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삼한시대 연대기 > 391년부터 474년 사이 > 0461-06 무령왕 출생
 
 0461-04 일본서기(720)
백제 개로왕은 지진원이 불에 타 죽었다는 것을 전해 듣고 의논하기를 “옛날에 여자를 바쳐 채녀로 삼았다. 지금부터는 여자를 바치지 않는 것이 옳겠다.”라고 하였다. 이에 그의 아우 군군에게 “네가 일본에 가서 천황을 섬겨라.”고 말하였다. 개로왕은 임신한 부인을 주며 "나의 임신한 아내는 이미 해산할 달이 되었다. 만약 도중에 아이를 낳게 되면, 속히 보내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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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61-06 일본서기(720)
초하루 임신한 부인이 과연 가수리군(개로왕)의 말처럼 축자의 각라도에서 아이를 낳았다. 그래서 이 아이의 이름을 도군(嶋君)이라 하였다. 이에 군군은 곧 한 척의 배로 도군을 본국에 보내었는데, 이가 무령왕이 되었다. 백제 사람들은 이 섬을 주도(主嶋)라 일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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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01-11 삼국사기(1145)
무령왕의 이름은 사마(斯摩, 혹은 隆이라고도 한다)이니 모대의 둘째 아들이다. 신장이 8척이오, 눈매가 그림과 같았으며 인자하고 너그러워서 민심이 그를 따랐다. 모대왕이 재위 23년에 사망하자 그가 왕위에 올랐다. -- 사마는 섬을 뜻하는 일본어 시마(シマ)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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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02 일본서기(720)
백제 말다왕이 무도하여 백성들에게 포학했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마침내 제거하고 도왕을 세우니 바로 무령왕이다. (백제신찬에 이르기를 말다왕이 무도하여 백성들에게 포학했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함께 제거했다. 무령왕이 즉위하였는데 이름은 사마왕이고 곤지왕자의 아들이니 말다왕의 이모형이다. 곤지가 왜로 갈 때에 축자도에 이르러 사마왕을 낳았다. 지금 생각건대 도왕은 곧 개로왕의 아들이고 말다왕은 곤지왕의 아들이다. 여기서 이모형이라고 한 것은 자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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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23-05 무령왕릉지석(武寧王陵誌石)
영동대장군인 백제 사마왕(斯麻王)은 나이가 62세 되는 계묘년 5월 (병술일이 초하루인데) 임진일인 7일에 돌아가셨다. 을사년 8월 (계유일이 초하루인데) 갑신일인 12일에 안장하여 대묘에 올려뫼시며, 기록하기를 이와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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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라도 위성지도
各羅嶋, かからのしま, 加唐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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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령왕에 대해서는 일본서기가 맞다
삼국사기는 이 시기의 왕위계승이 개로왕(455-475) - 문주왕(475-477) - 삼근왕(477-479) - 동성왕(479-501) - 무령왕(501-523)으로 이어진다고 하고 부자관계는 개로왕-문주왕-삼근왕으로 이어지는 갈래와 개로왕-곤지-동성왕-무령왕으로 이어지는 갈래가 있다고 하였다. 반면에 일본서기에는 문주왕과 곤지가 모두 개로왕의 동생이며 동성왕과 무령왕은 모두 곤지의 아들이고 무령왕의 친부는 개로왕이라고 하였다.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의 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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