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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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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 百濟와 倭의 半島 남부 정벌
왜의 황전별과 녹아별이 탁순에 이르러 사백과 개로를 백제에 보내 원병을 요청하였다. 백제의 목라근자와 사사노궤가 오자 함께 신라를 치고 7국을 평정하였다. 荒田別·木羅斤資는 古奚津에서 忱彌多禮를 복속시킨 뒤 북상하며 半古와 布彌支를 복속시켰고 백제왕 부자는 比利와 辟中을 거치며 남하하였는데, 두 나라는 意流村에서 만나 회동하고 荒田別은 왜군을 이끌고 돌아갔다.
1920#3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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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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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71 古典記
歷三百八十九年 至十三世近肖古王 取髙句麗南平壤 都漢城 歷一百五年
389년을 지나 13세 근초고왕에 이르러 고구려의 남평양을 빼앗고 한성에 도읍하였다.
▐ -18년으로부터 389년이 지난 후는 371(-18+389)년이다.
이때 고국원왕이 전사한 것으로 보아 여기에 나오는 南平壤은 광진구에 있었던 平壤³이 아니라 대동강변에 있었던 平壤²으로 보아야 한다.
1920#3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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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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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71.10 ꜛ 三國史記(1145) 百濟
冬 王與太子帥精兵三萬 侵髙句麗 攻平壤²城 麗王斯由力戰拒之 中流矢死 王引軍退
겨울에 왕이 태자와 정예 군사 30,000명을 이끌고 고구려를 쳤다. 평양성을 공격하니 고구려 왕 사유가 힘껏 싸우며 막다가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죽었다. 왕이 군사를 이끌고 물러났다.
▐ '王與太子 帥精兵三萬 侵髙句麗'에서 보이는 것처럼 근초고왕이 태자와 함께 군대를 이끄는 모습은 일본서기(720)의 '其王肖古及王子貴須 亦領軍來會'에서도 나타난다.
1920#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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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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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71.10 「솔까역사」 百濟
移都(漢山→)漢城
도읍을 한성으로 옮겼다.
▐ 古典記에는 取髙句麗南平壤都漢城(고구려의 남평양을 빼앗고 도읍을 한성으로 옮겼다)라고 되어 있고 삼국사기에는 이전에 就漢山下立柵移慰禮城民戸(한산 아래로 나아가 목책을 세우고 위례성의 민호들을 옮겼다)라고 하여 이미 漢山下로 도읍을 옮겼기 때문에, 이때 도읍을 옮긴 곳으로는 漢山보다 古典記에 나오는 대로 漢城이 더 어울린다.
1920#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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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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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71.10 ◾
근초고왕은 369년에 왜와 함께 반도 남부를 경략하고 영산강 유역까지 차지하고, 371년에는 고려를 침공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켰으며, 372년에는 동진에 사신을 보내어 왕성으로 餘씨를 칭하고 작위를 받았는데, 이러한 위세에 걸맞게 도읍도 漢城으로 옮긴 듯하다.
풍납토성은 규모가 매우 커서 이 성을 쌓을 주체로는 근초고왕대의 백제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따라서 백제의 漢城으로는 풍납토성이 가장 잘 어울린다.
1920#3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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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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