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s home > 3. 왜(倭)는 처음부터 남이었나? > (4) 왜의 한반도 진출 | 27 |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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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3-03(353) 일본서기(720) 인덕천황 41년 | R
(왜) 紀角宿禰를 百濟에 보내어 처음으로 나라의 강역을 나누고 그 땅에서 나는 산물을 모두 기록하였다. 이 때 百濟의 왕족인 酒君이 무례하게 행동하였으므로 紀角宿禰는 백제의 왕을 질책하였다. 그러자 百濟王은 두려워하며 쇠사슬로 酒君을 묶어서 襲津彦에게 딸려보내어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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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5-09(355) 일본서기(720) 인덕천황 43년 | R
(왜) 天皇은 酒君을 불러 새를 보이며, “이것이 무슨 새인가”하고 물었다. 酒君은, “이와 같은 새는 百濟에 많이 있습니다. 길들여 사람을 따르게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빨리 날아서 온갖 새들을 잡습니다. 百濟 사람들은 이 새를 ‘俱知’(이것은 지금의 매이다)라고 부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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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6(246) 일본서기 神功皇后 46년 | R
(왜) 이마숙니는 종자 이파이와 탁순인 과고 두 사람을 백제국에 보내어 그 왕을 위로하였다. 이 때 백제 초고왕은 매우 기뻐하며 후하게 대접하고, 다섯가지 빛깔의 채색비단 각 1필과 각궁전 및 철정 40매를 이파이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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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8 삼국사기 근초고왕 23년 | R
(백제) 신라에 사신을 보내 좋은 말 두 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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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03(249) 일본서기(720) 신공황후 49년 | R
(왜) 황전별과 녹아별을 장군으로 삼아 구저 등과 함께 군대를 거느리고 건너가 탁순국에 이르러 신라를 치려고 하였다. 함께 탁순국에 모여 신라를 격파하고, 비자발‧남가라‧녹국‧안라‧다라‧탁순‧가라의 7국을 평정하였다. 또 군대를 옮겨 서쪽으로 돌아 고해진에 이르러 남쪽의 오랑캐 침미다례를 무찔러 백제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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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72-01 삼국사기 근초고왕 27년 | R
(백제) 사신을 진(晉)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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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72-09(252) 일본서기(720) 신공황후 52년 | R
(왜) 구저 등이 천웅장언을 따라와서 칠지도 1자루와 칠자경 1개 및 여러 가지 귀중한 보물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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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1-07 삼국사기(1145) 광개토왕 0년 | R
(고려) 남쪽으로 백제를 정벌하여 10성을 함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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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1-10 삼국사기(1145) 광개토왕 0년 | R
(고려) 백제 관미성(關彌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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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2(272) 일본서기(720) 응신천황 3년 | R
(왜) 百濟의 辰斯王이 왕위에 있으면서 貴國(日本)의 天皇에게 예의를 잃었으므로, 紀角宿禰·羽田矢代宿禰·石川宿禰·菟木宿禰를 파견하여 그 무례함을 책망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百濟國에서는 辰斯王을 죽여 사죄하였다. 紀角宿禰 등은 阿花를 왕으로 세우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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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2-08 삼국사기(1145) 광개토왕 2년 | R
(고려) 백제가 남쪽 변경을 침략해 왔으므로, 장수에게 명하여 막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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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2-11 삼국사기(1145) 진사왕 8년 | R
(백제) 11월에 왕이 구원의 행궁(行宮)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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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3-07 삼국사기(1145) 광개토왕 3년 | R
(고려) 백제가 침략해 왔는데, 왕은 정예기병 5천 명을 거느리고 맞아 쳐서 이겼다. 나머지 적들이 밤에 도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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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3-08 삼국사기(1145) 아신왕 2년 | R
(백제) 무는 드디어 병사 1만 명을 거느리고 관미성을 포위하였으나, 고구려 사람들은 성문을 닫고 굳게 지켰다. 무는 군량 수송이 이어지지 못하므로 군사를 이끌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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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4-07 삼국사기(1145) 아신왕 3년 | R
(백제) 고구려와 수곡성 밑에서 싸워 패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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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4-08 삼국사기(1145) 아신왕 3년 | R
(백제) 왕이 좌장 진무 등에게 명하여 고구려를 치게 하니, 고구려 왕 담덕(談德)이 직접 군사 7천 명을 거느리고 패수에 진을 치고 대항하였다. 우리 군사가 크게 패하였으니 사망자가 8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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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5-11 삼국사기(1145) 아신왕 4년 | R
(백제) 왕이 패수 전투의 패배를 보복하기 위하여, 직접 군사 7천 명을 거느리고 한수를 건너 청목령 아래에 진을 쳤다. 그때 마침 큰 눈이 내려 병졸들 가운데 동사한 자가 많이 발생하자 왕은 회군하여 한산성에 와서 군사들을 위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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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6-09(276) 일본서기(720) 응신천황 7년 | R
(왜) 高麗人·百濟人·任那人·新羅人이 함께 來朝하였다. 그 때 武內宿禰에게 명하여 여러 韓人들을 이끌고 연못을 만들게 하였다. 때문에 이 연못을 이름하여 韓人池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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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7-03(277) 일본서기(720) 응신천황 8년 | R
(왜) 百濟人이 來朝하였다『百濟記』에는, “阿花王이 왕위에 있으면서 貴國에 예의를 갖추지 않았으므로 (日本이) 우리의 枕彌多禮 및 峴南·支侵·谷那·東韓의 땅을 빼앗았다. 이에 왕자 直支를 天朝(일본조정)에 보내어 先王의 우호를 닦게 하였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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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7-05 삼국사기 백제 아신왕 6년 | R
(백제) 여름 5월에 왕이 왜국과 우호를 맺고 태자 전지를 볼모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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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3(283) 일본서기(720) 응신천황 14년 | R
(왜) 이 해 弓月君이 百濟로부터 와서 귀화하였다. 그리고 아뢰기를, “臣은 우리나라 120縣의 人夫를 이끌고 귀화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新羅人이 방해하여 모두 加羅國에 머물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葛城襲津彦을 파견하여 弓月의 人夫를 加羅에서 데리고 오도록 하였다. 그러나 3년이 지나도 襲津彦은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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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3-02(283) 일본서기(720) 응신천황 14년 | R
(왜) 百濟王이 縫衣工女를 바쳤다. 眞毛津이라고 하는데, 이가 오늘날 來目衣縫의 始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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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4-08(284) 일본서기(720) 응신천황 15년 | R
(왜) 百濟王이 阿直伎를 보내어 좋은 말 2필을 바쳤다. 곧 輕의 산비탈 부근에 있는 마굿간에서 길렀는데, 阿直伎로 하여금 사육을 맡게 하였다. 때문에 말 기르는 곳을 이름하여 廐坂이라고 한다. 阿直伎는 또 經典을 잘 읽었으므로 太子인 菟道稚郞子의 스승으로 삼았다. 이 때 天皇은 阿直伎에게, “혹 너보다 뛰어난 박사가 또 있느냐”고 물으니, “王仁이라는 분이 있는데 훌륭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上毛野君의 조상인 荒田別과 巫別을 百濟에 보내어 王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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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2-07 삼국사기(1145) | R
(백제) 백강 어귀에서 왜국 군사를 만나 네 번 싸워서 모두 이기고, 그들의 배 4백 척을 불사르니, 연기와 불꽃이 하늘로 오르고 바닷물도 붉은 빛을 띄웠다. 이때 왕 부여풍은 탈출하여 도주하였으므로 거처를 알지 못하게 되었는데 어떤 사람은 고구려로 달아났다고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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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3-08-17 일본서기(720) | R
戊戌 적의 장수가 州柔에 이르러 그 王城을 에워쌌다. 唐의 軍將이 戰船 170척을 거느리고 白村江에 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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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3-08-27 일본서기(720) | R
戊申 日本의 수군 중 처음 도착한 배들이 唐의 수군과 만나 싸웠는데, 日本이 불리하여 물러났다. 唐은 굳게 진을 치고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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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3-08-28 일본서기(720) 천지천황 2년 | R
(왜) 당(唐)이 바로 좌우에서 배를 협공하여 에워싸고 싸우니 잠깐 사이에 관군이 계속 패하여,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이 많고 배의 앞뒤를 돌릴 수 없었다. 박시전래진이 하늘을 우러러 보며 맹세하고 분하여 이를 갈며 성을 내고 수십 인을 죽이고 전사했다. 이 때 백제왕 풍장이 여러 사람과 배를 타고 고려로 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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