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年代記 > -0108 樂浪史 > 0332 ❰❰ 0032 三國史記(1145) 고구려

왕자 好童이 沃沮에 갔다가 樂浪王 崔理를 만났는데 崔理가 北國 神王의 아들이라며 好童을 데려가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후에 好童이 돌아가 최씨 딸에게 사람을 보내 무기고에 들어가 북을 찢고 나팔을 뽀개게 한 뒤 왕에게 낙랑을 치게 하였다. 고구려의 군사가 성 밑에 이른 뒤에야 북과 피리가 망가진 것을 알게 된 崔理는 딸을 죽이고 항복하였다. 혹은 '낙랑을 멸망시키려고 혼인을 청하여 그 딸을 며느리로 맞은 뒤 돌려보내 무기를 파괴하게 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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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東暆
창해군은 황초령을 넘어 한나라와 연결되며 설치되었으므로 치소는 황초령 아래에 있었을 듯하다. 임둔군은 창해군을 재건하는 의미를 지녔으므로 임둔군의 치소 또한 창해군의 치소를 재건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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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2 ❰❰ 0032.04 三國史記(1145) 고구려
왕자 好童이 沃沮에 갔다가 樂浪王 崔理를 만났는데 崔理는 "그대의 비범한 얼굴을 보니 北國 神王의 아들이 아니겠는냐?"며 데려가 딸을 아내로 주었다. 후에 好童이 돌아가서는 최씨녀에게 사람을 보내 무기고에 들어가 북을 찢고 나팔을 뽀개야 자기가 맞이할 것이라고 하였다. 최씨녀가 북을 찢고 나팔을 뽀갠 뒤 이를 알리자 호동은 왕에게 낙랑을 치게 하였다. 고구려의 군사가 성 밑에 이른 뒤에야 북과 피리가 망가진 것을 알게 된 崔理는 딸을 죽이고 항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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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2 ❰❰ 0032.04 三國史記(1145) 고구려
或云 欲滅樂浪 遂請㛰 娶其女爲子妻 後使歸夲囯 壞其兵物 혹은 '낙랑을 멸망시키려고 혼인을 청하여 그 딸을 며느리로 맞은 뒤 돌려보내 무기를 파괴하게 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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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2 ❰❰ 0032.11 三國史記(1145) 고구려
冬十一月 王子好童自殺 겨울 11월에 왕자 호동이 자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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