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신라민족론 > 5. 고려는 우리 역사인가? > (4) 낙랑고려 > 벽화 > 옷, 쓰개, 신, 머리털, ... > 한복 (韓服)

○ 한국인의 조상이 농경 문화를 가지고 한반도로 들어올 때는 바지가 없었던 듯하다. 이후 바지 저고리 문화가 기마 문화와 함께 들어와 한복의 틀을 만들었고 일본으로도 전해졌다. ○ 고구려인과 한국인은 별개의 종족이었고 고구려의 대부분은 신라의 한국 통일에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고구려 벽화에 그려진 옷은 한민족의 옷이 아니다.
 
1871 신미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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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 일조시대 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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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범사냥 포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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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이전
목이 파여 있고 고름으로 고정하였으며 소매와 통이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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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
오른쪽의 남녀는 맨발이다.
11322
 
신윤복
신윤복   신윤복   신윤복   신윤복   신윤복  
 

○ 기본적으로 남자는 저고리와 바지, 여자는 저고리와 치마로 구성되어 있다. 저고리는 허리띠 대신 고름으로 묶어 고정한다. 길이는 남자는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나 여자는 배꼽까지만 내려온다. ○ 남자는 저고리 위에 두루마기를 입기도 한다. 삼한 시대의 웃옷이 옷의 가장자리를 다른 색의 천으로 덧대고 길이가 무릎 위까지만 내려오며 허리띠로 고정하는 반면, 두루마기는 옷의 가장자리를 달리 처리하지 않았고 길이가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며 고정은 고름으로 한다.
11304#11342
 
짚신과 나막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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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 삼베, 면직, 명주 그리고 모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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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 삼베, 면직, 명주 그리고 모직
삼베, 면직 그리고 명주는 각각 삼, 목화 그리고 뽕을 재배해야 생산할 수 있고 모직은 양을 길러야 생산할 수 있다. 기마 유목민은 삼, 목화 그리고 뽕을 재배할 수 없고, 양털은 많이 생산할 수 있으나 천을 짜기는 힘들다. 따라서 가죽이나 양털을 생산하여 천과 교환했을 것이다. 정착 농경민은 삼베, 면직 그리고 명주를 모두 생산할 수 있으나 가죽이나 양털은 많이 생산할 수 없다.
11304#11341
 
한복(韓服) - 나무위키
○ 기본적으로 상유하고(上襦下袴) 양식을 띠고 있다. 북방(알타이)계 호복을 근간으로 상의와 하의가 나누어져 있어 여자는 저고리와 치마+바지, 남자는 저고리와 바지로 구성된 활동적인 복식이다. ○ 상유하고란 위에는 저고리, 밑에는 바지라는 뜻이다. 중국의 한푸는 기본적으로 위아래 한 벌인 통옷이지만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한 탓에 대체로 상의하상(上衣下裳)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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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韓服) - 한국학중앙연구원
"기본복의 원류는 스키타이계이며 북방민족의 복식이다." ● 어떤 근거로 이런 주장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정착 농경민이 멀리 떨어진 기마 유목민의 옷을 따라 입는다는 이야기는 자연스럽지 않다. 농경 문화를 가지고 한반도로 들어올 때 입고 있었던 기존의 옷이 있었을 것이고, 유목민들의 옷이 농경에 적합하지 않았을 것이며, 한반도는 초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민중들의 문화는 교류되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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