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年代記 > -0108 樂浪史 > 0111 後漢書(445) 夫餘

至安帝永初五年 夫餘王始將步騎七八千人寇鈔樂浪 殺傷吏民 後復歸附 부여왕이 처음으로 보병과 기병 7~8천 명을 거느리고 낙랑을 노략질하여 관리와 백성을 죽였으나 그 뒤에 다시 귀부하였다. 夫餘夷犯塞 殺傷吏人 부여 오랑캐가 변방을 침략하여 관리를 죽였다. ▐ 이 기록의 낙랑은 현도의 오기로 보아야 한다.
 
0111 後漢書(445)
至安帝永初五年 夫餘王始將步騎七八千人寇鈔樂浪 殺傷吏民 後復歸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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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crafts, tanks, missiles, ...
 
0111 後漢書(445)
夫餘夷犯塞 殺傷吏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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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
光武帝紀에는 樂浪을 塞로만 기술하고 있어 樂浪을 玄菟의 잘못으로 보는 견해가 타당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며(李丙燾) 이를 樂浪郡의 遼東說의 중요한 근거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리지린 고조선연구) 이는 後漢의 쇠퇴와 高句麗·百濟의 흥기로 인하여 일시적으로 遼東지역에 후퇴한 樂浪으로 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된다. 한편 始를 夫餘王의 이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千寬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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