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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출신 이재명은 광주에 가서 차별의 고통과 설움을 견뎌내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만들고 지켜온 호남에 대한 역사적, 국민적 보상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800조원대 호남 반도체 투자를 반드시 성공시키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상주 출신 견훤이 전주에 가서 당나라와 신라에 의해 멸망당한 백제 의자왕의 오래된 울분을 씻어 주는 나라를 세우겠다고 한 것과 닮아 있죠.
그런데 그렇게 해서 세워진 견훤백제의 결과는 왕씨고려 500년을 넘어 이씨조선까지 이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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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 髙句麗本紀
閔中王 四年 夏四月 王田於閔中原
秋七月
又田 見石窟 顧謂左右曰 吾死必葬於此 不湏更作陵墓
五年 王薨 王后及羣臣重違遺命 乃葬於石窟 號爲閔中王
慕本王 六年 冬十一月
杜魯弑其君 遂葬於慕本原 號爲慕本王
故國川王 或云國襄
故國川王 十九年 夏五月
王薨 葬于故國川原 號爲故國川王
故國壤王 九年 夏五月 王薨 葬於故國壤 號為故國壤王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민중왕 4년 여름 4월. 임금이 민중원에서 사냥하였다.
가을 7월에 또 사냥을 나갔다가 석굴을 발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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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 閭達
朱蒙在夫餘時妻懐孕朱蒙逃後生一子字始閭諧及長知朱蒙為國主即與母亡而歸之名之曰閭逹委之國事朱蒙死閭達代立
지난 날 주몽이 부여에 있었을 때 부인이 잉태하였었는데 주몽이 도망한 뒤에 한 아들을 낳으니 자를 처음에는 여해라 하였다. 성장하여 주몽이 국왕이 되었음을 알고는 곧 그 어머니와 함께 도망하여 오니 이름을 여달이라 하고 나라 일을 그에게 맡겼다. 주몽이 죽자 여달이 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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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 宮
莫來子孫相傳 至裔孫宮 生而開目能視 國人惡之 及長凶虐 國以殘破
막래의 자손이 대대로 왕위를 이어 후손 궁에 이르렀다. 궁은 태어나면서부터 눈을 뜨고 보았으므로 국인들이 미워하였다. 성장함에 흉악하고 사나워 나라가 그로 말미암아 쇠잔해지고 파멸하게 되었다.
▐ 위서는 궁이 여달-여율-막래로 이어지는 부자관계의 후손이라고 하지만 삼국사기는 궁이 유리(여달)의 아들인 고추가 재사의 아들이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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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 宮
태조대왕(국조왕이라고도 한다)의 이름은 궁이다. 어렸을 때의 이름은 어수다. 유리왕의 아들인 고추가 재사의 아들이고, 어머니 태후는 부여 사람이다. 모본왕이 죽고 태자가 못나 사직을 맡기에 부족하자, 나라 사람들이 궁을 맞이하여 뒤를 이어 왕위에 앉게 하였다. 왕은 태어나자마자 눈을 떠서 볼 수 있었고, 어려서 조숙하여 뛰어났다. 나이가 일곱 살이어서 태후가 수렴청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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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65 ◾雞林
閼智→勢漢→阿道→首留→郁甫→仇道→末仇→奈勿→巴胡→習寶→智證→立宗→眞興→眞智→龍樹→武烈→文武┆閼智부터 味鄒까지 7대인데, 7대는 3천궁녀나 100만대군처럼 한 집안의 유래가 오래된 것을 표현하는 상투적인 어구다.
이것은 閼智 설화가 味鄒 시기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훗날 김씨를 칭하게 되는 가문에서 처음 왕이 된 味鄒는 자신의 혈통에 신성성을 부여하는 일은 꼭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호를 雞林으로 바꾼 것도 味鄒 시기가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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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단군조선, 기자조선 그리고 위만조선을 합쳐 고조선이라 합니다.
단군조선은 천손 단군이 요임금 때 처음 세웠다는 조선이고, 기자조선은 은나라의 기자가 주나라에 의해 조선에 봉해지면서 단군조선을 대체했다는 조선이며, 위만조선은 연나라의 위만이 한나라에서 망명해 와서 기자조선을 교체한 조선입니다.
그러나 단군조선은 왕씨고려 때 편찬된 삼국유사에 처음 나타나고 기자조선은 한나라 때 편찬된 상서대전에 처음 나타나기 때문에, 모두 역사적 사실이 아닙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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