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공수 연세대, 3공수 국립묘지, 7공수 광주 전주 대전, 11공수 동국대 배치
┆10:00 2백여명의 전남대생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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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31 계엄사 발표
5월 18일 상오 10시쯤 광주시의 중심가로 불법진출한 전남대생 2백여명의 시위행렬은 계엄철폐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점차 격렬화, 하오 2시쯤에는 1천 여명으로 늘어나 경찰과 투석전으로 대치하면서 경찰 지프에 방화하는 등 도저히 경찰력으로는 지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에 계엄당국은 부득이 하오4시40분쯤 군병력을 투입하여 강력 저지에 나섰으며 이때의 시위 군중은 대부분 학생들이었는바 저지에 나선 젊은 군인에게 학생들은 투석과 폭행으로 대항하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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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 11공수 증파 결정
○ 18일 16시경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시위군중이 점차 증가되어 1천여 명에 이르고, 파출소 7개, 차량 1대가 불탔다는 상황보고를 받고 11공수 병력을 증파하기로 결정했다.
○ 19일 11공수 병력 1천1백명을 광주에 투입했다.
○ 20일 3공수 병력 1천4백여명을 광주에 투입했다.
○ 21일부터 22일 사이에 20사단 약 4천4백여명을 광주에 증파했다.
○ 광주지역 병력 증파 문제에 관해 전두환이나 노태우와 상의한 기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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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허구가 무너지고 있다
1980년대에 학생들을 자극했던 광주□□ 이야기는 대부분 거짓으로 드러났다.
미국배후설을 믿고 미국을 공격하던 학생들은 지금 집권 세력이 되어 미군철수를 반대하는 사대역적이 되었고 전두환개입설을 믿고 30여년간 증거를 찾던 사람들은 증거가 하나도 나오지 않자 사과 또는 자백을 받아 그것을 입증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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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길 @chundokim
"518광주사태가 일어날 당시에 광주에서 근무하였다. 18일 저녁 광주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버스가 끊겨 택시를 탔다. 택시운전기사가 볼멘 목소리로 푸념한다. 공수부대가 처들어와서 여대생을 살해하고 유방을 도려냈단다."
▐ 계엄사 발표에도 18일에 이미 유언비어가 퍼져 있었다고 한다. 새벽에 계엄군이 주둔했는데 그날 저녁에 유언비어가 퍼져 있었다면 미리 준비되어 있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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