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신라민족론 > 8. 遼黑史 > BC 0108 낙랑 > 0307~0436 鮮卑燕 > 0313↝ 낙랑, 대방 그리고 조선

기원전 108년에 대동강 유역에 설치된 낙랑군은 서진 때까지 존속하다 313년에 고려에 병합되었다. 그러자 모용 선비가 그 유민을 받아 자신의 영토 내에 낙랑군을 설치하였다. 모용 선비의 연나라를 흡수한 북위 때에는 낙랑군이 요서의 영주에 있었는데 다시 하북의 남영주로 옮겨졌다. 대방은 낙랑과 이동 경로가 같고 조선은 북위 때 산해관 서쪽에 있었다. 313년 이후 옮겨간 낙랑, 대방 그리고 조선의 위치를 가지고 원래 위치라 주장하는 오류가 있다.
 
낙랑, 대방 그리고 조선의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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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65 진서(648) 幽州
郡國七 縣三十四 戶五萬九千二十 范陽國(涿 良鄉 方城 長鄉 遒 故安 范陽 容城) 燕國(薊 安次 昌平 軍都 廣陽 潞 安樂 泉州 雍奴 狐奴) 北平郡(徐無 土垠 俊靡 無終) 上谷郡(沮陽 居庸) 廣甯郡(下洛 潘 涿鹿) 代郡(代 廣昌 平舒 當城) 遼西郡(陽樂 肥如 海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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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65 진서(648) 幽州
유주(7군국 34현 59020호) - 범양국(탁 양향 방성 장향 주 고안 범양 용성) 연국(계 안차 창평 군도 광양 노 안락 천주 옹노 호노) 북평군(서무 토은 준미 무종) 상곡군(저양 거용) 광영군(하락 반 탁록) 대군(대 광창 평서 당성) 요서군(양악 비여 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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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6 진서(648) 平州
縣二十六戶一萬八千一百 昌黎郡(昌黎 賓徒) 遼東國(襄平 汶 居就 樂就 安市 西安平 新昌 力城) 樂浪郡(朝鮮 屯有 渾彌 遂城 鏤方 駟望) 玄菟郡(高句麗 望平 高顯) 帶方郡(帶方 列口 南新 長岑 提奚 含資 海冥) 평주(5군국 26현 18100호) - 창려군(창려 빈도) 요동국(양평 문 거취 낙취 안시 서안평 신창 역성) 낙랑군(조선 둔유 혼미 수성 누방 사망) 현토군(고구려 망평 고현) 대방군(대방 열구 남신 장잠 제해 함자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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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3 자치통감(1084)
遼東張統據樂浪帶方二郡與高句麗王乙弗利相攻連年不解樂浪王遵說統帥其民千餘家歸廆廆爲之置樂浪郡以統爲太守遵參軍事 요동의 장통이 낙랑 대방 2군에 있으면서 고구려왕 을불과 서로 공격하여 여러 해 동안 풀리지 않았다. 낙랑의 왕준이 장통에게 권고하여 그 백성 1,000여 가를 이끌고 외에게 귀부케 하였다. 외가 이들을 위하여 낙랑군을 두고 장통을 낙랑태수로, 왕준을 낙랑군 참군사로 삼았다. ● 이 낙랑군은 탁발위의 영주 낙랑군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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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84~0407 연(後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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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8~0436 幽州
398年,後燕遷都到龍城,原來治所在龍城的幽州改為司隸校尉,以遼西郡、燕郡、范陽郡、北平郡為幽州,治所在肥如縣(今河北省盧龍縣西北)。399年,增設建德郡、石城郡、冀陽郡,燕郡、范陽郡、北平郡被北魏占領。402年,改治令支縣(今河北省遷安市西)。403年,建德郡、石城郡、冀陽郡另設冀州。北燕建立後,令支縣被北魏占領,幽州僑置肥如縣,和冀州同城而治。436年,魏太武帝滅北燕,廢除幽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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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2-08 위서(554)
文通使數萬人出城挑戰,昌黎公元丘與河間公元齊擊破之,死者萬餘人。文通尚書高紹率萬餘家保羌胡固。己卯,車駕討紹,辛巳,斬之。詔平東將軍賀多羅攻文通帶方太守慕容玄於猴固,撫軍大將軍、永昌王健攻建德,驃騎大將軍、樂平王丕攻冀陽,皆拔之,虜獲生口,班賜將士各有差。 ● 연나라가 대방군을 설치하고 대방 태수를 두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방군의 위치는 요령 의현 북부(辽宁义县北)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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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2-09 위서(554)
徙營丘成周遼東樂浪帶方玄菟六郡民三萬家于幽州 開倉以賑之 영구, 성주, 요동, 낙랑, 대방, 현도 6군의 주민 3만 가구를 유주로 옮기고 창고를 열어 식량을 나눠주었다. ● 북위는 북평군을 설치하고 조선과 신창 두 현을 두어 조선민을 조선현에 안집하였다. 이 조선민은 북위가 432년에 끌어온 3만 가구 중에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북평군은 모두 430호 1836구였으므로 북연의 낙랑군에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집단이 수백 가구 있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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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2-09↝ 위서(554) 註 朝鮮
二漢晉屬樂浪後罷 延和元年徙朝鮮民於肥如復置屬焉 조선현은 전후한과 서진 때에 낙랑에 속했는데 나중에 폐지했다. 432년에 조선인들을 비여로 옮기고 조선현을 설치하여 이들을 소속시켰다. ● 여기서의 비여는 넓은 의미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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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2-12 위서(554)
馮文通長樂公崇及其母弟朗 朗弟邈 以遼西內屬 文通遣將封羽圍遼西 풍홍의 아들 장락공 숭, 숭의 외삼촌 랑 그리고 랑의 동생 막이 요서를 들어 항복해 왔다. 풍홍이 장수 봉우를 보내 요서를 포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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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3-01 위서(554)
撫軍大將軍 永昌王健督諸軍救遼西 무군대장군 영창왕 건이 군사를 이끌고 요서를 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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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3-02 위서(554)
詔兼鴻臚卿李繼 持節假馮崇車騎大將軍 遼西王 承制聽置尚書已下 賜崇功臣爵秩各有差 홍려경 이계에게 조서를 내려 지절 가 풍숭을 차기대장군 요서왕에 봉하고 상서 이하 관청을 설치하게 하였으며 숭을 공신으로 대우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상을 내렸는데 차등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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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6 연(北燕) 패망
후연에서 풍발이 반란을 일으켜 황제 모용희를 죽이고 이전 황제의 양자였던 고운을 왕위에 앉혔다. 그러나 2년 뒤 고운이 살해되자 풍발이 난을 수습하고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 풍발이 죽자 풍발의 동생 풍홍이 풍발의 아들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북위의 침공을 받아 북연은 망하고 풍홍은 고려로 망명했다가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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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6 위(拓跋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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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6 위서(554) 平州
平州領郡二縣五遼西郡領縣三肥如陽樂海陽北平郡領縣二朝鮮昌新 평주(2군,5현) - 요서군(537호 1905구,비여,양악,해양), 북평군(430호 1836구,조선,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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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6 위서(554) 平州
● 호수로 보아 북위의 평주는 임시 행정 구역이다. 서진의 유주에 속했던 요서군과 북평군은 북위의 평주가 되었다. 이 평주 요서군에 소속된 현은 서진때와 같으나 북평군의 소속 현은 모두 바뀌었다. 북평군 조선현은 432년에 북연의 6군 3만 가구를 사민할 때 사민 중 조선민을 안집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이 유래를 모르고 이곳을 조선의 초기 위치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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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6¦위서(554) 註 昌新
前漢屬涿 後漢晉屬遼東 後屬 有盧龍山 전한 때는 탁에 속했고 후한과 서진 때는 요동에 속했으며 그 후 북평에 속했다. 노룡산이 있다. ● 이 기록의 昌新은 新昌의 오기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 주석은 잘못되었다. 新昌은 여러 개가 있는데 요동군에 속했던 신창은 요동군의 이동을 따라 요동에서 영주를 거쳐 남영주까지 이동하였다. 북평군의 이 신창은 연의 탁군에 북신성과 함께 있었다는 신창과 연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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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6¦위서(554) 註 昌新
前漢屬涿後漢晉屬遼東後屬 溫校:「按此縣亦後魏僑置,當從朝鮮注為例。且營州遼東郡新昌縣『二漢晉屬』。此復書『後漢、晉屬遼東』,而以前漢涿郡之新昌合而為一,牴牾甚矣。《漢志》〈卷二八下〉新昌,明是兩縣。一屬涿郡,後漢省,今固安縣南三十里;一屬遼東,在今海城縣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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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4 위서(554) 營州
營州領郡六縣十四昌黎郡領縣三龍城廣興定荒建德郡領縣三石城廣都陽武遼東郡領縣二襄平新昌樂良郡領縣二永洛帶方冀陽郡領縣二平剛柳城營丘郡領縣二富平永安 영주(6군,14현) - 창려군(201호,용성,광흥,정황), 건덕군(200호,석성,광도,양무), 요동군(131호,양평,신창), 낙랑군(219호,영락,대방), 기양군(89호,평강,유성), 영구군(182호,부평,영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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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4 위서(554) 營州
● 요동군과 낙랑군은 520~525 시기에 설치되었다. 설치가 늦고 호수가 적은 이유는 432년에 영구, 성주, 요동, 낙랑, 대방, 현도 6군의 3만 가구를 유주로 이주시켰기 때문이다. 대체로 서진의 평주가 북위의 영주가 되었는데, 평주의 창려군, 요동국 그리고 낙랑군은 각각 영주의 창려군, 요동군 그리고 낙랑군이 되었고 평주의 대방군은 현이 되어 영주의 낙랑군에 소속되었다. 북위는 이 영주를 530 이전에 잃었다가 534 이후에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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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0529
524年,就德興和營州城民劉安定抓住營州刺史李仲遵,據州城反魏。城民王惡兒斬殺劉安定降魏,就德興東逃,自稱燕王。北魏朝廷派黃門侍郎盧同持節去營州慰勞,就德興降而復反。朝廷命盧同為幽州刺史兼尚書行台。盧同多次被就德興打敗,而回軍。526年,就德興攻陷平州,殺死刺史王買奴。529年十一月初二己卯日,就德興向北魏請降,營州平定。 ● 이 사건으로 남영주를 설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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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3 위서(554) 南營州
南營州領郡五縣十一昌黎郡領縣龍城廣興定荒遼東郡領縣二太平新昌建德郡領縣石城廣都營丘郡領縣三富平永安帶方樂良郡領縣一永樂 남영주(5군,11현) - 창려군(509호,용성,광흥,정황), 요동군(565호,태평,新昌), 건덕군(178호,석성,광도), 영구군(512호,부평,영안,대방), 낙랑군(49호,영락). ※요동군의 太平은 수서에 襄平으로 되어 있다. 낙랑군의 永洛은 永樂으로 한자가 바뀌어 있다. 이후의 기록은 永樂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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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3 위서(554) 南營州
● 요동군은 532~534에 설치되었고 낙랑군은 537에 설치되었다. 호수로 보아 북위의 남영주는 임시 행정 구역이다. 영주의 6군에서 기양군을 제외하고 5군은 그대로 따라왔다. 특이한 점은 영주 낙랑군 소속이던 대방현이 남영주 영구군 소속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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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6 사기정의(史記正義 張守節)
元封二年漢使涉何誘諭右渠終不肯表詔何去至界上臨浿水使御刺殺送何者朝鮮禆王長(顔師古云長者禆王名也送何至浿水何因刺殺也按禆王及將士長恐顔非也)即渡馳入塞(入平州榆林闗也)遂歸報天子曰殺朝鮮將上為其名美即不詰拜何為遼東東部都尉(地理志云遼東郡武次縣東部都尉所理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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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6 사기정의(史記正義 張守節)
원봉 2년에 한나라는 사신 섭하를 보내어 우거를 꾸짖고 회유하였으나 끝내 천자의 명을 받들려고 하지 않았다. 섭하가 돌아가며 국경인 패수에 이르르자 마부를 시켜 전송나온 조선의 비왕 장을 찔러 죽이고 바로 건너 요새 안(평주 유림관이다)으로 달려 들어간 뒤 천자에게 조선의 장수를 죽였다고 보고했다. 천자가 꾸짖지 않고 하에게 요동동부도위의 벼슬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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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6 사기정의(史記正義 張守節)
▶榆林闗은 臨榆關의 오기인 듯하다. 榆林는 Ordos에 있기 때문이다. 臨榆關은 명나라때 山海關으로 개칭되었다. 사기색은은 括地志云髙驪都平襄城本漢樂浪郡王險城又古云朝鮮地也(괄지지는 고려의 도읍인 평양성은 본래 한나라 낙랑군 왕험성이고 또 옛부터 조선의 땅이라 했다)라 하여 조선이 고려의 평양성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섭하가 도망간 요새를 산해관으로 인식한 것은 오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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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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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營州
北魏孝昌年間營州陷,永熙二年(533年)僑置南營州,寄治英雄城(今河北徐水區西遂城)。領昌黎郡、遼東郡、建德郡、營丘郡、樂良郡五郡,11縣,1813戶,9036口。北齊僅領昌黎郡。隋文帝開皇初廢南營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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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州
東漢時於東北方僅設幽州;漢獻帝時,公孫度自稱為平州州牧。三國曹魏分遼東郡、昌黎郡、玄菟郡、帶方郡、樂浪郡五郡為平州,之後又合併為幽州。 西晉咸寧二年十月,分昌黎、遼東、玄菟、帶方、樂浪等郡國五郡置平州。統縣二十六,戶一萬八千一百。永嘉之禍後到十六國時期,被慕容氏諸燕占據。313年,高句麗攻陷樂浪郡後,東夷校尉將平州遷至遼西的昌黎郡。 北魏滅北燕後,轄遼西、北平二郡。
11383
 
營州
北魏太平真君五年(444年)置,治所在龍城縣(隋朝時改名柳城縣,今遼寧省朝陽市)。隋朝開皇初年,置營州總管府,大業初年府廢。改為遼西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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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龍 위성지도
肥如縣今河北省盧龍縣西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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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행정 구역
진서 주석에 각각 3700호와 4900호나 된다던 평주의 낙랑군과 대방군은 위서에서 영주 낙랑군 하나로 줄여져 219호만 남았다. 남영주로 옮겨가면서는 더 줄어 49호만 남았다. 이는 북위의 낙랑군이 이북5도청처럼 명목상의 행정구역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진서 주석에 5천호나 된다던 유주 북평군이 위서에서 430호 밖에 되지 않는 평주 북평군이 된 것도 마찬가지다. 낙랑군에 속했던 조선이 북평군으로 소속이 바뀐 것도 이런 정황을 뒷받침한다.
11382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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