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43~0427 ❸ 高麗의 南下
313년과 314년에 각각 樂浪과 帶方을 병합한 고려는 342년에 모용 선비의 침공을 받아 도읍인 丸都城이 파괴되자 이듬 해에 平壤 동쪽의 黄城으로 도읍을 옮겼다. 이즈음 백제도 예성강 유역까지 차지한 듯하다.
369년부터 고려는 백제의 예성강 유역을 침공하기 시작했는데, 371년에는 패해서 다시 도읍을 國內城으로 옮기기도 했지만, 399년 즈음에는 백제의 탈환 의지를 꺾고 임진강 유역까지 완전히 차지하였고, 427년에는 도읍도 平壤으로 다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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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91 廣開土王陵碑(414)
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
백잔과 신라는 옛부터 속민으로 조공을 해왔다.
背急追至任那加羅從拔城城卽歸服安羅人
그 뒤를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의 종발성에 이르니 성이 곧 항복하였다. 안라인...
▐ 백제, 신라, 임나, 가라, 안라 등이 나타난다. 이들 나라의 존재는 일본서기(720)의 기록과 일치한다. 이들 나라들은 삼국지(289) 이후 성장하여 마한, 진한 그리고 변한을 대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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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96 廣開土王陵碑(414)
396년 왕이 친히 군을 이끌고 백잔국을 토벌하였다. ... 阿旦城(阿且城이라고도 표기되어졌는데 서울의 광나루 북쪽 기슭에 있는 峨嵯山城으로 비정된다.) ... 백잔이 의에 복종치 않고 감히 나와 싸우니 왕이 크게 노하여 아리수를 건너 정병을 보내어 그 수도에 육박하였다. 곧 그 성을 포위하였다. 이에 잔주가 곤핍해져, 남녀생구 1천 명과 세포 천 필을 바치면서 왕에게 항복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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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14 任那加羅
왕이 보병과 기병 도합 5만 명을 보내어 신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남거성을 거쳐 신라성에 이르니, 그곳에 왜군이 가득하였다. 관군이 막 도착하니 왜적이 퇴각하였다. 그 뒤를 급히 추격하여 任那加羅의 종발성에 이르니 성이 곧 항복하였다.
▐ 여기에 나오는 임나가라는 왜적의 퇴각 경로로 보아 南加羅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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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14 廣開土王陵碑
▐ 國內가 있는 들을 國壤이라 불렀는데 다른 곳으로 도읍을 옮긴 후에는 故國壤, 故國之原, 故國原 등으로 불린 듯하다. 東川·東襄·柴原, 中川·中壤, 西川·西壤 그리고 美川·好壤도 그곳에 있었다.
國內에 도읍이 있던 시기에 죽은 광개토왕의 무덤 또한 그곳에 있었을 것이므로 그곳은 광개토왕릉비가 있는 현재의 집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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