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636 梁書
其俗呼城曰健牟羅 其邑在內曰啄評 在外曰邑勒 亦中國之言郡縣也 國有六啄評 五十二邑勒┆왕성을 건모라라 부르며 그 읍이 안에 있는 것은 탁평이라 하고 밖에 있는 것은 읍륵이라 하니, 이것은 중국의 군현과 같은 말이다. 나라 안에는 6군데의 탁평과 52군데의 읍륵이 있다.
❸ 喙評(501 중성리 신라비) = 啄評(636 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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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살해 사건을 수사하던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은 1979년 12월 12일에 대통령 살해에 관여한 혐의로 자신의 상관이던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체포했습니다.
이는 합리적 의심에 의한 것이었고 당시는 계엄령 하에 있었기 때문에 계엄사령관을 체포하기 위해서는 군부의 소장파 세력이 규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학생이던 윤석열은 교내에서 모의 재판을 열어 이를 반란으로 규정하고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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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식민사관은 일제 식민사관의 반도적 속성론에서 일본을 빼고 미국을 끼워넣은 동북아균형자론을 말합니다. 조선의 남침을 막기 위해 들어온 미군에게 통일 후까지 주둔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주었죠. 결과적 식민사관은 대중들의 시선을 고대사나 반일 문제로 돌려 미군철수를 비껴가게 하려는 수작을 말합니다. 한사군과 임나일본부를 부정하고 한국의 고대 국가가 대륙을 호령하였다고 믿는다고 한국에 있는 미군기지가 캘리포니아로 옮겨지는 것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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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험진은 지금의 길주에 있었고 정계비는 신라의 황초령비나 마운령비처럼 보통 고개에 세워지므로 공험진 정계비 또한 길주에서 명천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세워졌을 듯합니다.
그러나 옥저인들을 잔혹하게 학살하고 정계비를 세웠고 그들의 강한 저항을 받아 바로 돌려주었으므로 공험진 정계비는 옥저인들에 의해 바로 파괴되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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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영산강 유역은 다른 지역과 다른 매우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을 따로 지칭하는 말이 없습니다.
마한이란 말을 쓰는 사람도 있지만 마한은 반도 서부를 아우르는 말이라 이 지역을 특정하지 못하죠.
한때 모한이라는 표현도 시도되었으나 모한은 마한의 이칭에 불과합니다.
영산강 마한이란 표현도 많이 쓰지만 길어서 불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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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solgga_history
삼국사기의 고구려 지리지에는 영덕에 있던 也尸忽郡은 소속된 현이 없고 청하에 있던 阿兮縣은 영해에 있던 于尸郡에 소속되어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영해는 영덕의 북쪽에 있고 청하는 영덕의 남쪽에 있기 때문에 청하에 있던 阿兮縣이 영해에 있던 于尸郡에 소속될 수는 없습니다. 삼국사기는 于尸郡과 也尸忽郡을 바꾸어 기록한 듯합니다.
이 오류는 신라 지리지에도 이어져 阿兮縣의 개칭인 海阿縣이 于尸郡의 개칭인 有鄰郡에 소속되어 있다고 기술되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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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강은 남북으로 경주와 영덕을 잇는 길목에 있고 동쪽으로는 형산강을 따라 동해의 영일만에 이르며 서쪽으로는 고개를 넘어 낙동강으로 연결될 수 있는 교통의 요지다.
형산강으로 흘러드는 두 지류 사이에 형성된 농경지도 넓어 고대로부터 정치적 성장이 빨랐을 것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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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은 훈요십조에서 차현 이남과 금강 바깥이 산의 모양과 땅의 기세가 모두 거스르게 뻗어 있어 국가의 변란을 일으킬 수 있고 또 통합당한 원한을 품고 있어 왕실을 침범할 우려가 있으므로 조정에 참여하거나 왕후가 되거나 외척과 혼인을 하거나 해서 나라의 정사를 잡게 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왕건은 이렇게 지역과 이유를 포괄적으로 언급했지만 현종 때의 기록에는 구체적인 지역과 이유가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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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신라, 백제 그리고 고려는 같은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신라가 반도를 통일한 후 비로소 하나의 민족으로 발전한 것이죠.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을 친 한국과는 전혀 다릅니다.
둘째, 신라는 백제와 고려를 멸망시킨 후 당나라와 전쟁을 벌여 쫓아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군사력이 김씨조선을 추월한 이후에도 미군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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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서에는 49년 1월에 고구려가 우북평, 어양, 상곡 그리고 태원을 침략하는 것을 요동태수가 초유하니 다시 항복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들은 고구려와 멀리 떨어져 있고 오환과 접해 있어 원래 오환이 자주 침략하던 지역들입니다.
같은 해의 삼국지 기록에 오환의 무리가 투항해 오자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 등 경계 지역에 안치하였다고 되어 있는 것을 볼 때, 봄에 침략한 무리는 원래 오환인데 고구려로 잘못 적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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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제를 세운 고양은 기행과 폭정으로 악명이 자자한 인물입니다. 그런 고양이 보낸 사신이라 그런지 최유는 고려에 유민을 돌려받으러 왔다가 거부당하자 양원왕을 구타하고 유민을 데려갑니다.
당시 고려는 북으로는 돌궐의 침공을 받고 남으로는 백제와 신라의 침공을 받아 백제의 옛 땅은 백제에게 빼앗기고 예 지역은 신라에게 빼앗긴 상태였습니다.
여기에 중국 사신에게 왕이 구타까지 당하자 고려는 자신의 땅을 빼앗은 신라에게라도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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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당한 이듬해에 서울에서는 학생들의 시위가 격화되어 이를 막던 경찰이 시위대가 모는 버스에 치어 한 명이 죽고 네 명이 중상을 입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는 계엄을 선포할 요건을 충족시키죠.
당시 중동을 순방하던 최규하 대통령은 일정을 앞당겨 귀국해서 박정희 대통령 사후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내려졌던 비상계엄을 제주도를 포함하는 전국으로 확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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