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는 -107년에 忽本의 紇升骨城에 高句驪縣을 설치하였는데 훗날 그곳에서 鄒牟 왕조가 성장하자 高句麗는 그 왕조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高句麗 외에도 鄒牟 왕조는 下句麗, 句麗, 高句驪, 句驪, 駒麗 등으로 불려졌다. 高麗란 표기는 중원고려비(449)에서 최초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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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三國史記
高句麗(419)
高麗(39)
▐ 삼국사기는 중국 사서의 기록을 옮기면서 고려를 모두 고구려로 바꾸었다. 그러나 최치원의 편지를 인용한 부분에서는 고려가 5회 고구려가 2회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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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7 帝王韻紀
漢元立昭二甲申 (羅之□□一年也) 開國馬韓王儉城 (今西京也 以高句麗縣名立國)
한 원제 건소 2년 갑신년(신라가 건국한지 21년이 되던 해)에 마한의 왕검성(지금의 西京. 고구려현의 이름으로 건국하였다.)에서 건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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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iography - 國名
❶ 고구려와 사로는 각각 고려와 신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처음 이름을 버리고 나중 이름으로 통일한다.
❷ 고려와 백제는 훗날 동일한 이름의 나라가 다시 세워졌는데, 원래의 나라는 그대로 두고 나중의 나라만 접두어를 붙여 구별한다. 궁예고려, 왕씨고려, 견훤백제, ...
❸ 훗날의 나라 이름에 붙이는 접두어는 왕조를 표시하는 말로 한다. 위만조선, 이씨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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驪와 駒
驪는 검은 말이라는 뜻이고 駒는 망아지라는 뜻이다. 멸칭의 성격이 있다. 추모왕에 대해 한서는 마부라는 뜻의 騶를 쓰고 삼국지는 말이라는 뜻의 騊를 쓴 것과 비슷하다. 광개토왕릉비와 속일본기는 각각 마을이라는 뜻의 鄒와 都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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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건국 설화
통전(801)에는 고구려가 후한에 와서 號曰句麗以髙為氏라고 소개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위서(554), 주서(636), 수서(636), 북사(659) 그리고 삼국사기(1145)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 모두 이를 계승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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