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0128 濊·沃沮史 > 1404.05 李朝 太宗 奏
 
1404.05 李朝 太宗 奏
照得 本國東北地方 自公嶮鎭歷孔州吉州端州英州雄州咸州等州 俱係本國之地 조사해 보건대, 본국의 동북 지방은 공험진으로부터 공주·길주·단주·영주·웅주·함주 등 고을을 거치는데, 모두 본국의 땅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 文州·高州·和州·定州·咸州·公嶮鎭 ➔ 公嶮鎭·孔州·吉州·端州·英州·雄州·咸州 ┆公嶮鎭을 제외하면 1388년의 표문은 咸州까지만 언급했고 1404년의 표문은 咸州부터 언급했다.
21326#21415 SIBLINGS CHILDREN 21415
 
Name Dictionary
Names are also vocabulary.
 
1404.05 李朝 太宗 奏 1107
至遼 乾統七年 東女眞作亂 奪據咸州迤北之地 高麗 睿王 王俁告遼請討 遣兵克復 1107년에 동여진이 난을 일으켜서 함주 이북의 땅을 빼앗아 웅거하고 있었는데, 고려의 예왕 왕우가 요에 고하여 토벌할 것을 청하고 군사를 보내어 회복하였습니다.
21326#21611 SIBLINGS CHILDREN 21611
 
1404.05 李朝 太宗 奏 1258
及至元初戊午年間 蒙古 散吉普只等官 收付女眞之時 本國叛民趙暉卓靑等 以其地迎降 以趙暉爲摠管 卓靑爲千戶 管轄軍民 由是女眞人民 雜處其間 各以方言 名其所居 吉州稱海陽 端州稱禿魯兀 英州稱三散 雄州稱洪肯 咸州稱哈蘭 ┆吉州→海陽┆端州→禿魯兀┆英州→三散┆雄州→洪肯┆咸州→哈蘭
21326#21424 SIBLINGS CHILDREN 21424
 
1404.05 李朝 太宗 奏 1258
1258년에 이르러 몽고의 산길보지 등 관원이 여진을 거두어 부속시킬 때에, 본국의 반민 조휘와 탁청 등이 그 땅을 가지고 항복하였으므로, 조휘로 총관을 삼고 탁청으로 천호를 삼아 군민을 관할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여진의 인민이 그 사이에 섞여 살아서 각각 방언으로 그들이 사는 곳을 이름지어 길주를 해양이라 칭하고, 단주를 독로올이라 칭하고, 영주를 삼산이라 칭하고, 웅주를 홍긍이라 칭하고, 함주를 합란이라 칭하였습니다.
21326#21429 SIBLINGS CHILDREN 21429
 
1404.05 ◾吉州→海陽
1108년에 설치되었던 雄州는 이듬해에 여진에게 반환되며 그 명칭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다. 원나라 시기에는 海洋이라 불리었던 듯하다. 1390년에 海洋 인근에 吉州²가 설치되어 海洋까지 관할하게 되면서, 雄州의 위치는 알기 어렵게 되었고 훗날 吉州¹가 海洋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착각이 생겨나게 되었다.
21326#21723 SIBLINGS CHILDREN 21723
 
1404.05 ◾雄州→洪肯
1404년에 명나라가 洪肯의 천호 왕올란 등을 초유한다고 했을 때, 태종이 洪肯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윤관의 동북9성에 나오는 雄州를 끌어다 洪肯에 대응시켰다. 세종실록지리지(1454)에는 洪原이 洪獻 또는 紅坑이라 불리기도 했다고 되어 있어 명나라가 언급한 洪肯은 洪原이 맞는 듯하다. 그러나 그 洪肯이 雄州라는 태종의 주장은 근거를 찾을 수 없고 기록에 나오는 정황과도 맞지 않는다.
21326#23146 SIBLINGS CHILDREN 23146
 
1404.05 李朝 太宗 奏 1356
至至正十六年間 恭愍王 王顓 申達元朝 竝行革罷 仍以公嶮鎭迤南 還屬本國 委定官吏管治 1356년에 이르러 공민왕 왕전이 원나라 조정에 신달하여 모두 혁파하고, 인하여 공험진 이남을 본국에 환속시키고 관리를 정하여 관할하여 다스렸습니다.
21326#21434 SIBLINGS CHILDREN 21434
 
1404.05 李朝 太宗 奏 1388
聖朝洪武二十一年二月 承準戶部咨 該侍郞楊靖等官 欽奉太祖高皇帝聖旨節該 鐵嶺迤北迤東迤西 原屬開原 所管軍民 仍屬遼東所管 欽此 本國卽將上項事 因差陪臣密直提學朴宜中 齎擎表文 前赴朝廷控訴 乞將公嶮鎭迤北 還屬遼東 公嶮鎭迤南至鐵嶺 還屬本國
21326#21453 SIBLINGS CHILDREN 21453
 
1404.05 李朝 太宗 奏 1388
1388년 2월에 호부의 자문을 받았사온데, 호부 시랑 양정 등 관원이 태조 고황제의 성지를 흠봉하기를, ‘철령 이북·이동·이서는 원래 개원의 관할에 속하였으니, 군민을 그대로 요동 관할에 소속시키라.’ 하였습니다. 본국에서 즉시 상항의 사건으로 인하여 배신 밀직 제학 박의중을 보내어 표문을 받들고 조정에 가서 호소하여 공험진 이북은 요동에 환속하고 공험진 이남에서 철령까지는 본국에 환속시켜 주기를 빌었습니다.
21326#21455 SIBLINGS CHILDREN 21455
 
1404.05 李朝 太宗 奏
지금 흠차하신 東寧衛 천호 王脩가 싸 가지고 온 칙유를 받들어 보니 ‘參散·禿魯兀 등처의 여진 지역의 관민인 등을 초유한다.’ 하셨습니다.
21326#23223 SIBLINGS CHILDREN 23223
 
1404.05 李朝 太宗 奏
상고하건대 參散 천호 李亦里不花 등 10처 인원이 비록 여진 인민에 속해 있기는 하나, 본국 지면에 와서 산 지가 연대가 오래고 호인 納哈出 등의 군사와 왜구의 침략을 여러 번 겪었기 때문에 조잔하여 거의 다 없어지고 그 유종으로 남아 있는 것이 얼마 없으며 또 본국의 인민과 서로 혼인하여 자손을 낳아서 부역에 이바지 하고 있습니다.
21326#23224 SIBLINGS CHILDREN 23224
 
1404.05 李朝 太宗 奏
또 신의 조상이 일찍이 동북 지면에 살았으므로 현조 이안사의 분묘가 현재 공주에 있고 고조 행리와 조 이자춘의 분묘가 모두 함주에 있습니다.
21326#23225 SIBLINGS CHILDREN 23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