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00.0250 낙랑 고분벽화
지하에 돌로 무덤칸을 만들고 흙을 씌운 외칸으로 된 돌칸흙무덤.
북쪽 벽에는 무덤의 주인공과 그의 아내의 것으로 보이는 수레가, 그 아래위로는 창을 든 군사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동쪽 벽에는 3열로 구성된 개마무사 대열이 형상되어 있으며 서쪽 벽에는 북쪽을 향하여 달리는 말과 건물 같은 것이 그려져 있다.
무덤의 구조 형식과 벽화의 내용, 그곳에서 나온 유물 등으로 보아 이 무덤이 3세기 전반기에 축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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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당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이 경선을 거쳐 김대중 한 사람만 선거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1987년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는 두 사람이 모두 나와 각각 28%와 27%의 지지를 얻어 37%의 지지를 얻은 노태우가 당선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지지율을 합치면 과반을 넘었기 때문에 야권에서는 단일화를 회피한 김대중에게 선거패배의 책임을 많이 물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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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des
So one day, when Persephone was picking flowers, the earth opened beneath her feet and _____ came out of the earth with his chariot and black horses. #Gree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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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36 梁書
其俗呼城曰健牟羅 其邑在內曰啄評 在外曰邑勒 亦中國之言郡縣也 國有六啄評 五十二邑勒┆왕성을 건모라라 부르며 그 읍이 안에 있는 것은 탁평이라 하고 밖에 있는 것은 읍륵이라 하니, 이것은 중국의 군현과 같은 말이다. 나라 안에는 6군데의 탁평과 52군데의 읍륵이 있다.
❸ 喙評(501 중성리 신라비) = 啄評(636 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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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살해 사건을 수사하던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은 1979년 12월 12일에 대통령 살해에 관여한 혐의로 자신의 상관이던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체포했습니다.
이는 합리적 의심에 의한 것이었고 당시는 계엄령 하에 있었기 때문에 계엄사령관을 체포하기 위해서는 군부의 소장파 세력이 규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학생이던 윤석열은 교내에서 모의 재판을 열어 이를 반란으로 규정하고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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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식민사관은 일제 식민사관의 반도적 속성론에서 일본을 빼고 미국을 끼워넣은 동북아균형자론을 말합니다. 조선의 남침을 막기 위해 들어온 미군에게 통일 후까지 주둔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주었죠. 결과적 식민사관은 대중들의 시선을 고대사나 반일 문제로 돌려 미군철수를 비껴가게 하려는 수작을 말합니다. 한사군과 임나일본부를 부정하고 한국의 고대 국가가 대륙을 호령하였다고 믿는다고 한국에 있는 미군기지가 캘리포니아로 옮겨지는 것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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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험진은 지금의 길주에 있었고 정계비는 신라의 황초령비나 마운령비처럼 보통 고개에 세워지므로 공험진 정계비 또한 길주에서 명천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세워졌을 듯합니다.
그러나 옥저인들을 잔혹하게 학살하고 정계비를 세웠고 그들의 강한 저항을 받아 바로 돌려주었으므로 공험진 정계비는 옥저인들에 의해 바로 파괴되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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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영산강 유역은 다른 지역과 다른 매우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을 따로 지칭하는 말이 없습니다.
마한이란 말을 쓰는 사람도 있지만 마한은 반도 서부를 아우르는 말이라 이 지역을 특정하지 못하죠.
한때 모한이라는 표현도 시도되었으나 모한은 마한의 이칭에 불과합니다.
영산강 마한이란 표현도 많이 쓰지만 길어서 불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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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solgga_history
삼국사기의 고구려 지리지에는 영덕에 있던 也尸忽郡은 소속된 현이 없고 청하에 있던 阿兮縣은 영해에 있던 于尸郡에 소속되어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영해는 영덕의 북쪽에 있고 청하는 영덕의 남쪽에 있기 때문에 청하에 있던 阿兮縣이 영해에 있던 于尸郡에 소속될 수는 없습니다. 삼국사기는 于尸郡과 也尸忽郡을 바꾸어 기록한 듯합니다.
이 오류는 신라 지리지에도 이어져 阿兮縣의 개칭인 海阿縣이 于尸郡의 개칭인 有鄰郡에 소속되어 있다고 기술되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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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p
▐ 안강은 남북으로 경주와 영덕을 잇는 길목에 있고 동쪽으로는 형산강을 따라 동해의 영일만에 이르며 서쪽으로는 고개를 넘어 낙동강으로 연결될 수 있는 교통의 요지다.
형산강으로 흘러드는 두 지류 사이에 형성된 농경지도 넓어 고대로부터 정치적 성장이 빨랐을 것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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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왕씨고려의 현종 때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거란이 침공해 오자 현종은 나주로 피난을 가게 되는데 삼례역에 이르자 호종하던 나주 출신 박섬이 “전주는 옛 백제이므로 태조께서도 싫어하셨으니 주상께서는 행차하지 마옵소서.”라고 하니 현종은 전주에 들르지 않고 장곡역으로 바로 갔습니다.
박섬은 왕건이 경계한 지역이 전주일 뿐이고 경계한 이유는 견훤백제였기 때문으로 인식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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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은 훈요십조에서 차현 이남과 공주강 바깥이 산의 모양과 땅의 기세가 모두 거스르게 뻗어 있어 국가의 변란을 일으킬 수 있고 또 통합당한 원한을 품고 있어 왕실을 침범할 우려가 있으므로 조정에 참여하거나 왕후가 되거나 외척과 혼인을 하거나 해서 나라의 정사를 잡게 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차령과 금강 이남이라고 하면 충청도도 많이 포함되는데, 이상하게도 이 차별 지역은 이씨조선에 와서 전라도로 인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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