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8 今西龍(いまにしりゅう) 비판 ③
고대부터 만경·동진강 유역과 영산강 유역은 별개의 문화권이었다. 각각 신라의 전주와 무주가 되었다가 왕고 초기에는 강남도와 해양도가 되었다.
전주는 왕건이 오래 싸워온 곳이고 무주는 그가 세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 곳이므로 왕건이 그 둘을 하나로 묶어 취급했을 거 같지는 않다.
왕건이 통합당한 원한을 품었으니 경계하라는 車峴以南公州江外를 전라도가 아닌 전주로 가정하면 앞뒤가 잘 맞아떨어진다.
왕건이 기용한 전라도 출신도 전주가 아니라 무주 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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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9.11.04 朝鮮王朝實録
조령을 내리기를 “요즘 안팎의 정세가 어수선하여 국운의 흥망에 대하여 예견할 수 없고 짐의 나라 형편이 외로우며 허약하여 일본의 보호에 의거하지 않으면 어떻게 그 존립을 보장할 수 있겠는가? 생각건대, 그와 같은 고약한 도당이 세계 형세에 어두워서 이따금 일본의 두터운 우의를 무시하려고 하다가 마침내는 전에 없던 변괴를 빚어냈으니 이는 바로 짐의 국가와 사직을 해치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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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立行
▐ 立行은 서서다닌다는 뜻으로 歩行(걸어다니다)이나 爬行(기어다니다)과 구별된다.
물범, 물개 그리고 원숭이의 이동 모습을 보면 立行이라는 표현은 원숭이보다 물개가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머리, 몸통 그리고 발로 이어지는 선을 그어보면 알 수 있다.
흔히 사람과 원숭이의 가장 큰 차이점이 直立步行이라고 한다. 따라서 원숭이는 立行이라는 표현을 쓰기 힘들다. 반면, 물개는 물범과 비교되어 立行이라는 표현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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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45 ◾文皮
朝鮮이 良夷라면 發朝鮮에서 난다는 文皮 또는 豹之皮는 良夷에서 난다던 在子와 연결된다. 앞서 在子는 점박이 물범이라 판단했으므로 文皮는 그 가죽이 되고 豹之皮의 豹는 海豹가 된다. 점박이 물범은 표범처럼 무늬가 있어 바다표범 또는 海豹라 불리고 있다.
앞서 일주서의 良夷를 순임금 시기의 鳥夷에 대응시킨 바 있는데, 그렇다면 發朝鮮의 文皮는 良夷의 在子를 거쳐 鳥夷의 皮服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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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88 眞鑑禪師碑銘
禪師法諱慧昭俗姓崔氏其先漢族冠盖山東隋師征遼多沒驪貊有降志而爲遐甿者爰及聖唐囊括四郡今爲全州金馬人也
선사의 법휘는 혜소이며 속성은 최씨다. 그 선조는 한족으로 산동의 고관이었다. 수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요동을 정벌하다가 려맥에서 많이 죽자 항복하여 변방의 백성이 되려는 자가 있었는데 성스러운 당나라가 4군을 차지함에 이르러 지금 전주의 금마사람이 되었다.
▐ 고려를 驪貊이라 칭하고 당나라가 고려를 멸망시킨 것을 四郡을 차지한 것으로 인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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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65 ◾雞林
閼智→勢漢→阿道→首留→郁甫→仇道→末仇→奈勿→巴胡→習寶→智證→立宗→眞興→眞智→龍樹→武烈→文武┆閼智부터 味鄒까지 7대인데, 7대는 3천궁녀나 100만대군처럼 한 집안의 유래가 오래된 것을 표현하는 상투적인 어구다.
이것은 閼智 설화가 味鄒 시기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훗날 김씨를 칭하게 되는 가문에서 처음 왕이 된 味鄒는 자신의 혈통에 신성성을 부여하는 일은 꼭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호를 雞林으로 바꾼 것도 味鄒 시기가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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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20 日本書紀 0562
新羅 長戟强弩 凌蹙任那 鉅牙鉤爪 殘虐含靈 刳肝斮趾 不厭其快 曝骨焚屍 不謂其酷 任那族姓 百姓以還 窮刀極俎 旣屠且膾 신라는 긴 창과 강한 활로 임나를 능욕했고 커다란 이빨과 갈고리 같은 손톱으로 중생들을 잔혹하게 죽였다. 간을 꺼내고 발목을 자르고도 만족하지 않았고 뼈가 드러나게 하고 주검을 불태우고도 잔혹하게 여기지 않았다. 임나의 귀족과 백성들은 칼과 도마가 닳도록 도륙당하고 회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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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65 ◾閼智
그러나 閼川 양산촌에서 사로국 시조가 알에서 나왔다고 하고 智는 신라인의 인명에 붙는 접미사이므로 閼智는 알에서 나왔다고 해서 붙인 이름인 듯하다.
朴居西干(밝은 임금)의 이름도 알지였는데 훗날 신라김씨가 자신들의 시조도 알지라 주장하고 김씨 성을 쓰면서 자신들의 알지는 알이 아닌 금궤에서 나온 것으로 고치고 사로국 시조 알지는 朴居西干을 이름으로 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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