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솔까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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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sides are 2 _____s that kind of look like antlers.
 
ᐥ솔까역사, 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역사ᐥ
민족 정서를 배제한 객관적 시각으로 역사를 재구성한다.
17081
 
신라민족론(新羅民族論)
중국 한족(漢族)은 한(漢)나라때 형성되었고 우리 민족은 신라시대에 형성되었다.
17168
 
0320 매금
삼국사기(1145)에는 신라의 왕호가 居西干, 次次雄, 尼師今 그리고 麻立干이었다고 되어 있다. 居西干은 우두머리라는 뜻이고 次次雄은 무당, 尼師今은 잇수로 따진 연장자 그리고 麻立干은 지위를 나타내는 말뚝 중에서 최고를 말한다. 삼국사기에는 나오지 않지만 고려와 신라의 금석문과 일본서기에는 寐錦이라는 신라의 왕호가 나온다. 이는 尼師今의 이칭으로 보인다. 尼師今은 임금의 어원이다.
1961#9861
 
0396 광개토왕·장수왕·청태종
남한산성 아래 한강 이남은 한국의 왕이 외세의 침공에 여러 번 무릎을 꿇은 곳이다. 아신왕은 광개토왕 앞에 무릎을 꿇고 여러 성과 백성을 바쳤으며, 개로왕은 장수왕의 장수에게 잡혀 아차산 아래로 끌려가 처형당했고, 인조는 청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렸다.
1961#8496 COMMENT
 
0410 천리인(千里人)
기록에는 고려가 광개토왕때 모용선비의 남연에 사신을 보내 천리인 열 명과 천리마 한 필을 바쳤다고 나온다. 여기에 나오는 천리인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1961#6978 COMMENT
 
0943 훈요10조
ᐥ차현 이남과 공주의 금강 바깥쪽은 산의 모양과 땅의 기세가 모두 거스르게 뻗어 있는데 사람들의 마음도 그러하다. 그 아래 주군의 사람들이 조정에 참여하고 왕후나 외척과 혼인하여 나라의 정사를 잡게 되면, 국가의 변란을 일으킬 수도 있고 통합당한 원한을 품고 왕실을 침범하며 난을 일으킬 수도 있다.ᐥ
1961#8658 COMMENT
 
1393 화령(和寧)
화령은 왕고의 공민왕이 원나라의 쌍성총관부를 되찾아 화령부로 개칭하면서 생겨난 이름이다. 지금의 영흥만 일대로 이성계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 화령은 우리나라의 국호가 될 뻔했다. 한편, 명나라에 쫓겨난 몽골의 도읍도 화령이라 했다.
1961#2327 COMMENT
 
1406 고려공사삼일
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은 '고려의 정책이 3일을 가지 못한다(高麗公事不過三日)'는 뜻인데 신중함과 꾸준함을 강조할 때 인용되는 말이다. 이씨조선의 초기부터 꾸준히 언급되어 왔고 지금도 '냄비근성'이란 표현으로 바뀌어 여전히 인용되고 있다. 2008년의 광우병 촛불시위는 양은냄비처럼 급하게 끓어올랐다가 급하게 식었다.
1961#2331 COMMENT
 
1419 대마도 정벌
이조 세종때 왜구의 근거지인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1만 7천여 명의 병력과 두 달여 치의 식량을 200여 척의 배에 실어 보냈다. 대마도에 도착하자 주민들은 모두 산으로 도망갔고 정벌군은 배에 머물며 일부를 내려보내 치게 했으나 패하여 돌아왔다. 대마도주가 항복하는 편지에 "7월 사이에는 항상 풍파의 변이 있으니, 오래 머무름이 옳지 않습니다"라고 하자, 정벌군은 항복을 받아들이고 보름만에 돌아왔다.
1961#2410 COMMENT
 
1424 세종대왕의 처녀진헌
서울 세종로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과 함께 세종대왕의 동상이 서 있다. 세종대왕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성군으로 모셔지고 있는 왕이다. 그런 세종대왕의 행적을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통해 살펴보면 매우 난감한 부분들이 있다. 특히 세종 8년 12월의 기록을 보면 거의 사흘에 한번 꼴로 처녀를 간택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에서 말하는 처녀는 명나라 황제에게 바쳐질 진헌녀를 말한다. 마치 왕의 주된 업무가 진헌할 처녀를 뽑는 일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1961#4909 COMMENT
 
1429 고려장
이조 초기에 늙은 노인을 외따로 방치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례가 지방에 있었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 사이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조는 이 풍조를 개탄하면서 왕씨고려의 구습인 것처럼 말했다.
1961#2620 COMMENT
 
1530 황창랑
❶ 304년에 낙랑 태수가 자객을 보내어 백제왕을 살해했다는 삼국사기 기록과 ❷ 660년에 신라 소년 관창이 홀로 적진에 돌진하여 목숨을 바침으로써 백제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였다는 삼국사기 기록이 결합하여 ❸ 신라의 황창이 백제에 들어가 칼춤을 추자 백제왕이 불러 구경했는데 이때 백제왕을 죽였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이후 ❹ 이 황창이 낙랑 태수가 보낸 자객이었다는 주장이 나왔고 이어서 ❺ 이 황창이 원래 신라인이었다는 이야기도 만들어졌다.
1961#2413 COMMENT
 
1597 원숭이 부대
임진왜란때 명나라가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원숭이 부대를 투입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1961#1239 COMMENT
 
1637 병자호란과 천연두
병자호란때 청태종은 이조에서 유행하던 천연두에 감염될까 두려워 서둘러 전쟁을 끝내고 돌아갔다.
1961#8872 COMMENT
 
1896 김구 치하포 사건
치하포 사건은 1896년 치하포에서 일본인 토전양량(土田讓亮 つちだじょうりょう)이 살해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는 아래와 같은 두 가지의 주요한 논쟁이 있다. (1) 김구에 의해 살해된 일본인이 일본군 육군중위인지 민간 상인인지? (2) 김구가 그를 일본군 첩자로 인식하고 살해했는지 아니면 일본 민간인이라는 것을 알면서 살해했는지?
1961#2419 COMMENT
 
1909 안중근과 이씨왕조
황태자가 직접 전보로 아뢰기를, “이토오 태사가 오늘 오전 9시에 하얼빈 역에 도착하여 우리나라 사람의 흉악한 손에 의하여 피살되었으니 듣기에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하였다. 조령을 내리기를, “생각건대, 그와 같은 고약한 도당이 세계 형세에 어두워서 이따금 일본의 두터운 우의를 무시하려고 하다가 마침내는 전에 없던 변괴를 빚어냈으니 이는 바로 짐의 국가와 사직을 해치는 자이다." 하였다.
1961#2730 COMMENT
 
1925 재가승 여진족설
1788-1856 오주연문장전산고1871 임하필기1925 동아일보1934 동아일보1935 재가승만고 11935 재가승만고 21935 재가승만고 31935 재가승만고 41936 동아일보 11936 동아일보 21937 동아일보
 
1926 경상도 보리문디
경상도 지방에서는 지금도 친한 사이의 사람들 사이에 '문디'라는 호칭이 거리낌없이 사용되고 있다. 또 그런 말을 들어도 별로 불쾌해하지 않는다. 이 문디(나병 환자)에 대한 기록을 사서와 일조시대의 신문에서 찾아 보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제주도의 나병에 대한 기록이 이른 시기에 나온다. 1451 조선왕조실록 기건은 이사(吏事 관리들의 사무)에 조금 익숙하고, 여러 사서를 즐겨 보았다. 일찍이 제주 목사로 있을 적에는 전복을 먹지 않았으며, 또 제주가 ...
8666 COMMENT
 
1932 이봉창의 불편한 진실
이봉창 의사는 민족해방을 위해 1932년 일본수괴(日本首魁 ひろひと)에게 폭탄을 던졌으나 실패하고 체포되어 사형당한 사람이다. 그의 습격은 일본으로부터 불쾌한 통치를 받던 우리 민족에게 매우 통쾌한 일이나 이봉창이란 인물 자체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었다.
1961#2632 COMMENT
 
1991 미군철수 자주화
냉전의 해체 이후 미군철수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조건이 되었다.
1961#1042 COMMENT
 
1998 김대중협정
1998년에 체결된 신한일어업협정(일명 김대중협정)은 독도를 한일공동수역에 넣어 놓아 영유권을 훼손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협정의 전체 틀을 유지하면서 독도 주변만 수정하여 독도를 한국의 배타적 수역 안으로 편입하는 방안이 절실하다.
1961#6379 COMMENT
 
2009 친일인명사전
친일인명사전에는 을사조약을 체결한 고종, 한일합방조약을 체결한 순조 그리고 일본군 항공사령관을 지낸 영친왕이 빠져있고 만주군 중위였던 박정희가 들어가 있다.
1961#1775 COMMENT
 
荒唐古記(황당고기)
신라말 도인 간달부가 舊約秘話(구약비화), 半指遺錄(반지유록), 武俠通鑑(무협통감) 세 권의 역사서를 통합하여 펴낸 10만년 한민족 웅비의 역사.
1961#1256 COMMENT
 
결과적 식민사학
민족사학을 사칭하면서, 미군철수 자주화는 입도 벙긋하지 않고, 민중들의 민족 정서를 지나간 역사 문제로 쏠리게 하려는 자들이 있다. 이것은 민중들의 민족 정서를 미군철수 자주화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니, 결과적 식민사학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이 주로 쓰는 수법은 역사 기록에서 어색한 부분을 골라 이를 크게 비약시키고 민중들의 민족 정서를 만족시키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1961#3885
 
국사책을 찢어라!
관제역사가 숨기는 사실1997 7차교육과정
 
나라 사이의 이야기
4세기 한반도 - 반도적 속성의 전형적인 사례5세기 중국-요동-한국-왜(倭)의 외교와 전쟁고려의 냉정한 실리외교남해사(南海史)백제 개로왕의 실패는 토목공사 때문인가?왜(倭)의 수괴(首魁)는 신라때문에 홧병이 났나?충렬왕은 왜 몽골 황제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였나?햇볕정책때문에 망한 마한(馬韓)
 
비꼬는 이야기
-19세기에 잠수함과 비행기를 개발한 단군조선?smoking gun과 미스터리의 유래국사책을 찢어라!근초고왕은 신공황후의 딸랑이?김씨조선왕조사(金氏朝鮮王朝史)김씨조선의 용비어천헌법단군은 아이누인이 아니었을까?동이족이나 대쥬신보다 오투비족(O2b族)이 어떨까?발췌검증이란?
 
소설 흑룡강
ᐥ동천왕은 돌아오지 않았다.ᐥ
1961#1222 COMMENT
 
솔까 한국사
삼한시대신라시대일조시대남북시대주변의 역사
 
숨겨진 이야기
광개토왕은 한국인인가 중국인인가?국사편찬위원회도 임나경영설 인정하나?김정일은 흉노족이다?놀랍고 재미있는 역사기록 모음뇌물을 좋아했던 고종과 민비매천야록에 기록된 1894년의 일본군 모습보수는 한국독립을 원했고 진보는 한일합방을 원했다?임나경영설의 증거가 점점 드러나고 있다
 
엽기적인 이야기
고려의 엽기적인 사건들백백교(白白敎)의 무시무시한 실체
 
우리 시대의 한국 고대사
우리시대의 한국고대사 1우리시대의 한국고대사 2우리시대의 한국고대사 2
 
자료
1592-06-15 고대일록(孤臺日錄)고대왕국의 혼인관계고려초기따지기보수(保守)와 진보(進步)비참한 최후의 왕들속국(屬國)엽기적인 고려유사역사학과 식민사관충렬왕의 가무치사한 왜(倭)
 
잘못된 이야기
괴담(怪談)의 역사기마인물형 토기에는 청동솥이 실려있다?얼굴이 길면 장두형이고 얼굴이 짧으면 단두형이다?얼굴이 길면 장두형이고 얼굴이 짧으면 단두형이다?풍수지리설한민족은 북방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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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운하, 청명상하도로 꿈꿔본다김정은은 할아버지 경순왕의 뒤를 따를까?김정일 사관(史觀)일본과 관련된 여러 가지 설문일본어 한글표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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