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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0~0430 응신천황은 百濟계?
중국의 기록에는 왜가 238~266년간에 중국과 교류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당시 왜는 30여 소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후 왜는 기록에서 사라졌다가 413년부터 통일된 하나의 왕조로 남조의 기록에 나타나 502년까지 교류를 했다. 기록에서 사라진 이 공백 기간에 통일 전쟁을 거쳐 대화 왕조가 세워졌을 것이다.
2418#8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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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0531 계체천황은 무령왕 동생?
우전팔번신사의 인물화상경에는 '계미년에 斯麻가 男弟王의 장수를 기원하며 거울을 만들었다'는 내용의 글귀가 있다.
斯麻는 무령왕의 이름이고 계미년도 무령왕의 재위 기간에 들어 있다.
503년 계미년으로부터 4년 뒤 무열천황이 죽자, 지방에 있던 男大迹王이 男大迹天皇으로 추대된다.
男大迹天皇은 백제에게 임나 四縣을 주었고, 己汶을 놓고 백제와 가라가 대립하였을 때는 백제의 손을 들어주었으며, 또 가라의 多沙津을 떼어 백제에게 주었다.
2418#8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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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81 百濟 임성태자의 후손 일본 명문가
야마구치 지역에 백제인의 도래 설화가 많이 있었는데 오우치씨가 이 지역에서 성장하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시조 이야기를 만들어 국내외의 정치에 이용하였다. 이씨조선은 오우치씨가 왜구를 억제하는 유익한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시조 이야기에 장단을 맞춰주었다.
2418#26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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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0 제명천황은 百濟공주?
남편인 서명천황이 죽자 황위에 올랐던 제명천황은 660년에 백제가 망하고 백제인들이 건너와 구원을 요청하자 이를 지원하기로 하고 준하국에 배를 만들도록 명령하였다. 그리고 직접 축자국으로 건너가 머물며 백제 원병을 준비하다 661년에 죽었다.
마치 친정집을 돕듯이 백제 구원을 준비한 제명천황은 백제의 공주였을까?
2418#7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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