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91.0390 三韓의 재편
중국에서 서진이 망해가면서 요동과 한국은 재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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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新羅의 초기 팽창
http://qindex.info/i.php?x=16635
 0236~0337
http://qindex.info/i.php?x=13578
 0236~0337
http://qindex.info/i.php?x=16908
 0236~0337
http://qindex.info/i.php?x=16910
 0236~0337
http://qindex.info/i.php?x=31470
 0236~0337 @삼한의 재편
http://qindex.info/i.php?x=706
 0236~0369
http://qindex.info/i.php?x=13577
 0236~0369
達과 喙은 발음이 같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연관성을 상상해 볼 수 있다. 達伐은 236~261년에 신라에 복속된 것으로 보이며 서라벌의 喙, 沙喙 그리고 牟喙은 달구벌에서 서라벌로 넘어올 때 처음 닿는 곳으로 원래 지명은 알천 양산촌, 돌산 고허촌 그리고 무산 대수촌이었다. 따라서 닭을 숭배하는 달구벌 사람들이 서라벌로 많이 이주하였고 그들이 서라벌을 장악하면서 지명도 바꾸고 김씨 왕도 배출하였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http://qindex.info/i.php?x=30911
 0236~0369
達과 喙은 발음이 같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연관성을 상상해 볼 수 있다. 達伐은 236~261년에 신라에 복속된 것으로 보이며 서라벌의 喙, 沙喙 그리고 牟喙은 달구벌에서 서라벌로 넘어올 때 처음 닿는 곳으로 원래 지명은 알천 양산촌, 돌산 고허촌 그리고 무산 대수촌이었다. 따라서 닭을 숭배하는 달구벌 사람들이 서라벌로 많이 이주하였고 그들이 서라벌을 장악하면서 지명도 바꾸고 김씨 왕도 배출하였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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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36~0369 三韓의 재편
서진의 몰락에 상응하는 삼한의 재편은 서진의 무제가 죽은 이듬해부터 시작되어 왜가 반도에 진출하기 전까지 이루어졌다.
http://qindex.info/i.php?x=30749
 0281 東有樂浪·北有靺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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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90.0390 三韓의 재편
중국에서 서진이 망해가면서 요동과 한국은 재편되었다.
http://qindex.info/i.php?x=7807
 0290.0390 三韓의 재편
중국에서 서진이 망해가면서 요동과 한국은 재편되었다. ● 국제 질서가 재편되는 시기에는 지배 세력의 교체도 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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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90~0369 三韓의 재편
중국에서 서진이 중원에서 밀려나면서 한반도도 재편되었다. 낙랑과 대방이 고려에 흡수되고 백제와 신라가 성장하여 각각 마한과 진한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변한과 차현 이남은 미처 고대왕국으로 발전하기 전에 倭의 지배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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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90~0390 三韓의 재편
서진이 쇠약해지며 요동과 한반도는 재편의 과정을 겪게 된다. 낙랑과 대방은 고려에 통합되고 마한과 진한은 각각 백제와 신라로 통합되었다.
http://qindex.info/i.php?x=9870
 0291.0390 三韓의 재편
중국에서 서진이 망해가면서 요동과 한국은 재편되었다. 낙랑과 대방은 각각 313년과 314년에 고려에 병합되고 고려와 백제는 국경을 맞대게 되었다. 고려는 기존의 한사군 잔존 세력과 전연으로부터 이탈해 온 사람들로 하여금 이 지역을 다스리게 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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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91.07 ~ 0309 于老┆0292 ~ 0310 仇道
▐ 삼국사기에는 원래 이렇게 나와 있다. 0185 召文(의성 仇道) ➔ 0189 拘壤(괴산 仇道) ➔ 0231 甘文(김천 于老) ➔ 0236 骨伐(영천) ➔ 0261- 達伐(대구) ➔ 0293- 沙伐(상주) 우로와 구도의 연대를 각각 60년과 120년 이동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0236 骨伐(영천) ➔ 0261- 達伐(대구) ➔ 0291 甘文(김천 于老) ➔ 0293- 沙伐(상주) ➔ 0305 召文(의성 仇道) ➔ 0309 拘壤(괴산 仇道)
http://qindex.info/i.php?x=1269
 0291~0337
http://qindex.info/i.php?x=29266
 0291~0337
http://qindex.info/i.php?x=28590
 0291~0368 三韓의 재편
서진의 몰락에 상응하는 삼한의 재편은 서진의 무제가 죽은 이듬해부터 시작되어 왜가 반도에 진출하기 전까지 이루어졌다.
http://qindex.info/i.php?x=5976
 0304.10 新羅의 초기 팽창
▐ 娘子谷城-蛙山城-狗壤城 기록군에 의해 狗壤의 점유 시기는 303년 이전으로 올라가 召文을 앞서게 된다.
http://qindex.info/i.php?x=30102
 0308 백제의 馬韓 병합
馬韓은 말기에 그 영향력이 차령과 노령 사이로 줄어들었었다.
http://qindex.info/i.php?x=30520
 0369 三韓의 재편
▐ 영산강 유역은 삼한이 재편될 때 백제가 차지하지 못했었는데, 369년에 왜와 합세하여 반도 남부를 정벌할 때 비로소 백제의 차지가 되었다. 그러나 396년에 고려 광개토왕에게 패해 58성을 바치자, 이듬해에 왜가 와서 차현 이남을 빼앗아 버렸고 영산강 유역도 거기에 포함되었다.
http://qindex.info/i.php?x=30565
 0551 @북유말갈(北有靺鞨) @동유낙랑(東有樂浪)
551년의 사건 이후 北有靺鞨²은 삼국사기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이후 나오는 말갈은 勿吉靺鞨¹이다.
http://qindex.info/i.php?x=30201
 1145 ◾沙伐郡
신라는 525년 이전에 □□國을 정벌하고 □□郡을 설치하였다. 따라서 沙伐國을 정벌했을 때도 沙伐郡을 설치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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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加羅는 고령과 김해에만 있었다.
삼국사기(1145)가 首露를 소개하며 開國號曰加耶라고 하였으므로 김해에 있었던 나라의 이름이 加耶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또 南加耶始祖首露라는 표현을 통해 이 나라는 南加耶로도 불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는 고령을 소개하며 本大加耶國이라 하였으나 대부분의 기사에서 이 나라를 加耶라고 부른 것으로 보아 이 나라도 加耶다.
http://qindex.info/i.php?x=1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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