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솔까 이야기 > 자료 > 비참한 최후의 왕들
 
0053 고려 모본왕
두로가 칼을 품고 왕 앞으로 나아가니 왕이 [그를] 눌러 끌어다 앉자, 이에 칼을 뽑아 왕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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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5 고려 차대왕
겨울 10월에 연나(椽那) 조의(皂衣) 명림답부(明臨荅夫)가 백성들이 견디지 못하므로 왕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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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8 백제 책계왕
13년(298) 가을 9월에 한(漢)이 맥인(貊人)과 함께 쳐들어오자 왕이 나아가 막았으나 적의 군사에게 해를 입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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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0 고려 봉상왕
창조리는 왕이 고치지 못할 것을 알고, 또 해가 [자기에게] 미칠까 두려워, 물러나와서 여러 신하들과 함께 모의하여 왕을 폐하고, 을불을 맞이하여 왕으로 삼았다. 왕은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스스로 목매어 죽었으며, 두 아들도 따라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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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 백제 분서왕
7년(304) 봄 2월에 몰래 군사를 보내 낙랑(樂浪)의 서쪽 현(縣)을 습격하여 빼앗았다. 겨울 10월에 왕은 낙랑태수가 보낸 자객에게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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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71 고려 고국원왕
겨울 10월에 백제왕이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평양성을 공격해 왔다. 왕은 군대를 내어 막다가 흐르는 화살에 맞아 이 달 23일에 죽었다. 고국(故國)의 들에 장사지냈다.<백제 개로왕(蓋鹵王)이 위(魏)나라에 표(表)를 보내기를 『쇠(釗)의 머리를 베어서 달아 매었다.』고 하였으나 지나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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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5 백제 개로왕
고려의 장수왕이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와서 서울 한성을 포위하였다. 개로왕은 곤궁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기병 수십을 거느리고 성문을 나가 서쪽으로 달아났다. 고려의 장수 걸루 등은 왕을 보고는 말에서 내려 절한 다음에 왕의 얼굴을 향하여 세 번 침을 뱉고는 그 죄를 꾸짖었다. 그리고는 왕을 포박하여 아차성 아래로 보내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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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8 백제 문주왕
4년(478) 가을 8월에 병관좌평 해구(解仇)가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르고 법을 어지럽히며 임금을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왕이 능히 제어하지 못하였다. 9월에 왕이 사냥을 나가 밖에서 묵었는데 해구가 도적을 시켜 해치게 하여 드디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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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백제 동성왕
[백가는] 왕을 원망하였는데 이 때에 사람을 시켜 왕을 칼로 찔렀다. 12월에 이르러 [왕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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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4 백제 성왕
가을 7월에 왕은 신라를 습격하고자 하여 친히 보병과 기병 50명을 거느리고 밤에 구천에 이르렀다. 신라의 복병이 일어나자 더불어 싸웠으나 난병에게 해침을 당하여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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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2 고려 영류왕
겨울 10월에 개소문이 왕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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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80 신라 혜공왕
여름 4월에 상대등 김양상(金良相)이 이찬 경신(敬信)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김지정 등을 죽였으나, 왕과 왕비는 반란군에게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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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9 신라 애장왕
왕의 숙부 언승 및 그 아우 이찬 제옹(悌邕)이 군사를 거느리고 궁궐로 들어가 난을 일으켜 왕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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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38 신라 희강왕
3년(838) 봄 정월에 상대등 김명과 시중 이홍 등이 군사를 움직여 난을 일으키고 왕의 좌우 측근들을 죽이니, 왕은 자신이 무사하지 못할 것을 알고 궁중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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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39 신라 민애왕
왕은 군사가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이찬 대흔(大昕)과 대아찬 윤린(允璘)·억훈(嶷勛) 등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이를 막도록 하였다. 또 한번 싸움에 크게 이기니, 왕의 군사는 죽은 사람이 절반이 넘었다. 이때 왕은 서쪽 교외 큰 나무 밑에 있었는데, 좌우 측근들이 모두 흩어지고 혼자 남아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월유택(月遊宅)으로 달려 들어갔으나 군사들이 찾아내어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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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신라 경애왕
견훤은 또 군사들을 풀어 놓아 공·사(公私)의 재물을 거의 모두 약탈하고, 궁궐에 들어가 거처하면서 좌우의 사람들에게 명하여 왕을 찾도록 하였다. 왕은 왕비와 첩 몇 사람과 함께 후궁에 있다가 붙잡혀 군대의 진영에 이끌려 왔다. [견훤은] 왕을 핍박하여 자살하도록 하고 왕비를 강제로 욕보였으며, 그 부하들을 풀어놓아 궁녀들을 욕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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