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 요외의 맥인(예맥국 사람을 말한다)이 우북평, 어양, 상곡 그리고 태원을 침략하였다. 요동태수 채융이 불러 항복시켰다.
이 기록의 맥인은 오환의 오기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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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 삼국지(289)
오환의 대인 학단 등이 9천여 인의 무리를 거느리고 궁궐을 방문하자, 후 혹은 왕에 책봉된 거수들이 80여 인이었다. 그들에게 새내에 거주하도록 하였는데 요동속국, 요서, 우북평, 어양, 광양, 상곡, 대군, 안문, 태원, 삭방, 여러 군의 경계 지역 곳곳에 두루 안치하였다. 동족을 불러오도록 하여 그들에게 옷가지와 음식물을 주었고, 교위를 설치하여 그들을 거느리게 하였으며, 마침내 한나라를 위하여 정찰하면서 대비하였고 흉노와 선비를 공격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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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01 후한서(445) 光武帝紀
요동 요외의 맥인(예맥국 사람을 말한다)이 우북평, 어양, 상곡 그리고 태원을 침략하였다. 요동태수 채융이 불러 항복시켰다.
오환의 대인이 내조하였다.(대인은 우두머리를 말한다.)
남선우가 사신을 보내어 공헌하고 변방의 신하가 되겠다고 하였다. 또 좌현왕을 보내어 북흉노를 격파하고 천여리를 쫓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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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01 삼국사기(1145)
장수를 보내 한(漢)의 북평(北平)·어양(漁陽)·상곡(上谷)·태원(太原)을 습격하였으나 요동태수 채동(蔡彤)이 은혜와 신의로 대우하였으므로 다시 화해하고 친하게 지냈다.
※후한서의 기록을 옮겨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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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01 貊人이 아니라 烏桓이다
요동군이 건재한 상태에서 맥고려가 우북평, 어양, 상곡 그리고 태원을 침공하려면 북쪽으로 요하 상류를 지나거나 남쪽으로 바닷길을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요하 상류보다는 아무래도 바닷길이 쉽다. 당시 요하 상류에는 오환과 선비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닷길을 이용하려면 먼저 압록강을 따라 내려가 바다에 들어간 뒤 해안을 따라 요동반도를 돌아서 계속 가면 된다.
그러나 낙랑군도 건재해 있는 상태라, 맥고려가 요동군과 낙랑군 사이를 지나 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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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_ 후한서(445) 烏桓
遼西烏桓大人郝旦等九百二十二人率眾向化詣闕朝貢獻奴婢牛馬及弓虎豹貂皮
요서 오환대인 학단 등 922인이 무리를 이끌고 귀순하였다. 궁궐을 방문하여 조공하고 노비, 소, 말, 활 그리고 호랑이· 표범·담비의 가죽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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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5 삼국사기(1145)
築遼西十城以備漢兵
요서에 10성을 쌓아 한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 이 기록이 사실이라면 고려는 이때 요동을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후한서에는 49년에 요동 태수가 고려를 달랬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따라서 앞뒤 정황과 맞지 않는다.
이 기록은 출처도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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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후한서의 기록을 문자 그대로 인정하고 요동과 요서를 산해관 동쪽으로 설정하여 그것을 설명하고 있다.
● 이덕일의 설명은 모순이 굉장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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