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0012 ☱ 高句麗 > -0037+ 고려의 천도 > 0343.07 ❻平壤²東黄城

移居平壤²東黄城 城在今西京東木覔山中 평양² 동쪽의 황성으로 옮겨 살았다. 성은 지금의 서경 동쪽 목멱산 중에 있다. ▐ 고려는 313년과 314년에 각각 낙랑과 대방을 병합했으므로 여기에 나오는 평양은 대동강 유역에 있는 평양²을 말하는 것일 수 있다.
 
Name Dictionary
Names are also vocabulary.
 
0343.07 三國史記(1145)
移居平壤東黄城 城在今西京東木覔山中 평양 동쪽의 황성으로 옮겨 살았다. 성은 지금의 서경 동쪽 목멱산 중에 있다.
10967#13624 SIBLINGS CHILDREN 13624
 
1011 고려사(1451)
加平壤 木覓橋淵道知巖東明王等神勳號 평양의 목멱, 교연, 도지암, 동명왕 등의 신에게 훈호를 올렸다.
10967#13626 SIBLINGS CHILDREN 13626
 
1109 고려사(1451)
遣同知樞密院事許慶 祭平壤木覓東明神祠 又設文豆屢道場于興福永明長慶金剛等寺 동지추밀원사 허경을 보내 평양 목멱과 동명의 신사에 제사를 올리게 했으며 흥복사·영명사·장경사·금강사 등의 절에 문두루도량을 열게 했다.
10967#13620 SIBLINGS CHILDREN 13620
 
1278 고려사(1451)
命贊成事元傅等 祀聖容殿東明平壤木覓廟 찬성사 원부 등을 시켜 성용전·동명묘 및 평양의 목멱묘 등에 제사를 지내게 했다.
10967#13627 SIBLINGS CHILDREN 13627
 
1293 고려사(1451)
王至西京 謁聖容殿 分遣人 祭平壤君祠東明王及木覓廟 왕이 서경에 이르러 성용전을 참배한 후 평양군사, 동명왕묘, 목멱묘에 각각 사람을 보내 제사를 지내게 했다.
10967#13628 SIBLINGS CHILDREN 13628
 
1451 고려사 양주
肅宗元年 衛慰丞同正金謂磾 據道詵密記 請遷都南京云 楊州 有木覓壤 可立都城 숙종 원년(1096)에 위위승동정 김위제가 도선밀기에 의거하여 남경으로 천도할 것을 요청하면서 양주에 목멱양이 있어 도성을 세울 만하다고 말하였다. 삼각산, 한강 그리고 양진이 있다.
10967#13629 SIBLINGS CHILDREN 13629
 
1451 서울 남산
삼각산, 한강 그리고 양진이 속해 있는 양주의 서부에 있다.
10967#13631 SIBLINGS CHILDREN 13631
 
대구 앞산
달성의 남쪽에 있다.
10967#13632 SIBLINGS CHILDREN 13632
 
대성산성
10967#13651 SIBLINGS CHILDREN 13651
 
대성산성
평양성과 낙랑구역의 동북쪽에 있다. 목멱의 뜻이 앞뫼라면 대성산은 이 뜻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10967#13652 SIBLINGS CHILDREN 13652
 
목멱신사
목멱산은 현재의 서울 남산을 일컫고, 목멱신사(木覓神祠)에 대한 이칭은 흔히 국사당(國師堂)이라고 하였다. 태조가 이조에 명하여 남산을 봉하여 목멱대왕으로 삼은 뒤 경대부와 사서는 제사하지 못하게 하였다. 목멱신사에 주로 빌었던 내용은 나라를 지키고 복을 비는 수호기복, 왕가나 왕손의 병을 구원하자는 구병 등이 대부분이다. 고대로부터 지속되어온 산악신앙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이고, 그것이 조선시대에 이르러 신당의 형태로 드러난 것이 목멱신사이다.
10967#13625 SIBLINGS CHILDREN 13625
 
목멱은 앞산의 이두식 표현
역사학자 안재홍은 목멱(木覓)은 남산의 우리말인 ‘마뫼’의 이두 표기라고 풀었다. 우리말 마뫼의 ‘마’는 앞이고 ‘뫼’는 산이므로 남산의 남(南)자는 ‘남녘 남’ 자가 아니라 ‘앞 남’자이며 결국 남산은 앞산이라는 것이다.
10967#13623 SIBLINGS CHILDREN 13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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