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발표 > YouTube > videos > -2024.10.16 鐵嶺衞의 내막

鐵嶺衞(철령위)는 和州(화주)에 처음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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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75#31627 SIBLINGS CHILDREN 3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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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史」 以鐵嶺北 東西之地 舊屬開元 其土著軍民女直 韃靼 高麗人等 遼東統之 「高麗史」 切照鐵嶺迆北 歷文高和定咸等諸州 以至公嶮鎭 自來係是本國之地
31675#31639 SIBLINGS CHILDREN 3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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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철령위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31675#5671 SIBLINGS CHILDREN 5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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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를 몰아낸 명나라는 요양에 요동도사를 설치하고 원나라가 통치했던 동북 지역을 이곳에 소속시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원나라의 쌍성총관부였던 철령 이북에도 철령위를 설치하여 요동에 소속시키겠다며 왕고에 통보하죠.
31675#31800 SIBLINGS CHILDREN 31800
 
Name Dictionary
Names are also vocabul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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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우왕은 철령 이북이 문주·고주·화주·정주·함주 등 동해안 여러 주를 거쳐 공험진에 이르기까지 원래 왕고의 땅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사실 함주에서 공험진까지는 여진의 땅이죠. 수백년 전에 윤관이 잠깐 차지했다가 돌려준 적이 있을 뿐입니다.
31675#28471 SIBLINGS CHILDREN 28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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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史」 遼東都司遣指揮二人 以兵千餘 來至江界 將立鐵嶺衛 大明後軍都督府 來告立鐵嶺衛 寡人欲攻遼陽 卿等宜盡力 左右軍發平壤 衆號十萬
31675#31641 SIBLINGS CHILDREN 3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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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명나라는 철령위 설치를 강행하여 2명의 지휘와 천여 명의 군사들이 압록강을 넘어와 강계를 지나갑니다. 당시 요동에서 영흥만으로 가는 길은 심양을 돌아 집안에 이른 뒤 그곳에서 압록강을 건너가 강계와 황초령을 지나는 길이었습니다. 이어서 명나라는 철령위를 설치했다는 통보를 보내옵니다. 이때 철령위는 일단 쌍성총관부가 있던 화령에 설치된 듯합니다. 그러자 분노한 우왕은 이성계로 하여금 5만의 인원을 동원하여 요동을 치게 합니다.
31675#31803 SIBLINGS CHILDREN 3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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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一統志」 鐵嶺衞 在都司城北 二百四十里 古有鐵嶺城 在今衞治 東南五百里 接髙麗界 洪武二十一年 置衞於彼 二十六年 徙今治 即遼金時 嚚州故城也
31675#23307 SIBLINGS CHILDREN 23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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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이 보낸 군대는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반란을 일으켜 되돌아 오지만, 철령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습니다. 5년 뒤 지금의 철령시에서 500리 동남쪽에 있던 것을 지금의 철령시로 옮겼다는 기록만 있을 뿐입니다.
31675#31804 SIBLINGS CHILDREN 3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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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측컨대, 명나라는 왕고의 출병에 놀라 화령에 설치했던 철령위를 압록강 북안의 집안으로 대피시킨 듯합니다. 그리고 5년 뒤 마침내 철령 이북을 포기하고 심양 북쪽으로 옮긴 것이죠. 이것은 일종의 패배이기 때문에 중국은 자세하게 기록하지 않은 듯합니다.
31675#14630 SIBLINGS CHILDREN 14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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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령에 대해 잠깐 살펴보면, 원래 왕고의 화주였는데 원나라가 빼앗아 쌍성총관부를 설치했던 곳입니다. 왕고가 되찾아 화주로 되돌렸다가 화령으로 개칭한 것이죠. 그런데 당시 중국에서 쫓겨나 있던 원나라의 수도가 Qaraqorum이었는데 중국에서는 이를 화령이라 표기했습니다. 화주를 개칭한 화령과 한자도 똑같죠. 왕고의 지명 개칭에 개령, 고령 등 령이 들어간 것이 많은 것을 볼 때 이는 우연한 것으로 보입니다.
31675#28473 SIBLINGS CHILDREN 28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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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령은 이성계의 고향이기도 해서 새 왕조의 국호를 정할 때 조선과 함께 국호안의 하나로 명나라에 올려집니다. 명나라는 조선이란 국호를 정해주고 그 해에 화령에서 쫓겨나 있던 집안의 철령위를 심양 북쪽으로 옮기죠. 그렇다면 이성계가 국호안에 화령을 넣은 것은 철령 이북에 대한 영유권 의지를 간접적으로 비친 것으로 볼 수 있고 명나라가 국경에 있던 철령위를 심양 북쪽으로 옮긴 것은 그것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31675#28474 SIBLINGS CHILDREN 28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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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史」 今者出師 有四不可 以小逆大 一不可 夏月發兵 二不可 擧國遠征 倭乘其虛 三不可 時方暑雨 弓弩膠解 大軍疾疫 四不可
31675#31806 SIBLINGS CHILDREN 3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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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령위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5만의 인원이 동원되는 중대한 사건의 원인이 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매우 이상한 일이죠. 이는 출병 덕분에 철령 이북을 되찾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출병을 반대하며 일으킨 이성계의 반란이 명분을 잃기 때문에 집권한 이씨 왕조가 숨긴 듯합니다.
31675#31805 SIBLINGS CHILDREN 3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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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중국에서는 창피해서 기록하지 않고 한국에서는 반란이 명분을 잃을까봐 기록하지 않는 바람에 철령위는 역사의 미아가 되어 버렸습니다.
31675#21597 SIBLINGS CHILDREN 21597
 
참고 자료
31675#31790 SIBLINGS CHILDREN 31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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