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0676 ⏍ 新羅 > (2) 다종족 상태 > 유민 > 초원에서 오지 않았다 > 학자들의 견해

새로운 발굴은 의외의 고고학적 양상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이때 강한 자극을 받은 학자들은 그것을 과도하게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문화의 전파를 주민의 이동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고고학적 양상을 근거로, 흉노 유민이 신라를 세웠다거나 부여 유민이 남가라를 세웠다거나 또는 기마 민족이 왜 왕조를 세웠다거나 하는 주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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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
강인욱은 신라 왕조와 북방 기마 민족의 연관성을 밝히기 위해 고고학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관련된 발굴에 참여하고 연구도 했지만 그러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지금은 신라 왕조가 부여 계통인 고려와 백제에 대항하여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흉노 문화를 선호하고 흉노 왕자의 후손을 자처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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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현
최병현은 신라의 적석목관분이 출토되는 것을 보고 기마민족이 신라로 왔다는 논문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 너무 나갔다는 판단을 한다. 대성동 고분을 발굴한 신경철이 라마동 고분과의 유사성을 들어 부여 유민이 남가라를 세웠다는 주장을 하는 것과 비교할 만하다. 신경철은 아직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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