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동 고분이 부여인의 무덤이라는 전제 하에, 대성동 고분과 라마동 고분이 고고학적으로 유사한 양상을 보이는 점을 들어 남가라의 지배 세력이 부여의 유민이라는 가설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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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9 三國志(三國志 晉·陳壽)
대방군을 떠나 왜에 가려면 해안을 따라 한국을 지나 남쪽으로 간 뒤 다시 동쪽으로 7천여 리를 가면 북쪽 해안에 구야(狗邪)한국이 있다. 여기서 바다를 건너 천여 리를 가면 대마국에 이른다.
● 이 구야가 사서에 따라 가라라고도 표기되었으므로 남가라 부여유래설이 맞다면 가라라는 이름은 바뀌지 않은 채 지배 세력만 바뀐 것이 된다.
10697#1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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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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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7~0534 선비 왕조
가라와 신라에 금동관, 적석목곽분, 순장 등이 성행하던 시기에 초원길 끝에는 선비족이 세운 나라가 이어지고 있었다.
모용 선비는 前燕(0337~0370), 後燕(0384~0407) 그리고 北燕(0407~0436)으로 이어가며 요서 지역을 차지하였고 탁발 선비는 北魏(0386~0534)를 세워 모용 선비에 이어 요서 지역을 점유하였다.
10697#1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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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7~0534 선비 왕조
● 서진이 망하면서 남가라에 선진 문물을 제공하는 역할은 연나라가 맡게 된 것이 아닐까? 남가라에 갑작스레 나타나는 유목 민족의 문화는 이때 연나라로부터 수입된 것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연나라는 선비족이 세운 나라이기 때문이다.
10697#1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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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0± 대성동 91호분
○ 사슴뿔은 초원의 무속 신앙과 관련이 있고 나뭇가지형 금동관의 뿌리로 추정되고 있다.
○ 금동관이나 청동솥은 문물의 전파로도 설명이 가능하지만 사슴뿔 장식은 무속인이나 주민의 이동으로 설명해야 자연스럽다. 여러 사람의 신앙이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 사슴뿔 장식은 청동 방울처럼 이전부터 있었을지 모른다.
10697#1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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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KBS역사스페셜 - 대성동 고분
라마동 고분은 부여인의 무덤이라는 전제 하에, 대성동 고분과 라마동 고분이 고고학적으로 유사한 양상을 보이는 점을 들어 남가라의 지배 세력이 부여의 유민이라는 가설을 제시한다.
이 주장은 몇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❶ 부여에서 남가라까지 유민이 흘러가는 게 가능한가?
❷ 왜 기록에 전혀 흔적이 남지 않았나?
❸ 남가라 왕조는 왜 백제처럼 부여 출자를 내세우지 않았나?
10697#10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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