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신라민족론 > 0. 들어가는 말 > (03) 사료비판 > 일본서기 사료비판 > 0320~0385 신공황후(神功皇后) > 0366~0369 6주갑조정
 
0366(<0006) 삼국사기(1145)
왕이 熊川柵을 세웠다. 마한왕이 사신을 보내 책망하였다. “왕이 애초에 강을 건너와 발 붙일 곳이 없을 때, 나는 동북방의 1백 리 땅을 주어 살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왕을 후하게 대우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마땅히 이에 보답할 생각을 해야 할 것인데, 지금 나라가 안정되고 백성들이 모여 들어 대적할 자가 없다고 생각하여 성과 연못을 크게 만들고 우리의 강토를 침범하니, 이것이 어찌 의리라고 할 수 있는가?” 왕이 부끄러워하며 목책을 허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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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7(<0007) 삼국사기(1145)
왕궁의 우물이 엄청나게 넘쳤다. 한성(漢城)의 민가에서 말이 소를 낳았는데, 머리는 하나였으며, 몸은 둘이었다. 일자(日者)가 말하였다. “우물이 엄청나게 넘친 것은 대왕께서 융성할 징조이며, 하나의 머리에 몸이 둘인 소가 태어난 것은 대왕께서 이웃 나라를 합병할 징조입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기뻐하여, 마침내 진한과 마한을 합병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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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8(<0008)-07 삼국사기(1145)
왕이 말했다. “마한이 점점 약해지고 임금과 신하가 각각 다른 마음을 품고 있으니, 그 국세가 오래 유지될 수 없다. 만일 다른 나라가 이들을 합병해 버린다면 순망치한(脣亡齒寒)이 되어, 그때는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차라리 남보다 먼저 빼앗아 후환을 없애는 것이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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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8(<0008)-10 삼국사기(1145)
왕이 사냥을 간다고 하면서, 군사를 출동시켜 마한을 기습하였다. 마침내 마한의 국읍(國邑)을 아울렀는데, 오직 원산(圓山)과 금현(錦峴) 두 성만은 굳게 수비하고 항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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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0009) 삼국사기(1145)
두 성이 항복하자 그 백성들을 漢山 북쪽으로 옮기니, 마한은 드디어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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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제가 병합한 마한
웅천책이나 한산이라는 지명 그리고 사냥을 핑계댈 수 있는 거리를 생각할 때, 이때 백제가 병합한 지역은 영산이나 영남 지역을 포함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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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왜와 백제가 쓸고간 지역
동으로는 신라, 서로는 주류 그리고 남으로는 고해진에 이른다. 현대 지명으로 비정하면 각각 경주, 변산반도 그리고 강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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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69년 즈음의 영산 지역
고고학적 양상을 보면 이때 백제에 통합되었을 흔적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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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5주갑조정
진서에는 마한이 조공한 기록이 289년까지만 나오고 백제가 조공을 시작한 기록이 372년부터 나온다. 마한이 망한 때가 삼국사기에는 서기 9년이라 되어 있는데, 5주갑 인하하면 309년이 되고 6주갑 인하하면 369년이 된다. 꾸준히 조공하던 마한이 오랬동안 조공을 끊었다고 보기는 힘들므로 마한이 망한 시점으로는 309년이 더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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