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이 시작된 이후 반도로 흘러온 유민은 경작의 종류에 따라 밭농사와 논농사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각각 북쪽과 서남쪽으로 들어온 듯하다.
역사 기록이 시작된 이후 반도로 흘러온 유민은 북중국, 특히 연나라 지역에서 발해를 지나 대동강 및 한강 유역으로 와 일부는 정착하고 일부는 낙동강 유역까지 들어온 것으로 되어 있다.
고고학적 양상을 보면 영산강 유역과 일본 구주 지역이 동조 현상을 보이고 있어 종족적 친연성을 추정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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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號
❶ 고구려와 사로는 각각 고려와 신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처음 이름을 버리고 나중 이름으로 통일한다.
❷ 고려와 백제는 훗날 동일한 이름의 나라가 다시 세워졌는데, 원래의 나라는 그대로 두고 나중의 나라만 접두어를 붙여 구별한다. 궁예고려, 왕씨고려, 견훤백제, ...
❸ 훗날의 나라 이름에 붙이는 접두어는 왕조를 표시하는 말로 한다. 위만조선, 이씨조선, ...
1716#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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流民
고대 동북아 유민의 가장 큰 흐름은 중국, 특히 연나라에서 조선으로 유민이 흘러가고 또 조선에서 진한으로 유민이 흘러오는 경향이다. 조선이 낙랑이 된 이후에도, 그리고 진한이 신라가 된 이후에도, 이러한 경향은 계속 이어졌다.
한편, 백제와 고려가 패망하면서 많은 유민들이 당나라와 왜로 건너갔다.
1716#1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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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는 말이 통했을까?
삼국지(289)에는 진한에 대해 진나라 유민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를 소개하며 쓰는 말이 마한과 달랐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주서(636)에는 백제에서 왕을 어라하라 부르는데 백성들은 건길지라고 부른다고 되어 있어, 부여계 지배 세력과 마한계 피지배 세력의 언어가 달랐거나 한강 유역의 언어와 금강 유역의 언어가 달랐을 가능성을 열어준다.
1716#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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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고려는 지명이 달랐다.
삼한³의 지명을 보면 차현과 죽령을 경계로 해서 남북의 지명에 확연한 차이가 있다. 그 이북의 지명은 한사군 시기에 없던 것으로 고려가 붙인 것이고, 그 이남의 지명은 삼한의 지명에 기원이 닿은 것이 많아 삼한의 지명을 이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양상은 고려와 한국이 근본적으로 언어가 달랐던 것을 암시한다.
차현과 죽령 이남도 소백산맥을 경계로 동서에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이는 방언 정도에 불과해 보인다.
1716#25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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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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