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史書 > 1060 新唐書(趙宋 歐陽修 宋祁) > 黑水靺鞨
 
新唐書(1060) 01
黑水靺鞨은 肅愼 땅에 있는데, 또한 挹婁라고도 하며, 後魏 때에는 勿吉로도 불리었다. 京師에서 동북으로 6천리 밖에 있는데, 동쪽은 바다에 접하고, 서쪽은 突厥에 닿으며, 남쪽은 高麗와, 북쪽은 室偉와 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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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唐書(1060) 02
수십 부로 나뉘어져 추장들이 각기 자치를 한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부는 粟末部로서 가장 남쪽에 위치하여 太白山에 이른다. 徒太山이라고도 하는데 高麗와 서로 닿는다. 粟末水의 연안에 의지하여 사는데 이 물은 산 서쪽에서 흘러 나와서 북으로 它漏河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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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唐書(1060) 03
조금 동북쪽에 있는 것이 汨咄部이고 그 다음의 것이 安居骨部이며 더 동쪽은 拂涅部이다. 居骨의 서북쪽에 있는 것이 黑水部이고 粟末의 동쪽에 있는 것이 白山部이다. 부와 부의 사이는 먼 것은 3~4백리이고 가까운 것은 2백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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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唐書(1060) 04
白山은 본래 高麗에 신속되어 있었는데 왕사가 平壤을 공취하자 그 무리들이 대개 唐으로 들어왔다. 汨咄·安居骨 등도 모두 분산되어 점차 미약하여져 알려지지 않았으며 유민들은 뿔뿔이 渤海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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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唐書(1060) 05
오직 黑水만이 완강하여 16부락으로 나누고 남부와 북부로 일컬었으니 이는 그 위치가 가장 북쪽이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거세고 보전을 잘하여 늘 다른 부족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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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唐書(1060) 06
풍속은 머리를 땋아 멧돼지의 어금니를 매달고, 꿩의 꼬리깃으로 관을 꾸며서 다른 여러 부와 구별을 짓는다. 성질이 잔인하고 사나우며 射獵을 잘 한다. 걱정하고 두려워 하는 것이 없고, 젊은이를 귀하게 여기고 늙은 자는 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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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唐書(1060) 07
거처하는 집이 없고 산수에 의지하여 움을 파서 그 위에 나무를 걸치고 흙을 덮는데 마치 무덤과 같다. 여름에는 수초를 따라 나오고 겨울에만 움 안에 들어가 산다. 오줌으로 세수를 하니 이적 중에서 가장 지저분하다. 죽은 자를 묻을 적에는 棺椁이 없고 그가 타던 말을 잡아 제사한다. 추장은 大莫拂瞞咄이라 하는데 대대로 세습하여 추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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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唐書(1060) 08
書契가 없다. 화살은 돌촉으로 길이가 2촌이니 이는 楛砮의 옛 방법일 것이다. 가축은 돼지가 많고 소와 양은 없다. 수레와 말이 있고 밭은 耦耕을 하며 수레는 밀고 다닌다. 조와 보리가 있다. 貂鼠·白兔·白鷹이 많이 난다. 鹽泉이 있어 기체로 증발하여 나무 끝에 소금이 엉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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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唐書(1060) 09
武德五年 渠長阿固郎始來 622년에 추장 아고랑이 처음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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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唐書(1060) 10
太宗貞觀二年 乃臣附 所獻有常 以其地為燕州 628년에는 마침내 신부하여 항상 공물을 바쳐오므로 그 땅을 연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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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唐書(1060) 11
태종이 高麗를 토벌할 적에 그 북부가 반기를 들고 高麗와 합세하였다. 高惠眞 등이 군사를 이끌고 安市을 구원할 적에 싸움마다 늘 靺鞨병을 앞에 내세웠다. 태종은 安市를 함락하고 惠眞을 사로잡은 뒤 靺鞨병 3천여명을 모두 묻어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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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唐書(1060) 12
722년에 그 추장 倪屬利稽가 조근을 오니 현종은 그를 勃利州刺史에 제수하였다. 이에 安東都護 薛泰가 黑水府를 두자고 청하므로 部長으로 都督 또는 刺史를 삼고 조정에서 長史를 두어 감리케 하였다. 府都督에게 李氏로 역성하고 이름은 獻誠으로 하여 雲麾將軍領黑水經略使로 삼아 幽州都督에 예속시켰다. 현종의 말년까지 15번 조헌하였다. 766~779년에는 모두 7번, 785~804년에는 한번 왔으며 806~820년에는 두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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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唐書(1060) 13
당초 黑水의 서북쪽에는 思慕部가 있는데 더 북으로 10日을 가면 郡利部가 있고 동북으로 10日로 가면 窟設部가 있다. 屈設이라고도 부른다. 조금 동남으로 10日을 가면 莫曳皆部가 있고 또 拂涅·虞婁·越喜·鐵利 등의 部가 있다. 그 땅은 南으로는 渤海에 이르고 북과 동은 바다에 닿아 있으며 서로는 室韋에 이른다. 남북은 2천리이고 동서는 1천리에 뻗쳐 있다. 拂涅·鐵利·虞婁·越喜는 때때로 중국과 통하였으나 郡利·屈設·莫曳皆는 스스로 통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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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唐書(1060) 14
今存其朝京師者附左方 拂涅 亦稱大拂涅 開元天寶間八來 獻鯨睛貂鼠白兔皮 鐵利 開元中六來 越喜 七來 貞元中一來 虞婁 貞觀間再來 貞元一來 後渤海盛 靺鞨皆役屬之 不復與王會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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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Dictionary
Names are also vocabulary.
 
新唐書(1060) 14
지금에까지 남아 있어 京師에 朝覲을 온 것을 左에 부기해 둔다. 拂涅은 大拂涅로도 일컬으며 713~741년·742~755년에 여덟 번 와서 鯨睛·貂鼠·白兎皮를 바쳤다. 鐵利는 713~741년에 여섯 번 왔다. 越喜는 일곱 번 오고 785~804년에 한번 왔다. 虞婁는 627~649년에 두 번 오고 785~804년에 한번 왔다. 뒤에 渤海가 강성해지자 靺鞨은 모두 그들에게 역속되어 다시는 왕과 만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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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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