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42 모용황의 高句麗 침공
모용외의 아들 황(晃)이 군대를 거느리고 공격하였다. 쇠(釗 고국원왕)는 더불어 싸우다 크게 패하여 단신으로 말을 타고 달아났다. 황(晃)은 승리한 기세로 계속 추격하여 환도(丸都)에 이르러 궁실을 불지르고 남자 5만여구를 노략질하여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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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42.08+ 모용황의 高句麗 침공
모용원진이 군사를 거느리고 그들을 공격하였다. 남쪽 길로 침입하여 목저에서 전투를 벌여 쇠(釗, 고국원왕)의 군대를 대파시키고 승승장구하여 드디어 丸都까지 침입하니 쇠는 혼자서 도망쳤다. 원진이 쇠의 아버지(미천왕) 묘를 파헤쳐서 시체를 싣고 아울러 그의 어머니와 부인 그리고 진귀한 보화와 남녀 5만여명을 약탈하고 그의 궁실을 불살라 丸都城을 파괴한 뒤 귀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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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42.08+ 모용황의 高句麗 침공
▐ 이 기록은 미천왕의 무덤이 환도성 인근에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왕릉은 보통 도읍 인근에 있고 미천왕은 평양성 도읍 시기인 331년에 죽었으므로 결과적으로 평양성도 환도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고려의 침공으로 한성이 함락당하자 백제가 한성 기준으로 고려 반대쪽인 웅주로 도읍을 옮긴 사례를 참고해 볼 때, 평양성은 환도성 기준으로 요동 반대편에 있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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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42.08+ 모용황의 高句麗 침공
▐ 평양성 도읍 시기의 왕들은 무덤이 있는 곳의 이름을 따서 불려졌다. 동천왕의 무덤은 동천(東川)에 있었고 중천왕의 무덤은 중천(中川)에 있었으며 서천왕의 무덤은 서천(西川) 그리고 미천왕의 무덤은 미천(美川)에 있었다. 모두 평양성 인근이자 환도성 인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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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42¦모용황의 高句麗 침공
모용외의 아들 황(晃)이 군대를 거느리고 공격하였다. 쇠(釗 고국원왕)는 더불어 싸우다 크게 패하여 단신으로 말을 타고 달아났다. 황(晃)은 승리한 기세로 계속 추격하여 환도(丸都)에 이르러 궁실을 불지르고 남자 5만여구를 노략질하여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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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43 魏書(636)
모용외의 아들 황(晃)이 군대를 거느리고 공격하였다. 쇠(釗 고국원왕)는 더불어 싸우다 크게 패하여 단신으로 말을 타고 달아났다. 황(晃)은 승리한 기세로 계속 추격하여 환도(丸都)에 이르러 궁실을 불지르고 남자 5만여구를 노략질하여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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