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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97-03(<-277) 일본서기(720)
백제인이 내조하였다, 백제기에는, “아화왕이 왕위에 있으면서 귀국에 예의를 갖추지 않았으므로 우리의 침미다례 및 현남·지침·곡나·동한의 땅을 빼앗았다. 이에 왕자 직지를 천조에 보내어 선왕의 우호를 닦게 하였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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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97-05 삼국사기(1145)
아신왕이 왜국과 우호를 맺고 태자 전지를 볼모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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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05 (<-285) 일본서기
백제의 아화왕이 죽었다. 천황은 직지왕을 불러, “그대는 본국으로 돌아가서 왕위를 잇도록 하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동한의 땅을 주어 보냈다. 동한은 감라성·고난성·이림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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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05-09 삼국사기(1145)
전지왕은 아신이 재위 6년에 왜국에 볼모로 보냈다. 14년에 왕이 죽자 왕의 둘째 동생 훈해가 정사를 대리하면서 태자의 환국을 기다렸는데, 막내 동생 혈례가 훈해를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전지가 왜국에서 부음을 듣고 귀국하기를 청하니 왜왕이 병사 100명으로써 호위해 보냈다. 전지는 왜인을 머물러 두어 자기를 호위하게 하고, 바다의 섬에 의거하여 기다렸더니, 나라 사람들이 혈례를 죽이고 전지를 맞아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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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61-04 일본서기(720)
백제 가수리군(개로왕)은 지진원이 불에 타 죽었다는 것을 전해 듣고 의논하기를 “옛날에 여자를 바쳐 채녀로 삼았다. 그러나 예의가 없어 우리나라의 이름을 실추시켰으니 지금부터는 여자를 바치지 않는 것이 옳겠다”라고 하였다. 이에 그의 아우 군군(軍君, 곤지)에게 “네가 일본에 가서 천황을 섬겨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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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79-04 일본서기(720)
백제의 문근왕(文斤王)이 죽었다. 천왕이 곤지왕의 다섯 아들 중 둘째인 말다왕(末多王)이 어린 나이에 총명하므로 칙명으로 궁궐에 불러 직접 머리를 쓰다듬으며 은근하게 조심하도록 타이르고 그 나라의 왕으로 삼았다. 그리고 병기를 주고 아울러 축자국 군사 500인을 보내 자기 나라로 호위해 보냈는데, 이 사람이 동성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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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13-08 일본서기(720)
백제 태자 순타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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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31-03 일본서기(720)
백제왕 의자가 왕자 풍장(豐章)을 들여 보내어 볼모로 삼았다. -- 의자왕은 641년에 왕이 되었으므로 이 기록은 연도를 잘못 표기했거나 무왕을 의자왕으로 잘못 표기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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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60-10_ 구당서(945)
백제의 중 도침과 옛 장군 복신이 무리를 거느리고 주유성을 거점으로 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왜국에 사신을 보내어 옛 왕자 부여풍을 맞아다 왕으로 세웠다. 서부와 북부가 모두 성을 뒤집고 여기에 호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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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60-10_ 신당서(1060)
장(璋, 무왕)의 조카 복신은 일찍이 군병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이때에 중 도침과 함께 주유성을 거점으로 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왜에서 옛 왕자 부여풍을 맞아다 왕으로 삼으니, 서부가 다 호응하여 군사를 이끌고 유인원을 포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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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61-09 일본서기(720)
황태자가 장진관에서 직관을 백제 왕자 풍장에게 주고, 또 다신장부의 누이를 아내로 삼게 하였다. 그리고 대산하 협전련빈랑, 소산하 진조전래진을 보내 군사 5천여 명을 거느리고 본국에 호위하여 보내 주었다. 이에 풍장이 나라에 들어갈 때 복신이 맞이하러 와서 머리를 조아리고 나라의 정사를 모두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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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89-12-14 속일본기(797)
황태후의 성은 화(和)씨이고 이름은 신립이다. 황태후의 선조는 백제 무령왕의 아들인 순타(純陁)태자에서 나왔다. 금상(환무천황)과 한량친왕, 능등내친왕을 낳았다. 그 백제의 먼 조상인 도모왕(都慕王)이라는 사람은 하백의 딸이 태양의 정기에 감응해서 태어난 사람인데, 황태후는 곧 그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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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의 볼모 요약
전지의 경우 397년과 405년의 사건이 일본서기와 삼국사기에서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으므로 역사적 사실임이 분명하다. 부여풍의 경우 일본서기와 당서의 기록이 일치하므로 또한 역사적 사실임을 부정할 수 없다. 두 사례 외에도 일본의 기록에는 백제가 왜에 볼모를 보냈다는 사례가 더 있으나 한국이나 중국의 기록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정황상 역사적 사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씨조선이 태자 이은을 일본에 유학보낸 것도 볼모로 보는 견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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