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리 고분 - 동북아역사재단
5세기 후반 경에 축조된 흙무지돌방벽화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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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9-07-12 왜적 토벌 상황
대마도 정벌군이 거제도로 돌아오던 날, 중국을 약탈하고 돌아가던 30척의 왜구는 소청도를 지나고 있었고 다음날 안흥량에서 9척의 배를 약탈하였다. 이에 태종은 다시 대마도 정벌군을 편성하면서 육지에 내려 싸우지 말고 배에 머무르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군사들이 피로해 있다며 재정벌에 반대하는 의견이 있고, 명나라에 갔던 사신이 돌아와 명나라에서 보았던 왜구토벌 전과를 알려오자 재정벌 계획을 중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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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9-07-12 왜적 토벌 상황
상왕이 이에 지인 이호신을 보내어 유정현에게 선지를 내리기를, "대마도를 다시 토벌하는 것을 중지하게 하고, 장수들로 하여금 전라, 경상도의 요해처에 보내어, 엄하게 방비하여, 적이 통과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추격하여 잡게 하라." 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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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9-07-12 왜적 토벌 상황
청(聽)이 또 계하기를, "왜적이 금주위를 범해서 도적질하니, 도독 유강이 복병으로 유인하고 수륙으로 협공하여, 사로잡은 것이 1백 10여 명이요, 목벤 것이 7백 여 급이매, 적선 10여 척을 빼앗아 수레 5량에는 수급을 싣고, 50량에는 포로를 실어서 다 북경에 보내었는데, 이런 광경을 청이 노상에서 직접 보고 왔나이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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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9-07-10 대마도에서 180명 전사
유정현이 다시 계하기를, "대마도에서 전사한 자가 1백 80명입니다." 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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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9-07-09 막 돌아온 수군을 돌려 다시 대마도 치는 것이 득책이 아님
성인의 덕으로도 오히려 이와 같이 했으니, 조그마한 작은 섬놈들이 은혜를 저버리고 죽을 죄를 범한지라, 내가 글로써 이르는 말로 알아듣도록 타일러 주고서, 그래도 오히려 마음을 고치지 아니하거든, 군사를 동원하여 다시 치는 것이 무엇이 덕에 해가 될 것인가." 하였으나, 은이 또한 고집하여 듣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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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9-07-09 막 돌아온 수군을 돌려 다시 대마도 치는 것이 득책이 아님
상왕이 그렇게 여겨 박은에게 의논했는데, 은이 먼저 정한 계책을 고집하고 이 시기를 놓치는 것이 불가하다 하니, 상왕이 다시 은에게 묻기를, "옛적에 주공이 완고한 백성에게 일러서 깨우치기를 여러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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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9-07-09 막 돌아온 수군을 돌려 다시 대마도 치는 것이 득책이 아님
우의정 이원이 상왕에게 계하기를, "지금 대마도를 치러 갔던 수군이 돌아와서 해안에 머물러 있으니, 또 명하여 대마도에 다시 가서 맞아 치라는 계책을 득책이라 할 수 있으나, 군사들의 예기가 이미 쇠하고 선박의 장비가 또한 파손되었고, 더구나 천후가 점점 바람이 높으니, 멀리 불측한 험지를 건너가다가 혹 생각치 않은 변이 있으면, 뉘우쳐도 따를 수 없을 터이니, 바람이 평온해지기를 기다려 군사를 정제하여, 다시 쳐도 늦지 않습니다."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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