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7 三國遺事(1281) 1
南解王 때 (고본에 임인년에 도착하였다는 것은 오류이다. 가깝게는 노례왕의 즉위 이후이므로 양위를 놓고 다투던 일이 없게 되며, 그 이전에는 혁거세의 재위기이므로 임인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駕洛國의 바다에 어떤 배가 와서 닿았다. 首露王이 신하 및 백성들과 더불어 북을 치고 환호하며 맞이해 장차 머무르게 하려 했으나 배가 나는 듯이 달려 雞林의 동쪽 下西知村 阿珎浦(지금도 上西知와 下西知라는 촌명이 있다)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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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57 三國遺事(1281) 2
당시 포구의 해변에 한 할멈이 있었으니 이름은 阿珍義先이라 하였는데, 이가 바로 혁거세왕 때의 고기잡이의 母였다. 배를 바라보며 말하기를 “본시 이 바다 가운데에 바위가 없는데 어찌해서 까치가 모여서 울고 있는가?” 하고 배를 끌어당겨 살펴보니 까치가 배 위로 모여들고 배 안에 상자 하나가 있었다. 길이는 20자이고 넓이는 13자였다. 잠시 후 궤를 열어보니 단정히 생긴 사내아이가 있고, 또 일곱 가지 보물과 노비가 그 속에 가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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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57 三國遺事(1281) 3
칠일 동안 잘 대접하였더니 이에 말하기를 “나는 본시 용성국(한편 正明國 혹은 琓夏國이라고도 한다. 완하는 혹 花廈國이라고도 한다. 용성은 왜의 동북 일천리에 있다) 사람으로 우리나라에 일찍이 이십팔 용왕이 있는데, 모두 다 사람의 태에서 태어나 5~6세 때부터 왕위에 올라 만민을 가르치고 정성을 닦았습니다. 그리고 팔품의 姓骨이 있지만 선택하는 일이 없이 모두 왕위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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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57 三國遺事(1281) 4
이때 부왕 含達婆가 積女國의 왕녀를 왕비로 삼았는데 자식 구하기를 기도하여 7년 만에 커다란 알 한 개를 낳았습니다. 이에 대왕이 군신들을 모아 ‘사람이 알을 낳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없었던 일이니 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 하고 궤를 만들어 나를 넣고 일곱 가지 보물과 노비들을 함께 배 안에 실은 후 ‘인연이 있는 곳에 닿으면 나라를 세우고 집을 이루라’ 하였습니다. 그러자 붉은 용이 나타나 배를 호위하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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