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0 圎山郷
▐ 백제가 마한을 멸망시킬 때 圓山과 錦峴은 이듬해까지 항복하지 않은 적이 있다. 그 圓山은 圎山郷과 관련이 있어 보이고 圎山郷은 신라의 서쪽 경계라고 했으므로 圓山은 대전이 어울린다. 이곳은 562년에 왜가 백제에서 신라를 공격할 때 출발한 哆唎에도 대응된다. 또 백제가 母山城을 공격한 이듬해에 拘壤 그리고 그 이듬해억 圎山郷을 공격한 것으로 보아 母山城과 拘壤도 대전에서 멀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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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臨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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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36 骨伐國
▐ 骨伐國은 지금의 영천에 있었다. 신라가 내륙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영천을 거쳐가야 한다. 따라서 236년 이전에 鷄立嶺路(156), 竹嶺(158), 召文國(185) 그리고 甘文國(231)으로 진출했다는 기록은 모두 이 236년 이후로 물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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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58✘ 三國史記(1145)
竹嶺을 개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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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56✘ 三國史記(1145)
鷄立嶺路를 개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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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古寧郡
신라가 함창 지역의 소국을 병합하고 古冬攬郡 또는 古陵縣을 설치하였다가 경덕왕 때 古寧郡으로 개칭하였다. 따라서 병합되기 전의 소국은 古寧加耶國보다 古冬攬國 또는 古陵國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이는 甘文國을 병합해서 甘文郡으로 했다가 開寧郡으로 바꾼 사례로 짐작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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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尙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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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85✘ 三國史記 신라
파진찬 仇道와 일길찬 仇須兮를 좌·우軍主로 임명하여 召文國을 공격하였다. 軍主라는 이름이 이때부터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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