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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5.06 魏書(554)
世祖時 釗曾孫璉 始遣使者安東奉表貢方物 并請國諱 世祖嘉其誠欵 詔下帝系名諱於其國 遣員外散騎侍郎李敖 拜璉為都督遼海諸軍事 征東將軍 領䕶東夷中郎將 遼東郡開國公 髙句麗王
쇠의 증손 련이 북위에 처음 사신을 보내 표를 올리며 조공하고 나라의 휘를 요청하였다. 세조가 그 정성을 어여삐 여겨 황제 계보와 휘를 알리도록 하고 원외산기시랑 이오를 보내 련에게 도독요해제군사 정동장군 영호동이중랑장 요동군개국공 고구려왕의 관작을 내렸다.
▐ 연월은 資治通鑑(1084).
38576#38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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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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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5.06 資治通鑑(1084)
元嘉 十二年 六月 丙午 髙句麗王璉遣使入貢于魏(句如字又音駒麗力知翻璉力展翻)且請國諱 魏主使錄帝系及諱以與之 拜璉 都督遼海諸軍事 征東將軍 遼東郡公 髙句麗王 璉釗之曾孫也
435년 6월에 고구려왕 련이 북위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고 나라의 휘를 요청하였다. 위주가 황제 계보와 휘를 적어주고 련에게 도독요해제군사 정동장군 요동군공 고구려왕의 관작을 내렸다. 련은 쇠의 증손이다.
38576#38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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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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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6.09 魏書(554)
太延 二年 九月 髙麗不送文通 遣使奉表稱 當與文通俱奉王化 帝以髙麗違詔 議將擊之 納樂平王丕計而止
436년 9월에, 고려가 자기 나라로 도망간 북연의 황제 문통을 보내지 않으면서, 사신을 보내 표를 올려 말하길, 마땅히 문통과 함께 교화를 받겠다고 하였다. 황제는 고려가 조서를 어겼다며 침공을 논의하였으나 낙평왕 부의 계책을 받아들여 중단하였다.
38576#38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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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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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63 宋書(488)
463년에 이렇게 조서를 내렸다.
“사지절 산기상시 독평·영이주제군사 정동대장군 고구려왕 낙랑공 련은 대대로 충의로 섬기어 바다 밖의 번국이 되었오. 짐의 조정에 충성을 다하여 포악 잔인한 무리를 없애는데 뜻을 두었고, 사막의 나라와 교류하여 짐의 덕화를 크게 떨치었오. 마땅히 벼슬을 더하여 절의를 드러내려 하오. 이에 거기대장군과 개부의동삼사로 삼고 지절·상시·도독·왕·공의 칭호는 그대로 인정하오.”
이후에도 조공을 끊지 않았다.
38576#38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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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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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66.03 魏書(554)
文明太后 以顕祖六宫未備 勅璉令薦其女 璉奉表云女已出嫁 求以弟女應㫖 朝廷許焉 乃遣安樂王真尚書李敷等 至境送幣 璉惑其左右之說云 朝廷昔與馮氏婚姻未幾而㓕其國 殷鑒不逺 宜以方便辭之 璉遂上書妄稱女死 朝廷疑其矯詐 又遣假散騎常侍程駿切責之 若女審死者聽更選宗淑 璉云 若天子恕其前愆 謹當奉詔會 顯祖崩乃止 至髙祖時 璉貢獻倍前 其報賜亦稍加焉
38576#38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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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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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66.03 魏書(554)
나중에 문명태후가 현조의 6궁이 채워지지 못하였다고 하여, 조칙으로 련에게 딸을 보내라고 하였다. 낙랑공이 표를 올려,
“딸은 이미 출가하였으므로 아우의 딸 중에서 구하여 조칙에 응하겠습니다.”
라고 하자 조정에서 허락하였다. 이에 안락왕 진과 상서 이부 등을 보내 국경까지 가서 예물을 보내게 하였다.
38576#38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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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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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66.03 魏書(554)
그러나 련은,
“위나라는 지난 날 풍씨와 혼인을 맺었다가 얼마 안되어 그 나라를 멸망시켰습니다. 그 사례가 있은 지 오래되지 않았으니, 핑계를 대고 거절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라는 좌우 신하들의 말을 듣고, 마침내 글을 올려 조카딸이 죽었다고 거짓말하였다. 조정에서는 거짓말이라 의심하여 다시 가산기상시 정준을 보내 엄중히 문책하고,
“조카딸이 진짜 죽었다면 종친 중의 어진 딸을 뽑아 줄 것을 허락한다.”
고 하였다.
38576#38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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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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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80.4 魏書(554)
그 때 광주에서 련이 파견하여 소도성에게 가던 사신 여노 등을 해상에서 체포하여 대궐로 압송하여 왔다. 고조가 조서로 련을 꾸짖기를,
“소도성은 직접 자기의 군주를 죽이고 강좌에서 천자의 칭호를 僣稱하므로, 짐이 바야흐로 망해버린 나라를 옛 그 지역에 일으키어 끊어져 버린 유씨의 대를 이으려고 하는데, 경은 越境外交하여 찬탈한 역적과 멀리서 내통하려 하니, 어찌 이것이 번신으로서 절의를 지키는 도리이겠느냐!
38576#38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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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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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81 南齊書(537)
東夷高麗國 西與魏虜接界 宋末 高麗王樂浪公高璉為使持節 散騎常侍 都督營平二州諸軍事 車騎大將軍 開府儀同三司 太祖建元元年 進號驃騎大將軍 三年 遣使貢獻 乘舶泛海 使驛常通 亦使魏虜 然彊盛不受制 虜置諸國使邸 齊使第一 高麗次之
481년에 고려왕 련이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바다에 배를 띄워 항상 교류하였다. 고려는 북위에도 사신을 보냈는데, 북위는 고려가 강성하다고 여겨 여러 나라 사신의 숙소를 둘 때 남제의 사신을 첫 번째로 두고 고려 사신을 그 다음으로 두었다.
38576#38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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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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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91.12 三國史記
왕이 세상을 떠났다. 나이가 98세였는데 이름을 장수왕이라 하였다. 북위의 효문제가 이를 듣고, 흰 색 위모관과 삼베 심의를 지어 입고 동쪽 교외에서 애도식을 거행하였다. 알자복야 이안상을 보내 거기대장군·태부·요동군개국공·고구려왕을 추증하여 책립하고, 시호를 강이라 하였다.
38576#38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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