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新羅民族論 > 0012 高句麗 > 0427 낙랑고려 > 벽화 > 개마무사(鎧馬武士) > 0450± 통구12호분

집안의 대왕촌에 있다. 친족관계에 있는 2사람의 묘주인이 무덤방을 별도로 하면서 한 무덤 안에 매장된 경우이다. 무덤방은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돌을 쌓고 그 위에 석회를 입힌 뒤 다시 아교성 물질을 바르고 벽화를 그려 장식하였다.
 
단군설화의 기원
ᐥ단군설화는 중국의 위만이 평양으로 건너와 세웠다는 위만조선의 건국설화에서 비롯되었다.ᐥ
 
0475-09 三國史記(1145)
고구려 왕 거련(장수왕)이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와서 수도 한성을 포위했다. 왕(개로왕)이 싸울 수가 없어 성문을 닫고 있었다. 상황이 어렵게 되자 왕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기병 수십 명을 거느리고 성문을 나가 서쪽으로 도주하려 하였으나 ... 고구려 장수 걸루 등이 왕을 보고 말에서 내려 절을 하고 왕의 낯을 향하여 세 번 침을 뱉고서 죄목을 따진 다음 아차성 밑으로 묶어 보내 죽이게 하였다. ● 벽화의 이 장면은 개로왕 살해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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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ese Cataphract
Chinese Cataph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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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마무사
개마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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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연대는 벽화의 색채가 풍부하고 필선이 세련된 것으로 보아 고구려 전성기인 5세기 중엽경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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