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0 高麗史(1451)
예전에 우리 시조가 후계를 잇는 자손들에게 훈계를 내리시기를, ‘무릇 이와 같은 천한 무리는 그 종자가 따로 있는 것이니 이런 무리는 양인이 되게 하지 말라. 만약 양인이 되도록 허락한다면, 뒤에 반드시 벼슬에 올라서 점차 중요한 직책을 구하여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모의를 할 것이다. 만약 이 훈계를 거스른다면 사직이 위태로울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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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65~-0860 Assyria
Gypsum wall panel relief: showing the monster Anzu facing left. The panel is part of a group as follows: gypsum wall panel reliefs showing god and monster. The god is Ninurta, chief god of the city of Nimrud and has a thunderbolt in each hand; he purs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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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12 Assyria
Old Assyrian Period (c. 2025–1809 BCE): Emerged as a merchant city-state.┆Middle Assyrian Period (c. 14th–11th century BCE): Gained independence and began expansion.┆Neo-Assyrian Empire (911–612 BCE): The height of imperial power and expan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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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23 武寧王陵
무령왕릉 진묘수에 난 머리의 뿔, 앞다리의 날개 그리고 뒷다리의 털은 모두 후한의 진묘수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네 발로 서서 입을 벌리고 있는 자세도 비슷하다.
벽돌널방이나 박산로의 예에서 보듯이 백제의 문화는 한나라와 유사한 점이 많으므로 무령왕릉의 진묘수도 후한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파지릭의 양탄자 그림과 비슷하나 한나라 이후의 조각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기 때문에 한나라의 그것을 이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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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반도에서는 樂浪 이후 수백년동안 벽돌무덤이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熊川 百濟에 와서 몇 기 만들어지다 다시 사라집니다.
그 百濟의 벽돌무덤에는 중국 南朝人이 와서 만들었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죠.
그렇다면 百濟 출토 博山爐도 중국에서 전승되어 오던 金銅盤龍朱雀博山爐가 百濟로 흘러간 것일 가능성이 높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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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漢나라의 金銅盤龍朱雀博山爐고 오른쪽은 百濟 출토 博山爐인데, 구조와 모양이 놀랍도록 비슷하여 전승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반도에서는 百濟 출토 博山爐와 전후로 연결될 수 있는 博山爐가 전혀 출토되지 않고 있습니다.
갑툭튀 기록은 오기나 날조를 의심해 보아야 하고 갑툭튀 유물은 외제를 의심해 보아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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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鳳皇 - 百濟 金銅盤龍朱雀博山爐
이 향로 정상에 있는 새는 맨 아래에 위치한 용(龍)과 대비되어 나타내진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신수인 봉황이다. 봉황은 박산(博山)에서 양(陽)을 대표하는 신수로서 그리고 음(陰)을 대표로 하는 맨 아래에 배치된 용과 대칭되어 맨 정상에 안치되었다.
봉황은 막 비상하려는 듯 날개와 꼬리를 거의 50도 가량으로 펼치고 있다. 봉황의 부리 밑에는 용을 비롯한 신수(神獸)의 입 언저리에 배치되던 여의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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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蓮 - 百濟 金銅盤龍朱雀博山爐
연화화생이란 연꽃에 의하여 만물이 신비롭게 탄생되는 생명관을 말한다. 이 향로는 신산(神山)인 박산을 표현한 것이지만 향로에 표현된 용 · 봉황 · 연꽃 · 산 그리고 수많은 물상(物像) 모두가 이 연화화생과 직 · 간접적으로 관련된다. 연화화생의 중심을 이루는 연꽃은 이 향로의 경우 동체(胴體)인 연꽃봉오리이다. 그런데 연꽃은 물 속에 뿌리를 박고 물 위로 꽃을 피우는 속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 향로에서의 연꽃은 용을 통하여 물 속과 연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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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8 今西龍(いまにしりゅう) 비판 ③
고대부터 만경·동진강 유역과 영산강 유역은 별개의 문화권이었다. 각각 신라의 전주와 무주가 되었다가 왕고 초기에는 강남도와 해양도가 되었다.
전주는 왕건이 오래 싸워온 곳이고 무주는 그가 세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 곳이므로 왕건이 그 둘을 하나로 묶어 취급했을 거 같지는 않다.
왕건이 통합당한 원한을 품었으니 경계하라는 車峴以南公州江外를 전라도가 아닌 전주로 가정하면 앞뒤가 잘 맞아떨어진다.
왕건이 기용한 전라도 출신도 전주가 아니라 무주 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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