資等 共會意流村今云州流須祇 相見欣感 厚禮送遣之 唯千熊長彥與百濟王 至于百濟國登辟支山 盟之
그래서 백제왕 부자와 황전별·목라근자 등이 의류촌(지금은 주류수기라 한다)에서 함께 서로 만나 기뻐하고 후하게 대접하여 보냈다. 오직 천웅장언과 백제왕은 백제국에 이르러 벽지산에 올라가 맹세하였다.
7255#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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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 日本書紀(720)
다시 고사산에 올라가 함께 반석 위에 앉아서 백제왕이 “만약 풀을 깔아 자리를 만들면 불에 탈까 두렵고 또 나무로 자리를 만들면 물에 떠내려갈까 걱정된다. 그러므로 반석에 앉아 맹세하는 것은 오래도록 썩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니, 지금 이후로는 천 년 만 년 영원토록 늘 서쪽 번국이라 칭하며 봄 가을로 조공하겠다”라고 맹세하였다. 그리고 천웅장언을 데리고 도읍에 이르러 후하게 예우를 더하고 구저 등을 딸려서 보냈다.
7255#31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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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중(辟中)
삼국지에는 마한에 辟卑離國 등 50여개 나라가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비리는 古沙夫里의 부리처럼 들이라는 뜻이다.
일본서기에는 왜가 한국에 진출할 때 辟中의 항복을 받고 意流村 또는 州流須祇에서 백제왕을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辟支山과 古沙山에 차례로 올라 맹세를 했다고 한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백제의 碧骨郡이 웅진도독부의 古四州 辟城縣이 되었다가 신라의 金堤郡이 되었고, 백제의 古沙夫里郡은 웅진도독부의 古四州 平倭縣이 되었다가 신라의 古阜郡이 되었다 ...
7255#8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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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卑離)
비리(卑離)는 옛 지명 어미에 흔히 붙어 있는 백제의 부리(夫里), 신라의 벌(伐)·불(弗)·불(火) 등과 같은 뜻이다. 즉, 평야를 뜻하는 말에서 비롯되어 읍락 또는 나라라는 뜻으로 쓰여졌다.
일정한 지역의 비리 중 근본이 되는 비리에는 특정한 이름이 붙지 않았을 수 있다. 신라의 6부 이름에 梁部·沙梁部·漸梁部 등이 있는데, 이 중 근본이 되는 것만 양부라고 한 예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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