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결과 노태우 37%, 김영삼 28% 그리고 김대중 27%가 나왔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강한 반발이 일어나 폭력 사태가 벌어졌고 김대중은 컴퓨터 조작 선거라며 결과를 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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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12.16 선거결과
1987년 12월 16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총 투표수 2306만 6419표 중 노태우는 828만 2738표(36.6%), 김영삼 633만 7581표(28.0%), 김대중 611만 3375표(27.0%), 김종필 182만 3067표(8.1%)를 얻어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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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미대사관이 분석한 광주□□
It is probable that regionalism is playing significant roll in the intensity of the riot in Kwangju.
지역주의가 광주 폭동을 격화시키는 주요 원인이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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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12.19 한국일보
서울․光州등 散發시위
順天선 警官이 시위대흉기에 찔려 重傷
규탄大會 봉쇄로 霧散
全南大 朝鮮大생과 시민 3천여명은 18일 낮 12시부터 錦南路 中央路 등 시내중심가에서 이번 선거는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며 격렬한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낮 12시부터 도청앞 광장에서「부정선거 규탄애국湖南민중 총궐기대회」를 가지려다 경찰이 최루탄을 쏘자 錦南路와 光山洞 大義洞등 시내중심부 뒷골목 등으로 흩어져 보도블록을 깨 던지며 시위에 들어갔다.
하오 3시께는 光州市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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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12.21 평화민주당(김대중)
◇날로 심증이 굳어지는 컴퓨터 조작설: 서울신문은 아직 개표가 반밖에 진행되지 않고 있던 17일 새벽 호외를 찍어 노태우 8백만표, 양金씨 6백만표를 끝자리 숫자까지 예언했다가 황급히 회수하였다.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김대중후보가 호남에서 몰표가 나와도 한 번도 순위가 바뀌지 않은 채 시종 2~3위차를 20만 표로 일정하게 유지케한 까닭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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