❶ 304년에 낙랑 태수가 자객을 보내어 백제왕을 살해했다는 삼국사기 기록과 ❷ 660년에 신라 소년 관창이 홀로 적진에 돌진하여 목숨을 바침으로써 백제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였다는 삼국사기 기록이 결합하여 ❸ 신라의 황창이 백제에 들어가 칼춤을 추자 백제왕이 불러 구경했는데 이때 백제왕을 죽였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이후 ❹ 이 황창이 낙랑 태수가 보낸 자객이었다는 주장이 나왔고 이어서 ❺ 이 황창이 원래 신라인이었다는 이야기도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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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6 수서의 新羅 기원 이야기
▶수서에는 옥저로 쫓겨간 고려의 패잔병이 돌아가지 않고 남아 신라를 세웠다는 이야기에 덧붙여 신라의 왕이 본래 백제 사람이었는데 바다로 도망쳐 신라로 들어가 그 나라의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싣고 있다.
삼국지에는 백제의 전신인 마한이 신라의 전신인 진한의 왕을 세웠다는 이야기와 조선의 준왕이 위만에 쫓겨 바다로 도망가 마한을 쳐부수고 韓王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수서의 두 번째 이야기는 삼국지의 두 이야기가 섞여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2413#9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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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0 관창(官昌)
❷ 신라군은 황산벌에서 백제군과 네 번을 싸웠으나 모두 이기지 못하였다. 이때 좌장군 품일이 아들 官昌을 불러서 "오늘이 바로 공명을 세울 수 있는 때이다. 어찌 용기가 없을 것인가?"고 하였다.
관창이 "예."하고는 바로 말에 올라 적진을 공격하였으나 적의 포로가 되었다.
계백이 관창의 머리를 베어 말 안장에 매달아 보냈다.
신라군이 이를 보고 슬퍼하고 한탄하여 죽을 마음을 먹고 진격하자 백제군이 크게 패하였다.
2413#17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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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 이첨(李詹)
❸ 신라에 黃昌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나이는 15~6세 때쯤 되었고 칼춤을 잘 췄다. 신라왕에게 원수를 갚아주겠노라 고하고 백제에 들어가 거리에서 칼춤을 췄다. 사람들이 이를 구경하자 백제왕이 黃昌을 불러 궁중에서 칼춤을 추게 하였다. 그러자 黃昌은 백제왕을 죽이고 자신도 죽임을 당했다. 신라 사람들이 그를 기려 가면을 쓰고 칼춤을 추었는데 풍습이 되어 지금까지 전해진다.
2413#17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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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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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 이첨(李詹)
▶이첨이 경주에서 채록한 설화인데 기록상 黃昌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다.
이첨의 견해는 이렇다.
'내가 일찍이 三國史를 보니 관직을 임명하거나 이웃 나라를 침벌한 것은 거의 모두 씌어져 있다. 한 나라 임금이 적국의 아이에게 살해된 것과 어린 아이로서 적국의 임금에게 원수를 갚았다는 것은 모두 작은 일이 아니다. 그런데 두 나라의 역사에 실려 있지 않으니 의심스럽다. 열전에 官昌의 일이 기재되어 있는데 그 충의가 장하다. 이 아이는 필시 官昌일 것이다.'
2413#17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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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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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1 - 서거정(徐居正)
가다가 문천을 건너서 별촌을 지나갈 제
行渡蚊川過別村
번화하던 옛 도읍 그리움을 감당 못하겠네
古都遐想不勝繁
까마귀 나무에서 울어라 금갑이 생각나고
烏啼深樹思金甲
개구리 못에서 울어라 옥문지가 생각나네
蛙吠寒塘憶玉門
흰 젖은 황당하여라 불교를 숭상했었고
白乳荒唐崇像敎
황동은 강개하여 임금의 원수 갚았었지
黃童慷慨報君冤
물이 흘러도 전조의 한을 씻을 수 없으니
水流不洗前朝恨
북해의 술 항아리로 깨끗이 씻어야겠네
蕩滌須憑北海樽
2413#17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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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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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 동환록(東寰錄 尹廷琦)
❹ 黃倡은 낙랑국이 파견한 자객이다. 백제사에는 분서왕이 낙랑을 습격하여 서현을 빼앗자 낙랑태수가 자객을 보내어 분서왕을 죽였다고 한다. 여지승람과 김종직의 황창랑가에는 그것이 신라자객이라고 하나 그르다.
▶이첨이 지적한 것처럼 황창은 역사 기록에 나오지 않는 문제가 있는데, 동환록에서는 황창을 역사 기록에 나오는 낙랑 자객 대체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2413#32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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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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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 국로추사(菊露秋寫 姜璘)
❺ 10월에 낙랑 태수가 자객 황창랑(본래 신라인인데 낙랑으로 망명하였다)을 백제에 보내 매일 시중에서 칼춤을 추게 하였다. 백제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구경하였는데, 왕이 이를 듣고 그를 불러 칼춤을 추게 하였다. 황창랑은 칼춤을 추는 척하며 백제왕에게 접근하여 칼로 찌르고 낙랑의 원수를 갚노라고 하였다. 백제인들이 그의 목을 베어 달아매고 팔다리를 잘라 사람들에게 돌려보게 하였다.
2413#17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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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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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 별건곤 제59호 朝鮮刺客列傳
❹ 신라 흘해왕 7년(316) 백제가 신라와 속지 악랑(악랑은 원래 고구려에 속하얏다가 신라 기림왕 3년에 대방과 가티 귀복하얏다)의 서현을 음습하야 빼아스니 악랑 태수가 크게 분한하야 그 보복을 하랴고 여러 가지로 게책을 생각하다가 최후에 자객 황창랑을 뽑아 보냇스니 황창랑은 원래 악랑 사람으로 검술의 천재가 잇서서 여덜 살 때부터 칼춤을 잘 추기로 유명할 뿐 아니라 비분강개한 의협심이 만어 자긔 생명을 초개 가티 녁이는 용소년이엿다.
2413#32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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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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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 삼천리 제12권 제7호
백제에는 계백이라는 유명한 장수가 있었습니다. ... 그러니까 싸우는 대로 신라를 이긴 것이었습니다. 이 때에 한 대신이 아뢰기를, 「죽기를 무서워하지 아니하는 장수 한 사람만 있으면 백제를 막을 수 있소」 하였습니다. 이 때에 어떤 소년 하나가 「신이 나가 죽겠소」 하고 나섰습니다. 다들 돌아보니 그는 아직 얼닐곱살밖에 아니 된 화랑 黃倡郞이었습니다.
▶단순히 관창과 황창을 혼동하였다.
2413#32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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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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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야기 삼국야사(김형광)
❺ 낙랑 태수는 자기 딸이 백제 분서왕의 습격으로 살해되자 사위 보육을 신라로 보내어 원병을 요청한다. 그러나 신라가 이를 거절하자 보육은 칼춤을 잘 추는 황창랑을 데리고 돌아온다. 그리고 낙랑 태수와 계획 끝에 황창랑을 백제에 자객으로 보내어 분서왕을 죽이게 한다. 그리고 황창랑에게 제공하기로 했던 도주로를 제공하지 않아 황창랑이 죽임을 당하게 만든다.
▶국로추사의 이야기에 살을 더 붙였다.
2413#32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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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무
한국의 검무는 신라 시대(서기 667년경)에 황창랑(黃昌郎)이 지은 것이라고 <동경잡기> <풍속조(風俗條)>와 <문헌비고>에 기록되어 있다. 신라의 황창랑이란 7세(8세)의 소년이 검무(劍舞)를 빙자하여 백제왕을 척살하고 백제인들에게 피살되었으므로, 신라사람들이 이를 슬피 여겨, '소년의 얼굴을 닮은 가면을 만들어 쓰고 칼춤을 춘 것'이 지금껏 전한다고 하였다.
2413#32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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