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신라민족론 > 8. 遼黑史 > BC 0108 낙랑 > 0008 ᑅ 한서(82) 玄菟郡

玄菟郡縣三高句驪上殷台西蓋馬 현토군 현은 고구려, 상은태 그리고 서개마가 있다.
 
압록강 유역
맥인은 압록강의 지류인 비류수 유역을 중심으로 일대에 살고 있었다. 현도군은 심양과 薩爾滸城(살이허성) 사이에 있었고 고구려현은 赫圖阿拉(혁도아랍)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1090
 
BC 0109 漢의 衛滿朝鮮 침공
11104
 
0008 한서(82)
玄菟郡戶四萬五千六口二十二萬一千八百四十五縣三高句驪上殷台西蓋馬 현토군은 45,006호에 221,845구다. 현은 고구려, 상은태 그리고 서개마가 있다.
11079
 
0008 漢書註
玄菟郡(武帝元封四年開高句驪莽曰下句驪屬幽州應劭曰故眞番朝鮮胡國) 현도군(무제 원봉 4년에 설치했다. 고구려는 왕망이 하구려라 했다. 유주에 속한다. 응소는 옛 진번과 조선이 오랑캐 나라라 했다.) ※사기에는 元封三年 以故遂定朝鮮爲四郡이라 되어 있으나 이 기록에 의해 현도군은 이듬해에 설치된 것으로 판단된다. 왕망은 서한을 멸망시킨 사람이고 응소는 동한 말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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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 漢書註
高句驪(遼山遼水所出西南至遼隊入大遼水又有南蘇水西北經塞外應劭曰故句驪胡) 고구려(요산은 요수가 나오는 곳이다. 서남쪽으로 흘러 대요수로 흘러들어간다. 또 남쪽에는 소수가 있어 서북쪽으로 흘러나간다. 응소는 옛 구려는 오랑캐라고 했다.) ※응소는 동한 말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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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 漢書註
上殷台(莽曰下殷如淳曰台音鮐師古曰音胎) 상은태(왕망은 하은이라고 했다. 台를 여순은 발음이 鮐라고 했고 사고는 胎라고 했다. ※왕망은 서한을 멸망시킨 사람이고 여순은 조위 사람이며 사고는 당나라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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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 漢書註
西蓋馬(馬訾水西北入鹽難水西南至西安平入海過郡二行二千一百里莽曰玄菟亭) 서개마(마자수가 서북쪽으로 흘러 염난수로 들어간다. 서남쪽으로 흘러 서안평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2군을 지나 2100리를 흐른다. 왕망은 현토정이라 했다.) ※왕망은 서한을 멸망시킨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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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2 한서
왕망 초에 고구려 병력를 뽑아 오랑캐를 정벌하려 하였으나 모두 도망하여 변경을 나가 법을 어기고 도적이 되었다. 요서대윤 전담이 그들을 추격하다 죽자 왕망이 장수 엄우를 시켜 치게 하였다. 엄우가 고구려후 추(騶)를 유인하여 목을 베고 그 머리를 장안에 보냈다. 왕망이 高句驪를 下句驪로 이름을 바꾸고 천하에 알리게 하였다. 이에 맥인이 변경을 더욱 침범하게 되었다.
11106
 
0289 삼국지
東沃沮在高句麗蓋馬大山之東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의 동쪽에 있는데 큰 바닷가에 접해 산다. 그 지형은 동북간은 좁고, 서남간은 길어서 천리 정도나 된다. 북쪽은 읍루·부여와 남쪽은 예·맥과 접하여 있다. 호수는 5천호인데 대군왕은 없으며 읍락에는 각각 대를 잇는 우두머리가 있다.
11089
 
0289 삼국지
관구검이 句麗를 토벌할 때 句麗의 왕 궁(宮)은 북옥저로 달아났다. 北沃沮一名置溝婁 북옥저는 일명 치구루라고도 하는데 남옥저와는 8백여리 떨어져 있다. 그들의 풍속은 남·북이 서로 같으며, 읍루와 접해 있다.
11099
 
0289 삼국지
漢 때에는 북과 피리와 악공을 하사하였으며, 항상 현도군에 나아가 조복과 의책을 받아갔는데, 고구려령이 그에 따른 문서를 관장하였다. 그 뒤에 차츰 교만 방자해져서 다시는 군에 오지 않았다. 이에 동쪽 경계상에 작은 성을 쌓고서 조복과 의책을 그곳에 두어, 해마다 와서 그것을 가져가게 하였다. 今胡猶名此城爲幘溝漊 溝漊者句麗名城也 지금도 오랑캐들은 이 성을 책구루라 부른다. 구루란 구려 사람들이 성을 부르는 말이다.
11100
 
0926 신당서(1060)
예맥(예貃)의 옛 땅으로 동경(東京)을 삼으니 용원부(龍原府)로 책성부(柵城府)라고도 한다. 경(慶)·염(鹽)·목(穆)·하(賀)의 4주를 통치한다. 옥저(沃沮)의 옛 땅으로 남경(南京)을 삼으니 남해부(南海府)이며 옥(沃)·청(晴)·초(椒)의 3주를 통치한다. ※예맥과 옥저는 바뀐듯하다.
11101
 
1145 삼국사기
通典, 漢書志, 周禮 그리고 古記의 기록을 참고하여 고구려가 세워진 곳이자 고구려현이 있던 곳을 요서의 北鎮으로 비정하였다. 所謂朱蒙所都紇升骨城卒夲者 蓋漢玄菟郡之界 大遼國東亰之西 漢志所謂玄菟屬縣髙句麗是歟
7604
 
上殷台县
11056
 
介幘
11103
 
高句驪 上殷台 西蓋馬
삼국지에 蓋馬大山이란 지명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蓋馬란 지명은 독립적으로 있었던 게 분명하다. 따라서 西蓋馬는 蓋馬 지역의 서쪽 부분을 말하는 것이 된다. 나아가 上殷台 또한 殷台 지역의 상류 부분을 가리키는 말일 수 있다. 이는 上加羅, 下加羅, 上哆唎, 下哆唎 등의 예로 유추할 수 있다. 高句麗 또한 句麗란 어근에 高라는 꾸밈말이 붙은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왕망이 高句驪를 下句驪로 이름을 바꾸었다거나 삼국지에서 高句麗가 句麗로만 칭해지기도 한 것 ...
11092
 
高句驪의 기원
압록강 유역에는 맥인이 살고 있었다. 위만 조선에 복속되어 있었는데, 한나라가 위만 조선을 무너뜨리고 4군을 설치할 때 현도군 고구려현에 소속시켰다. 그러나 점차 한나라의 통제를 벗어나 전한 말에는 추모를 시조로 하는 왕국으로 성장하였다.
11088
 
비리(卑離), 부리(夫里), 벌(伐·弗·火), 홀(忽)
한강 유역과 그 북쪽에는 忽이 붙은 지명이 많다. 이는 다른 지역에 거의 없는 현상이다. 이 忽은 골 또는 고을을 뜻하는 것으로 보여 차령 이남의 夫里와 죽령 이남의 火(불)이 들을 뜻하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11105
 
한국학중앙연구원 - 노태돈
高句麗의 어원은 句麗에서 비롯하였다. 범어잡명(梵語雜名)과 돈황문서(敦煌文書) 등에서 高句麗를 무구리(畝久理)라 하였다. 이는 맥구려(貊句麗) 즉 貊族의 句麗를 기술한 것이다. 이는 곧 高句麗에서 句麗가 어간이고, 高는 관형사임을 말해준다. 고구려어에서 城을 구루(溝漊) 또는 홀(忽)이라 하였다. 이는 고을과 통하는 말이다. 高句麗는 句麗에다가 크다 또는 높다는 뜻의 高를 덭붙인 말로서, 큰 고을 또는 높은 성의 뜻을 지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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