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ian > 인물 > (ㅂ) > 박정희 > 증언과 평 > 50년 맞은 5·16 - 김종필
 
01. "서울은 네가 맡아라, 외곽은 내가 손써놨다"
"매뉴얼은 없고, 이집트 혁명(1952년) 때 나세르가 나기브와 함께 정부를 장악하고, 나중에는 나기브를 쫓아내잖아요. 내가 그 과정을 소상히 알고 있었어요. 또 케말 파샤(1923년 청년 장교들과 함께 터키 혁명을 일으킴)에 관한 것도 뽑아서 읽었죠."
2383#34509 SIBLINGS CHILDREN COMMENT 34509
 
1980년 미대사관이 분석한 광주□□
It is probable that regionalism is playing significant roll in the intensity of the riot in Kwangju. 지역주의가 광주 폭동을 격화시키는 주요 원인이었을 수 있다.
 
02. 중정 요원 20명 이끌고 장도영 체포
"6·25 때도 5·16 때도 모두 생명을 내던지고 일을 했어요. 나중에 무슨 비난이 오건 말건 이건 해놓아야겠다 하는 것이 5·16이었습니다. 한일회담도 그랬어요. 요즘 서울 남산공원을 천천히 걸으면서 '요행히 그런 고비들을 넘어왔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제 나도 늙었나 봅니다. 5·16이란 6·25전쟁에서 살아남은 젊은 장교들이 나라를 위해 두 번째로 죽음을 각오하고 덤볐던, 어떤 의미에서 숭고했던 순간이에요."
2383#34510 SIBLINGS CHILDREN COMMENT 34510
 
03. 우린, 가진 것 다 불살랐다
그때 우리나라엔 근대화라는 말 자체도 없었어요. 우리가 '민족중흥'과 '조국 근대화'라는 말을 처음 쓴 것입니다. 5·16은 조국 근대화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그리고 18년 동안 근대화의 기조(基調)를 닦을 수 있었습니다. 최빈국에서 경제대국이 된 것입니다.
2383#34455 SIBLINGS CHILDREN COMMENT 344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