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0 국방부 전군 주요지휘관회의
다른 지휘관들은 회의실로 가고 저만 국방부장관실로 갔더니 주영복 장관, 유병현 합참의장, 김종곤 해군총장, 윤자중 공군총장 등이 있었다. 주영복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대통령을 보좌하는 협의회를 구성하며 국회를 해산하는 조치를 토의하자고 했으나, 유병현이 계엄확대는 군에서 논의할 수 있지만 나머지 두 가지는 정치적인 것이므로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자, 주영복이 '오늘 회의에서는 계엄확대만 논의하자'고 하고 그것만 대통령에게 건의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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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0 11공수 증파 결정
○ 18일 16시경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시위군중이 점차 증가되어 1천여 명에 이르고, 파출소 7개, 차량 1대가 불탔다는 상황보고를 받고 11공수 병력을 증파하기로 결정했다.
○ 19일 11공수 병력 1천1백명을 광주에 투입했다.
○ 20일 3공수 병력 1천4백여명을 광주에 투입했다.
○ 21일부터 22일 사이에 20사단 약 4천4백여명을 광주에 증파했다.
○ 광주지역 병력 증파 문제에 관해 전두환이나 노태우와 상의한 기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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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 이희성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사실상 군권을 장악해 군을 주도한 것은 사실이나 그들이 직접 제가 진압작전을 수행하는 것에 관여해 간섭한 사실은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보안사 지휘계통을 통하거나 육본 참모들을 통해 광주사태 진압 과정에 관여했는지 여부는 저로서는 알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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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0 국무회의
그때까지는 지역계엄으로써 대통령-국무총리-국방부장관-계엄사령관 순으로 지휘를 받았으나, 전국계엄으로 확대됨에 따라 대통령-계엄사령관으로 지휘체계가 변경되었다. 보고도 마찬가지로 국방부장관을 경유치 않고 대통령에게 보고하게 됐다. 계엄사령관의 주 임무는 전국 치안질서 확보이며, 이를 위해 군은 물론 행정, 사법 사무까지 관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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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 통보
23일경 최규하 대통령이 불러서 청와대로 갔더니 '계엄사령관이 정상적인 북괴 對南침투에 대한 업무도 벅찬데 행정, 사법에 대한 것까지 일일이 어떻게 관여하겠느냐. 그러니까 국보위라는 특별기구를 설치해 행정과 사법에 대한 사안을 맡겨 보필을 받도록 하겠다'고 통보받았다. 27일 박충훈 국무총리 서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총무처 의안으로 제출한 국보위 설치령을 의결해 31일자로 발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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