濊는 단단대령 남쪽을 돌아 대동강을 거쳐 중국과 교류하였는데 위만 조선에 의해 이 길이 막히자 濊君 남려 등은 28만 구를 들어 황초령을 넘고 압록강을 지나 요동에 귀부하였다. 한무제는 濊에 蒼海郡을 설치하였다가 수년 후에 폐지하였다.
蒼海는 푸른 바다라는 뜻으로 누런 바다라는 뜻의 黃海와 대조된다. 濊의 위치로 보나 蒼海의 뜻으로 보나 蒼海郡은 동해에 접한 지역으로 볼 수 밖에 없다.
蒼海郡의 설치 경험은 훗날 臨屯郡을 설치하는 바탕이 되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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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1 史記
▐ 漢武帝(-141~-87)가 주변의 兩越, 西南夷, 朝鮮 그리고 匈奴를 경략하는 이야기 중의 일부다.
朝鮮은 -108년에 漢에 병합되었으니 이 이야기는 그 전의 것이다.
兩越을 경략하면서 江淮之閒 주민들이 군비 부담을 졌고 西南夷를 경략하면서 巴蜀之民이 노역에 시달렸듯이, 朝鮮을 경략하면서는 燕齊之閒의 주민들이 그 부담을 졌던 듯하다.
15421#15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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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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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1 史記
아들을 거쳐 손자 우거 때에 이르러서는 유인해 낸 漢 망명자 수가 대단히 많게 되었으며, 천자에게 입현치 않을 뿐만 아니라 진번 주변의 여러 나라들(眞番旁衆國 또는 眞番旁辰國 진번 곁의 진국)이 글을 올려 천자에게 알현하고자 하는 것도 또한 가로막고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
15421#6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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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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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2 漢書 -0128
彭吳穿穢貊朝鮮置滄海郡則燕齊之閒靡然發動
팽오가 예맥조선을 뚫고 창해군을 설치하자 연과 제 사이에 소란이 일었다.
▐ 사기(-91)의 賈滅朝鮮이 穿穢貊朝鮮으로 바뀌어 있다. 사기에 없는 예군 남려 이야기가 한서에 수록되면서 이 부분도 수정이 된 듯하다. 예맥조선을 뚫는다는 표현은 창해군이 그들 지역을 지나 동해안에 설치되었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15421#15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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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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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5 後漢書
濊君南閭等畔右渠 率二十八萬口詣遼東內屬 武帝以其地為蒼海郡 數年乃罷
예군 남려 등이 우거를 배반하고 28만 구를 이끌고 요동에 귀속하였으므로 무제는 그 지역으로 창해군을 만들었으나 수년 후에 곧 폐지하였다.
▐ 우거를 배반하였다는 표현은 사기(-91)에 위만조선이 우거 때에 이르러 진번 주변의 여러 나라들이 글을 올려 천자에게 알현하고자 하는 것을 가로막고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는 부분과 연결된다.
15421#5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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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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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5 ◾單單大領 北路
왕씨고려말에 압록강과 영흥만을 잇는 길은 집안-강계-설한령-황초령-화주였다. 한무제 시기에 중국과 예를 잇는 길이 개척되었다면 이 경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집안에서 중국과 통하는 길은 북쪽으로 요동으로 연결되는 길과 남쪽으로 압록강을 따라 내려가 발해를 건너는 길이 있다. 원래 예와 중국을 잇는 길은 단단대령 남쪽을 돌아 대동강을 지났는데(單單大領 南路) 위만조선에 의해 막히자 이 길이 개척되었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15421#11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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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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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三國史記 0056
伐東沃沮 取其土地爲城邑 拓境東至滄海 南至薩水
동옥저를 정벌하고 그 땅을 빼앗아 성읍으로 삼았다. 국경을 넓혀 동쪽으로는 창해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살수까지 이르렀다.
▐ 蒼은 푸르다는 뜻이고 滄은 큰 바다라는 뜻이다. 예군이 투항해오자 한나라가 설치한 蒼海郡은 예의 북쪽에 있는 동옥저를 고구려가 정벌하고 이르른 滄海에 접해 있었을 듯하다.
15421#17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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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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