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신라민족론 > 3. 왜는 처음부터 남이었나? > (2) 일본서기의 신뢰성
 
 0205 일본서기 신공황후 5년
癸卯 초하루 己酉日 신라왕이 汙禮斯伐과 毛麻利叱智 富羅母智 등을 보내어 조공하였는데 전에 볼모로 와 있던 微叱許智伐旱을 돌아가게 하려는 생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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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31 삼국사기 열전 - 석우로 2
조분왕(助賁王) 2년(231) 7월에 이찬(伊湌)으로 대장군(大將軍)이 되어 감문국(甘文國)을 토벌하려고 나가 [감문국을] 깨뜨리고, 그 땅을 군현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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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33 삼국사기 열전 - 석우로 3
[조분왕] 4년(233) 7월에 왜인이 침입해 오자, [석]우로가 사도(沙道)에서 습격하여 나아가 싸웠다. 바람을 따라 불을 놓아서 적의 전함을 불태우니, 적이 모두 다 물에 빠져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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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33 삼국사기(1145)
왜인이 침입해 왔으므로 우로가 사도(沙道)에서 추격하여 싸웠는데, 바람을 따라 불을 놓아서 적의 전함을 불태우니 적이 모두 다 물에 빠져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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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4 삼국사기 열전 - 석우로 4
[조분왕] 15년(244) 정월에 승진하여 서불한(舒弗邯)이 되었고 군사의 일을 겸하여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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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5 삼국사기 열전 - 석우로 5
[조분왕] 16년(245)에 고구려가 북쪽 변경에 침입하자 나가서 쳤다. [그러나]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 마두책(馬頭柵)을 지켰다. 밤이 되어 군사들이 추위로 괴로워하자, [석]우로는 몸소 다니며 위로하고 손수 땔나무에 불을 피워 그들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여러 사람들이 마음으로 감격하고 기뻐하기를 마치 솜옷을 두른 것같이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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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9 삼국사기 첨해 이사금 3년
여름 4월에 왜 인(倭人)이 서불한(舒弗邯) 우로 (于老)를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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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53 삼국사기 열전 - 석우로 1
석우로(昔于老)는 나해이사금(奈解尼師今)의 아들이다. [혹은 각간(角干) 수로(水老)의 아들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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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53 삼국사기 열전 - 석우로 6
첨해왕(沾解王)이 재위하였을 때, 사량벌국(沙梁伐國)이 전에 우리에게 속하였다가 갑자기 배반하고 백제로 돌아갔다. [석]우로가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사량벌국을] 토벌하여 멸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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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53 삼국사기 열전 - 석우로 7
[첨해왕] 7년 계유(癸酉, 253)에 왜국의 사신 갈나고(葛那古)가 객관(客館)에 있었는데, [석]우로가 그를 대접하였다. 손님과 희롱하여 말하기를, “언젠가는 너희 왕을 소금 만드는 노예(鹽奴)로 만들고 왕비는 밥 짓는 여자로 삼겠다.”고 하였다. 왜 왕이 이 말을 듣고 노하여 장군 우도주군(于道朱君)을 보내 우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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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53 삼국사기 열전 - 석우로 8
왜인이 대답하지 않고 그를 잡았다. 나무를 쌓아 그 위에 앉히고 그를 불태워 죽인 다음 돌아갔다. [그때] [석]우로의 아들은 어려 걷지 못하므로 다른 사람이 안고 말을 타고 돌아왔다. 후에 흘해이사금(訖解尼師今)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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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53 삼국사기 열전 - 석우로 9
미추왕(味鄒王)때에 왜국(倭國)의 대신(大臣)이 와서 공물을 바쳤다. [석]우로의 아내가 국왕에게 청하여 사사로이 왜국 사신에게 음식을 대접하였다. 곧 그가 술에 몹시 취하게 되자, 장사를 시켜 마당으로 끌어내려 그를 불태워 전일의 원한을 갚았다. 왜인이 분하여 금성(金城)을 공격해 왔으나, 이기지 못하고 [군사를] 이끌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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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92-06 삼국사기(1145) 유례 이사금 9년
왜의 군사가 사도성(沙道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으므로, 일길찬 대곡(大谷)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고 지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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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0 삼국사기(1145)
흘해 이사금이 왕위에 올랐다. 나해왕의 손자로, 아버지는 각간 우로(于老)이고 어머니는 명원부인인데 조분왕의 딸이다. 이때 이르러 기림왕이 죽고 아들이 없었으므로 여러 신하들이 의논하기를 '흘해는 어리지만 노성한 덕이 있다.'하고는 받들어 그를 왕으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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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02(<390) 삼국유사(1281)
제17대 나밀왕 36년 경인에 왜왕이 사신을 보내 와서 이르기를 “우리 임금이 대왕께서 신성하다는 말을 듣고 신 등을 시켜 백제가 지은 죄를 대왕에게 아뢰게 하는 것이오니, 원하옵건대 대왕께서는 왕자 한 분을 보내어 우리 임금에게 성심을 나타내시기 바랍니다.”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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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삼국사기
논하여 말한다. 우로가 당시 대신으로 군무와 국정을 맡아,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비록 이기기 못하더라도 패하지는 않았다. 그런 즉, 그 계책은 반드시 다른 사람보다 월등하였다. 그러나 한 마디 말의 어그러짐으로 스스로 죽음을 취하였고, 또 두 나라로 하여금 서로 싸우게 하였다. 그 아내가 원한을 갚았으나, 또한 변칙이요 정도는 아니다. 만일 그러하지 않았다면, 그의 공적은 또한 기록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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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마리질지(毛麻利叱智), 미질허지벌한(微叱許智伐旱)
신라왕이 오례사벌, 모마리질지, 부라모지 등을 보내 조공하였는데 볼모로 와 있던 미질허지벌한을 데려가려는 생각이 있었다. 허질벌한으로 하여금 “우리 왕이 제 처자를 모두 종으로 삼았다고 하니 돌아가 알아보게 해주십시오”라 속이게 하니 황태후가 갈성습진언을 딸려 보내주었다. 대마에 이르러 서해의 수문에 머물 때 모마리질지 등이 사공으로 하여금 미질한기를 태우고 신라로 도망가게 하였다. 습진언이 속은 걸 알고 신라 사신들을 잡아 우리 속에 넣고 태워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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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말(毛末)
박제상(朴堤上 혹은 毛末이라고 한다)은 시조 혁거세의 후손이고 파사이사금의 5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아도 갈문왕이고, 아버지는 파진찬 물품이다. 제상은 삽량주간으로 임금을 섬겼다. -- 일본서기에는 모마리질지라고 되어 있는데 질지(叱智)는 존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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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사흔(未斯欣)
3월에 왜국과 우호를 통하고 나물왕의 아들 미사흔(未斯欣)을 볼모로 삼았다. -- 삼국유사에는 미질희(未叱希), 미흔(未欣),미해(美海), 미토희(未吐喜)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일본서기에는 미질기지(微叱己知), 미질허지(微叱許智)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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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로(于老)
우로가 왜국의 사신 갈나고를 접대하며 “너희 왕을 소금 만드는 노예로 만들고 왕비를 밥 짓는 여자로 삼겠다”고 하였다. 왜왕이 이를 듣고 장군 우도주군을 보내 치니 우로가 "내가 당해내겠다"하고 왜군에게로 갔다. 왜인이 잡아서 불태워 죽인 다음 돌아갔다. 미추왕 때에 왜국의 대신이 왔는데 우로의 아내가 청하여 음식을 대접하였다. 그가 취하자 장사를 시켜 마당에 끌어 내 불태워 죽였다. 왜인이 분하여 금성을 공격해 왔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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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류조부리지간(宇流助富利智干)
신라왕 우류조부리지간을 잡아 해변에 데리고 가서 무릎뼈를 빼고 돌 위에서 기게 한 다음, 목을 베어 모래 속에 묻었다. 그리고 한 사람을 두어 재상으로 삼고 돌아왔다. 신라왕의 처가 재상을 유인하여 “왕의 주검을 묻은 곳을 가르쳐 준다면 제가 당신의 아내가 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재상이 알려 주자, 나라 사람들과 재상을 죽였다. 천황이 이를 듣고 군대를 일으켜 신라를 멸망시키려 하였다. 그러자 신라 사람들이 서로 의논하여 왕의 처를 죽이고 사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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