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의 중북부에 朝鮮, 眞番 그리고 濊가 있었는데 漢이 병합하고 樂浪郡을 설치하였다. 남부에는 辰國이 있었는데 樂浪郡에서 빠진 眞番 남부와 함께 韓이라 불리게 되었다. 韓에는 馬韓, 辰韓 그리고 弁韓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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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5 三國志(289) 요약 2
朝鮮을 멸하고 樂浪郡, 真藩郡 그리고 臨屯郡을 설치하였다. 이듬해에는 沃沮에 玄菟郡을 설치하였다. 얼마 후 真藩과 臨屯을 폐하여 樂浪과 玄菟에 합쳤다. 玄菟는 高句麗의 서북쪽으로 옮기고 沃沮는 樂浪에 소속시켰다. 다시 樂浪의 단단대령 동쪽을 갈라 동부도위를 설치하였다가 濊人의 자치를 허용하였다. 樂浪郡의 남쪽은 분할하여 帶方郡을 설치하였다. 韓은 帶方의 남쪽에 있는데 馬韓, 辰韓 그리고 弁韓으로 이루어져 있다. 馬韓은 서쪽이고 辰韓은 馬韓의 동쪽이다.
5802#5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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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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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65± 三國志(魏略) -0323-
侯準旣僭號稱王 為燕亡人衞滿所攻奪 후 준이 참람되이 왕이라 일컫다가 연나라에서 망명한 위만의 공격을 받아 나라를 빼앗겼다.
(昔箕子之後朝鮮侯 見周衰 燕自尊為王 欲東略地 朝鮮侯亦自稱為王 欲興兵逆擊燕以尊周室 옛 기자의 후예인 조선후는 주나라가 쇠약해지고 연나라가 스스로 높여 왕이라 칭하고 동쪽으로 침략하려는 것을 보고, 자신도 왕을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연나라를 역공하여 주 왕실을 받들려 하였다.)
5802#2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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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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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1 ❰❰ -0020 三國誤記 新羅
호공을 마한에 보내니 馬韓王이 말했다. “辰卞二韓 爲我屬囯 比年不輸職□ 事大之禮 其若是乎 진한과 변한은 우리의 속국인데 근년에 공물을 보내지 않으니 큰 나라를 섬기는 예의가 어찌 이와 같은가?” 호공이 대답했다. “自辰韓遺民 以至卞韓·樂浪·倭人 無不畏懷 진한 유민으로부터 변한, 낙랑 그리고 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두려워하지 않는 바가 없습니다."
왕이 분노하여 그를 죽이려 하자 좌우가 간하여 그치고 돌아가게 해주었다.
5802#3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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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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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6.07 ❰❰⁵ 0006 三國誤記 百濟
왕이 熊川柵을 세우자 馬韓王이 사신을 보내 말하였다.
“王初渡河 無所容足 吾割東北一百里之地安之 왕이 처음 강을 건너왔을 때 발을 디딜 만한 곳도 없었는데, 내가 동북쪽 100리의 땅을 떼어주어 편히 살게 하였다. 이제 나라가 완성되고 백성들이 모여들자 ‘나와 대적할 자가 없다’고 하면서 성과 연못을 크게 설치하여 우리의 강역을 침범하니, 어찌 의리에 합당하다고 할 수 있는가?” 왕이 부끄러워하여 마침내 목책을 헐어버렸다.
5802#17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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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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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5 後漢書 -0195±
初朝鮮王準爲衛滿所破乃將其餘衆數千人走入海攻馬韓破之自立爲韓王
과거에 조선왕 준이 위만에게 패하자 남은 무리 수천명을 거느리고 바다로 도망가 마한을 공격하여 쳐부수고 스스로 韓王이 되었다.
▐ 遷居海中 → 走入海居韓地自號韓王 → 走入海攻馬韓破之自立爲韓王 바다 가운데가 韓地로 바뀌더니 다시 馬韓으로 바뀌었다.
┆삼국지(289)의 將其左右宮人도 將其餘衆數千人으로 불어났다.
5802#5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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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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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5 後漢書
馬韓最大共立其種爲辰王都目支國盡王三韓之地其諸國王先皆是馬韓種人焉
마한이 가장 강대하여 그 종족들이 함께 왕을 세워 辰王으로 삼아 目支國에 도읍하여 전체 삼한 지역의 왕으로 군림하는데, 여러 나라 왕의 선대는 모두 마한 종족의 사람이다.
▐ 진왕에 대해 삼국지와는 이런 차이가 있다.
治月支國➔都目支國┆其十二國屬辰王➔盡王三韓之地
▐ 辰韓이 韓의 일부분이니 辰王도 韓의 일부분을 다스리는 게 자연스럽다.
5802#6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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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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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西周)
이때 떠난 도시 국가의 주민은 韓을 씨로 사산했기 때문에 하북성 일대에는 옛날 韓을 씨로 하는 자가 많아 진나라말의 연왕 韓廣, 위만조선의 상 韓陰 등이 있다. 그 외 낙랑군과 대방군에도 韓씨는 산동계의 왕씨에 이어 많았다. 조선의 삼한이라는 이름도 낙랑군이나 진번군의 韓씨에서 일어났다는 설이 있다.
5802#8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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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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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랑구역
락랑구역 토성리에는 토성터가 있고 주변에는 漢/晋대 초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분묘군(낙랑한묘)이 있다. 일조시대에 행해진 발굴의 결과, 토성리 토성에서는 건물·도로·창고군이나 낙랑의 문자를 기록한 기와 등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낙랑군의 정부였다고 추정하며 '낙랑토성'으로도 부르고 있다.
5802#4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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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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