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0057~0290 ❶ 三韓의 形成

三韓¹=馬韓+辰韓+弁韓=韓國¹ ┆반도의 북부에 朝鮮, 眞番 그리고 濊가 있었는데 漢이 병합하고 樂浪郡을 설치하였다. 남부에는 辰國이 있었는데 樂浪郡에서 떨어져 나온 眞番의 일부와 함께 韓이라 불리게 되었다. 韓에는 馬韓, 辰韓 그리고 弁韓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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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
한나라는 -108년에 위만조선을 정벌하고 낙랑, 眞番, 임둔 그리고 현도군을 설치했다. -82년에는 임둔과 함께 眞番을 폐지하고 眞番 15현 중 7현만 낙랑에 소속시켰다. 훗날 낙랑은 眞番의 나머지 8현을 되찾기 위해 '원래 조선은 기자의 후예인 韓氏가 다스리고 있었는데 연나라에서 온 위만에게 쫓겨 바다를 거쳐 韓王이 되었고 그래서 그곳을 韓이라 부른다'는 이야기를 퍼뜨렸다. 이어 眞番 남쪽에 있던 辰國도 韓으로 묶어 辰韓이라 했다.
30685#30801 SIBLINGS CHILDREN 30801
 
0003 三國史記(1145) 高句麗
王聞之震怒 罷陜父職 俾司官園 陜父憤 去之南韓 왕이 이를 듣고 매우 화가 나 협보의 관직을 파하고 관원을 맡아보게 하였다. 협보가 분하여 남한으로 가버렸다.
30685#30799 SIBLINGS CHILDREN 30799
 
0044 後漢書(445) 光武帝紀
秋東夷韓國人率衆詣樂浪內附 가을에 동이 한국인이 무리를 거느리고 낙랑에 내부하였다.
30685#1864 SIBLINGS CHILDREN 1864
 
0044 後漢書(445) 東夷列傳
建武二十年 韓人廉斯人蘇馬諟等 詣樂浪貢獻 光武封蘇馬諟 爲漢廉斯邑君使 屬樂浪郡 四時朝謁 한의 염사 사람인 소마시 등이 낙랑에 와서 공물을 바쳤다. 광무제는 소마시를 대하여 한의 염사읍군으로 삼아 낙랑군에 소속시키고 철마다 조알하도록 하였다.
30685#5483 SIBLINGS CHILDREN 5483
 
0163⁻ 潛夫論
其後韓西亦姓韓爲衛滿所伐遷居海中 그후 한서도 역시 韓씨 성을 사용하였는데, 위만의 침공을 받아 바다 가운데로 옮겨갔다.
30685#30691 SIBLINGS CHILDREN 30691
 
0245 三國志(289)
高句麗가 배반하므로 또 다시 약간의 군대로 토벌하면서 지극히 먼 지방까지 추격하니, 烏丸과 骨都를 넘고 沃沮를 거쳐 肅愼의 왕정을 짓밟고 동쪽으로 大海에까지 이르렀다. 遂周觀諸國 采其法俗 小大區別 各有名號 可得詳紀 드디어 여러 나라를 두루 관찰하고 그들 나라의 법령과 습속을 수집하여 나라의 크고 작음의 구별과 각국의 명칭을 상세하게 기록할 수가 있었다.
30685#6705 SIBLINGS CHILDREN 6705
 
0245 三國志(289)
韓은 帶方의 남쪽에 있는데 동서로 바다가 경계이고 남으로 倭와 접한다. 마한, 진한 그리고 변한이 있다. 마한은 서쪽에 있는데 伯濟國을 비롯한 54개 나라로 이루어져 있다. 큰 나라는 만여 집이고 작은 나라는 수 천 집인데 합하면 10여만 집이다. 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있는데 斯盧國을 비롯한 12개 나라로 이루어져 있다. 변한도 12개 나라로 이루어져 있는데 진한과 변한의 큰 나라는 4~5천 집이고 작은 나라는 6~7백 집이어서 합하면 4~5만 집이다.
30685#30706 SIBLINGS CHILDREN 30706
 
0245 辰韓八國
부종사 오림은 낙랑이 본래 한국을 통치했다는 이유로 진한 8국을 분할하여 낙랑에 넣으려 하였다. 신지와 한인들이 모두 격분하여 대방군의 기리영을 공격하였다. 태수 궁준과 낙랑태수 유무가 군사를 일으켜 이들을 정벌하였는데 궁준은 전사했으나 2군은 마침내 韓을 멸하였다.
30685#13654 SIBLINGS CHILDREN 13654
 
0262 ❰❰ -0039 三國誤記 新羅
卞韓이 나라를 바쳐 항복해 왔다.
30685#30708 SIBLINGS CHILDREN 30708
 
0275~0280 通典(801)
晉武帝咸寜中 馬韓王來朝 自是無聞 三韓蓋為百濟新羅所吞并 275~280년에 마한왕이 조공을 왔다. 이후는 소식이 없다. 삼한은 모두 백제와 신라에 병합되었다.
30685#30707 SIBLINGS CHILDREN 30707
 
0280┆0281┆0286 晉書(648) 辰韓
武帝太康元年 其王遣使獻方物 二年復來朝貢 七年又來
30685#29625 SIBLINGS CHILDREN 29625
 
0280┆0281┆0286┆0287┆0289┆0290 晉書(648) 馬韓
武帝太康元年 二年 其主頻遣使入貢方物 七年 八年 十年 又頻至 太熙元年 詣東夷校尉何龕上獻
30685#14913 SIBLINGS CHILDREN 14913
 
0281 ❰❰ -0020 三國誤記 新羅
호공을 마한에 보내니 馬韓王이 말했다. “辰卞二韓 爲我屬囯 比年不輸職□ 事大之禮 其若是乎 진한과 변한은 우리의 속국인데 근년에 공물을 보내지 않으니 큰 나라를 섬기는 예의가 어찌 이와 같은가?” 호공이 대답했다. “自辰韓遺民 以至卞韓·樂浪·倭人 無不畏懷 진한 유민으로부터 변한, 낙랑 그리고 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두려워하지 않는 바가 없습니다." 왕이 분노하여 그를 죽이려 하자 좌우가 간하여 그치고 돌아가게 해주었다.
30685#30710 SIBLINGS CHILDREN 30710
 
0282 ❰❰ -0019 三國誤記 新羅
馬韓王이 죽었다. 혹자가 왕에게 설득하기를, “西韓의 왕이 지난번 우리 사신에게 모욕을 주었는데 지금 그 상을 당하였으니 그 나라를 정벌하면 넉넉히 평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남의 재앙을 다행으로 삼는 것은 어질지 않은 일이다.”라며 따르지 않고, 사신을 보내 조문하고 위로하였다.
30685#30711 SIBLINGS CHILDREN 30711
 
0284 ❰❰ -0017 三國誤記 百濟
王謂羣臣曰 靺鞨²連我北境 其人勇而多詐 冝繕兵積穀 爲拒守之計 왕이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말갈은 우리의 북쪽 경계와 잇대고 있는데 용감하고 속임수가 많으니 마땅히 병장기를 수선하고 양곡을 쌓아두어 막아 지킬 계획을 세워야 한다.”라고 하였다.
30685#30750 SIBLINGS CHILDREN 30750
 
0285 ❰❰ -0016 三國誤記 百濟
靺鞨²侵北境 王帥勁兵 急擊大敗之 말갈이 북쪽 경계를 침범하였다. 왕은 굳센 군사를 거느리고 이를 급히 쳐서 크게 이겼다.
30685#30751 SIBLINGS CHILDREN 30751
 
0286 ❰❰ -0015 三國誤記 百濟
遣使樂浪²修好 낙랑에 사신을 보내 우호를 닦았다.
30685#2666 SIBLINGS CHILDREN 2666
 
0290.02 ❰❰ -0011 三國誤記 百濟
靺鞨²賊三千 來圍慰禮城 王閉城門不出 經旬賊糧盡而歸 말갈의 적병 3,000명이 와서 위례성을 포위하자 왕이 성문을 닫고 나가 싸우지 않았다. 열흘이 지나자 적은 양식이 떨어져 돌아갔다.
30685#30752 SIBLINGS CHILDREN 30752
 
0290.07 ❰❰ -0011 三國誤記 百濟
馬首城을 쌓고 甁山柵을 세웠다. 樂浪²太守의 사신이 다음과 같이 아뢰어 말하였다. “지난번에는 서로 예를 갖추어 방문하고 우호를 맺어 뜻이 한 집안과 같았는데, 지금 우리의 강역을 핍박하여 성을 쌓고 목책을 세우고 있으니, 혹시 야금야금 먹어 들어올 계책이 있어서인가?” 이로 말미암아 樂浪²과의 우호를 잃게 되었다.
30685#30736 SIBLINGS CHILDREN 30736
 
0290_ 晉書(648)
帝崩於含章殿 時年五十五 葬峻陽陵 廟號世祖 ▐ 서진 무제의 사후 서진은 쇠퇴의 길로 들어섰고 반도는 재편의 길로 들어섰다.
30685#5983 SIBLINGS CHILDREN 5983
 
0291~0368 韓國史 ❷ 三韓의 再編
30685#30714 SIBLINGS CHILDREN 3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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