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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삼각산 비봉에 오래된 비석이 하나 서 있었다. 사람들은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이 비석을 무학대사와 관련된 비석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김정희에 의해 글귀가 해독되고 나서는, 400여 년 전에 있었던 무학대사와 관련된 비석이 아니라 1200년도 더 된 신라진흥왕의 순수비로 밝혀진다.
이처럼 우리가 예로부터 전해들은 역사 이야기 중에는 왜곡되거나 잘못된 것이 있지 않을까?
여기서는 민족정체성과 관련된 여러 가지의 착각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1961#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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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0 매금
삼국사기(1145)에는 신라의 왕호가 居西干, 次次雄, 尼師今 그리고 麻立干이었다고 되어 있다. 居西干은 우두머리라는 뜻이고 次次雄은 무당, 尼師今은 잇수로 따진 연장자 그리고 麻立干은 지위를 나타내는 말뚝 중에서 최고를 말한다.
삼국사기에는 나오지 않지만 고려와 신라의 금석문과 일본서기에는 寐錦이라는 신라의 왕호가 나온다. 이는 尼師今의 이칭으로 보인다.
尼師今은 임금의 어원이다.
1961#9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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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43 훈요10조
ᐥ차현 이남과 공주의 금강 바깥쪽은 산의 모양과 땅의 기세가 모두 거스르게 뻗어 있는데 사람들의 마음도 그러하다. 그 아래 주군의 사람들이 조정에 참여하고 왕후나 외척과 혼인하여 나라의 정사를 잡게 되면, 국가의 변란을 일으킬 수도 있고 통합당한 원한을 품고 왕실을 침범하며 난을 일으킬 수도 있다.ᐥ
1961#8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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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 이씨 왕조
왕씨고려의 장수 이성계는 요동을 치라고 보낸 정벌군을 되돌려 왕을 쫓아내고 이씨 왕조를 세웠다. 그리고 명나라에 물어 국호를 조선으로 정한 뒤 왕씨 왕족을 멸족시켰다. 이후 명나라의 요구로 처녀를 바치기 시작했는데 그 처녀들이 순장당해도 그치지 않았다. 마침내 일본이 쳐들어왔을 때는 민중들이 궁궐과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왕자들을 붙잡아 일본군에 바치기도 했다. 망할 때는 일본으로부터 돈을 받고 통치권을 넘긴 뒤 그 통치에 부역하였다.
1961#23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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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0 황창랑
❶ 304년에 낙랑 태수가 자객을 보내어 백제왕을 살해했다는 삼국사기 기록과 ❷ 660년에 신라 소년 관창이 홀로 적진에 돌진하여 목숨을 바침으로써 백제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였다는 삼국사기 기록이 결합하여 ❸ 신라의 황창이 백제에 들어가 칼춤을 추자 백제왕이 불러 구경했는데 이때 백제왕을 죽였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이후 ❹ 이 황창이 낙랑 태수가 보낸 자객이었다는 주장이 나왔고 이어서 ❺ 이 황창이 원래 신라인이었다는 이야기도 만들어졌다.
1961#2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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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 김구 치하포 사건
치하포 사건은 1896년 치하포에서 일본인 토전양량(土田讓亮 つちだじょうりょう)이 살해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는 아래와 같은 두 가지의 주요한 논쟁이 있다. (1) 김구에 의해 살해된 일본인이 일본군 육군중위인지 민간 상인인지? (2) 김구가 그를 일본군 첩자로 인식하고 살해했는지 아니면 일본 민간인이라는 것을 알면서 살해했는지?
1961#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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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 경상도 보리문디
경상도 지방에서는 지금도 친한 사이의 사람들 사이에 '문디'라는 호칭이 거리낌없이 사용되고 있다. 또 그런 말을 들어도 별로 불쾌해하지 않는다. 이 문디(나병 환자)에 대한 기록을 사서와 일조시대의 신문에서 찾아 보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제주도의 나병에 대한 기록이 이른 시기에 나온다.
1451 조선왕조실록
기건은 이사(吏事 관리들의 사무)에 조금 익숙하고, 여러 사서를 즐겨 보았다. 일찍이 제주 목사로 있을 적에는 전복을 먹지 않았으며, 또 제주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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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 이봉창의 불편한 진실
이봉창 의사는 민족해방을 위해 1932년 일본수괴(日本首魁 ひろひと)에게 폭탄을 던졌으나 실패하고 체포되어 사형당한 사람이다. 그의 습격은 일본으로부터 불쾌한 통치를 받던 우리 민족에게 매우 통쾌한 일이나 이봉창이란 인물 자체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었다.
1961#2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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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김대중협정
1998년에 체결된 신한일어업협정(일명 김대중협정)은 독도를 한일공동수역에 넣어 놓아 영유권을 훼손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협정의 전체 틀을 유지하면서 독도 주변만 수정하여 독도를 한국의 배타적 수역 안으로 편입하는 방안이 절실하다.
1961#6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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