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仁願이 군사 1만 명으로 泗沘城에 남아서 지켰는데, 왕자 인태가 군사 7천 명으로써 보좌하였다.┆定方은 백제의 왕 및 왕족과 신료 93명과 백성 1만 2천 명을 데리고 泗沘에서 배를 타고 당나라로 돌아갔다.┆당나라 사람들이 백제 왕과 신료 93명, 졸 20,000명을 붙잡아 9월 3일 泗沘에서 배를 띄워 돌아갔다.┆定方이 왕과 태자 孝, 왕자 泰, 隆, 演 및 대신과 장사 88명과 주민 1만 2천 8백 7명을 당나라 서울로 호송하였다.
•0660.09.03 三國史記(1145)
낭장 유인원이 군사 1만 명으로 사비성에 남아서 지켰는데, 왕자 인태가 사찬 일원과 급찬 길나와 함께 군사 7천 명으로써 보좌하였다.
定方以百濟王及王族·臣寮九十三人·百姓一萬二千人 自泗沘乘舡廻唐
정방은 백제의 왕 및 왕족과 신료 93명과 백성 1만 2천 명을 데리고 사비에서 배를 타고 唐으로 돌아갔다. 김인문과 사찬 유돈 , 대나마 중지 등이 함께 갔다.
25117#40502SIBLINGSCHILDRENCOMMENT4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