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新羅民族論 > 0676 新羅

新羅는 562년에 가라를 병합하고 백여년 후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려를 각각 660년과 668년에 멸망시킨 뒤, 676년에는 당나라마저 몰아내고 임진강 이남을 하나로 통일하였다. 이로써 갈래가 다른 여러 종족들이 하나의 통치체제에 담기게 되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내부적으로는 동질성이 커지고 대외적으로는 이질성이 커져 하나의 민족으로 발전하였다. 漢나라때 漢族이 형성되었듯 新羅라는 그릇에 담겨 생겨난 민족이니 新羅民族이라 부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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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韓中日同祖論
한국인의 Haplogroup은 북중국 및 서일본과 비슷하다. 이것은 한중일 공통 조상이 동남아에서 해안을 따라 올라와 북중국에 정착하고 일부는 발해안을 지나 한국으로 왔으며 다시 일부는 해협을 건너 일본 서부로 갔다는 이야기로 설명될 수 있다.
1718#1984
 
(2) 다종족 상태
Ethnolinguistic Groups of Myanmar姓氏고려와 한국은 서로를 동족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려와 한국은 지명이 달랐다.동이족이란 없었다말이 통했을까?온돌은 민족 고유의 문화가 아니다.유민이질감은 오래 남았다
 
(3) 신라민족의 형성
(1) 삼국통일인가?(2) 삼한통일인가?(3) 민족통일인가?(4) 한국통일(5) 한국통일의 배경(6) 한국통일의 의미물귀신 蓋蘇文신라민족의 형성향문천 - 혈통과 민족은 일치하지 않는다.
 
(4) 민족의 북방이주
한민족은 신라의 반도 통일로 형성되었다. 이 반도 통일을 완성한 시점의 북방 경계는 임진강이었다. 이후 대동강까지 영역이 확장되었고 왕씨고려 시기에는 압록강까지 그리고 이씨조선 시기에는 두만강까지 영역이 확장되었다.
1718#1724 COMMENT
 
(5) 왕고와 이조의 다문화
백정의 기원은 왕씨고려의 양수척인데, 양수척은 왕씨고려에 복종하지 않은 견훤백제의 잔민들이었다. 이후 북방에서 흘러온 발해, 거란, 몽골 등의 유민들도 양수척으로 분류되었다. 이씨조선에서 명칭을 백정으로 바꾸었으나 여전히 일반 백성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이씨조선때 들어온 여진인과 왜인은 향화인으로 불렸는데, 백정과 달리 이들은 비교적 잘 섞였다.
1718#2613 COMMENT
 
(6) 종족에서 민족으로
1718#1793 COMMENT
 
historiography - 국조
나라의 시조는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신라는 혁거세를 시조로 모셨고 왕고는 추모와 기자를 시조로 모셨으며 이조는 추모와 기자에 단군을 더했다. 신라의 후속국인 왕고가 추모와 기자를 시조로 모신 건 고려계승이라는 왕조의 명분을 뒷받침하고 중원에 기대어 왕조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이조가 단군을 더한 것은 새로이 생겨나 퍼져나간 단군설화를 반영한 것이다.
6766
 
향문천 - 혁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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