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年代記 > 0475~0561 年代記 > 0526~0539 梁 職貢圖 > 1685~1760 職貢圖(張庚)

2011년 찾아진 張庚(1685~1760)이 연대 미상의 白描 職貢圖를 1739년 모사한 것을 淸末 葛嗣?(1867~1935)이 재록한 淸張庚諸審職貢圖
 
1914 職貢圖(張庚)
장경(張庚 1685~1760)이 양직공도를 모사한 것인데 지금 남아있지 않고 애일음노서화소록(愛日吟廬書畵續錄 1914)에 제기만 수록되어 있다. 이 제기는 양직공도 모본과 내용이 조금 다르고 양직공도 모본에 없는 내용도 있다. 신라에 대한 제기는 양직공도 모본에 없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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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 職貢圖(張庚) - 사라국 1
斯羅國本東夷辰韓之小國也魏時曰新羅宋時曰斯羅其實一也或屬韓或屬倭國王不能自通使聘普通二年其王名募秦始使隨百濟奉表献方物 사라국은 본래 동이 진한의 한 소국이었다. 조위 때에는 신라라 했고 유송 때에는 사라라 했지만 사실은 하나다. 때로는 韓에 속했고 때로는 倭에 속했다. 국왕은 스스로 사신을 보내 조빙할 능력이 없었다. 521년에 募秦이라는 왕이 처음으로 백제의 편에 사신을 딸려보내 표를 올리고 방물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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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Dictio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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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 職貢圖(張庚) - 사라국 1
● 或屬韓(백제를 말한다)或屬倭는 왜의 주장과 백제의 주장을 병기한 것이다. 송서(488)에서는 왜왕이 438년부터 백제와 신라를 포함한 여러 나라의 통치권을 주장하지만 번번이 백제를 뺀 나머지 나라들에 대한 통치권만 인정을 받는다고 되어 있다. 1077년의 양직공도 모본에는 신라가 백제에 부용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521년에 양나라에 온 백제 사신의 주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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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 職貢圖(張庚) - 사라국 2
其國有城號曰健年其俗與高麗相類無文字刻木為範言語待百濟而後通焉 그 나라에는 성을 건년이라 부르고 풍속은 고려와 비슷하며 문자를 쓰지 않고 나무에 표식을 새겨 신표로 삼았다. 말은 백제의 사신을 거쳐야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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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 職貢圖(張庚) - 사라국 2
● 포항의 중성리와 냉수리에서 각각 501년과 503년에 만들어진 비문이 발견되었는데 분쟁해결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당시 신라가 문자를 쓰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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