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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출신 이재명은 광주에 가서 차별의 고통과 설움을 견뎌내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만들고 지켜온 호남에 대한 역사적, 국민적 보상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800조원대 호남 반도체 투자를 반드시 성공시키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상주 출신 견훤이 전주에 가서 당나라와 신라에 의해 멸망당한 백제 의자왕의 오래된 울분을 씻어 주는 나라를 세우겠다고 한 것과 닮아 있죠.
그런데 그렇게 해서 세워진 견훤백제의 결과는 왕씨고려 500년을 넘어 이씨조선까지 이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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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고려에는 故國川의 原에 묻힌 國壤王과 故國壤에 묻힌 故國壤王이 별도로 존재합니다.
이것은 國川의 原이 곧 國壤이라는 이야기가 되니, 맥고려는 原을 壤으로도 표기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죠.
한편, 맥고려의 왕은 閔中原, 慕本原 등 原에 묻힌 사람이 많습니다.
맥고려의 고분이 대부분 들에 있는 점을 생각하면 그 原은 들의 훈차였겠죠.
그리고 맥고려는 原을 壤으로도 표기했으니, 그렇다면 壤도 들의 훈차가 됩니다.
한편, 고려의 지명 今勿内는 黒壤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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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 閭達
朱蒙在夫餘時妻懐孕朱蒙逃後生一子字始閭諧及長知朱蒙為國主即與母亡而歸之名之曰閭逹委之國事朱蒙死閭達代立
지난 날 주몽이 부여에 있었을 때 부인이 잉태하였었는데 주몽이 도망한 뒤에 한 아들을 낳으니 자를 처음에는 여해라 하였다. 성장하여 주몽이 국왕이 되었음을 알고는 곧 그 어머니와 함께 도망하여 오니 이름을 여달이라 하고 나라 일을 그에게 맡겼다. 주몽이 죽자 여달이 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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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 宮
莫來子孫相傳 至裔孫宮 生而開目能視 國人惡之 及長凶虐 國以殘破
막래의 자손이 대대로 왕위를 이어 후손 궁에 이르렀다. 궁은 태어나면서부터 눈을 뜨고 보았으므로 국인들이 미워하였다. 성장함에 흉악하고 사나워 나라가 그로 말미암아 쇠잔해지고 파멸하게 되었다.
▐ 위서는 궁이 여달-여율-막래로 이어지는 부자관계의 후손이라고 하지만 삼국사기는 궁이 유리(여달)의 아들인 고추가 재사의 아들이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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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 宮
태조대왕(국조왕이라고도 한다)의 이름은 궁이다. 어렸을 때의 이름은 어수다. 유리왕의 아들인 고추가 재사의 아들이고, 어머니 태후는 부여 사람이다. 모본왕이 죽고 태자가 못나 사직을 맡기에 부족하자, 나라 사람들이 궁을 맞이하여 뒤를 이어 왕위에 앉게 하였다. 왕은 태어나자마자 눈을 떠서 볼 수 있었고, 어려서 조숙하여 뛰어났다. 나이가 일곱 살이어서 태후가 수렴청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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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65 ◾雞林
閼智→勢漢→阿道→首留→郁甫→仇道→末仇→奈勿→巴胡→習寶→智證→立宗→眞興→眞智→龍樹→武烈→文武┆閼智부터 味鄒까지 7대인데, 7대는 3천궁녀나 100만대군처럼 한 집안의 유래가 오래된 것을 표현하는 상투적인 어구다.
이것은 閼智 설화가 味鄒 시기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훗날 김씨를 칭하게 되는 가문에서 처음 왕이 된 味鄒는 자신의 혈통에 신성성을 부여하는 일은 꼭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호를 雞林으로 바꾼 것도 味鄒 시기가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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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단군조선, 기자조선 그리고 위만조선을 합쳐 고조선이라 합니다.
단군조선은 천손 단군이 요임금 때 처음 세웠다는 조선이고, 기자조선은 은나라의 기자가 주나라에 의해 조선에 봉해지면서 단군조선을 대체했다는 조선이며, 위만조선은 연나라의 위만이 한나라에서 망명해 와서 기자조선을 교체한 조선입니다.
그러나 단군조선은 왕씨고려 때 편찬된 삼국유사에 처음 나타나고 기자조선은 한나라 때 편찬된 상서대전에 처음 나타나기 때문에, 모두 역사적 사실이 아닙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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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장 유홍준은 유물은 절대 평가도 중요하지만 상대 평가도 중요하다며 화려한 백제 금동향로와 소박한 낙랑 박산로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평가는 예술품에나 적용할 잣대고 유물은 역사적 맥락이 중요하죠.
낙랑 박산로 대신 서한의 금동반룡주작박산로와 비교해 보면, 백제 금동향로는 그 조형의 뿌리가 수백년을 거슬러 올라가 서한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또 백제지역에서 전후로 연결될 수 있는 향로가 전혀 출토되지 않고 있는 점을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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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전우용은 조선이 삼한을 통합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성계가 국호로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태조실록에는 이성계가 조선을 국호안으로 한 이유를 옛 기자 시기의 국호였기 때문이라 했다고 되어 있고, 명사에도 주원장이 이성계의 국호안들을 보고 옛 국호를 따르라며 조선으로 정해주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성계가 언급한 기자는, 주나라에 의해 조선에 봉해졌다는 중국인인데, 낙랑에서 고려로 이어지며 숭배되었지만, 삼한을 통합한 신라에서는 전혀 숭배되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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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 강인욱은,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분을 놓고, 왜인의 무덤이라는 단순한 설명 대신, 다소 복잡한 설명을 내놓습니다.
백제가 고려의 침공을 받아 남쪽으로 도읍을 옮겨가자, 이 지역의 토착 세력들이 위협을 느끼고, 자신들의 뒷배에 왜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무덤을 왜의 양식으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백제는 그 훨씬 전부터, 마한을 병합하면서 이곳과 접해 왔고, 또 이곳을 돌아 열도의 왜와 자주 사신을 주고 받았는데, 그런데도 이곳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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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65 ◾閼智
그러나 閼川 양산촌에서 사로국 시조가 알에서 나왔다고 하고 智는 신라인의 인명에 붙는 접미사이므로 閼智는 알에서 나왔다고 해서 붙인 이름인 듯하다.
朴居西干(밝은 임금)의 이름도 알지였는데 훗날 신라김씨가 자신들의 시조도 알지라 주장하고 김씨 성을 쓰면서 자신들의 알지는 알이 아닌 금궤에서 나온 것으로 고치고 사로국 시조 알지는 朴居西干을 이름으로 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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