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쓰개, 신, 머리털 등은 기후와 이웃한 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농경, 목축 등 산업의 영향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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半島と九州情勢
한반도로 농경민이 유입되는 경로는 크게 두 갈래다. 전쟁과 재난을 피해 북중국에서 요동을 지나 한반도로 내려오는 화전민이 하나의 갈래고 장강 유역에서 산동 반도나 유구 열도를 거쳐 한반도로 들어오는 논농사 주민이 하나의 갈래다. 이들은 모두 중국에서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들어왔을 것이다.
2515#1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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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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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5+ 三國志(289)
漢 때에는 북과 피리와 악공을 하사하였으며, 항상 현도군에 나아가 朝服과 衣幘을 받아갔는데, 고구려령이 그에 따른 문서를 관장하였다. 그 뒤에 차츰 교만 방자해져서 다시는 군에 오지 않았다. 이에 동쪽 경계상에 작은 성을 쌓고 朝服과 衣幘을 그곳에 두어, 해마다 와서 그것을 가져가게 하였다. 지금도 오랑캐들은 이 성을 幘책구루라 부른다. 구루란 구려 사람들이 성을 부르는 말이다.
2515#14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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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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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9 三國志
왜인의 옷은 모두 가로의 폭이 넓은 천을 묶어서 서로 이었으며, 실로 꿰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인은 옷을 만드는 것이 홑이불과 같은데, 그 중앙을 뚫고 그곳으로 머리를 넣어 입는다.
▐ 일본의 벼농사는 한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전해 주었다. 그렇다면 벼농사를 전해줄 당시의 한국인의 옷도 이 기록의 옷보다 낫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지는 우리의 조상이 한반도에 정착한 이후 들어온 것이 된다.
2515#11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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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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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9 三國志 倭
남자는 모두 모자를 쓰지 않고 상투를 틀고, 목면으로 머리를 묶는다. 그 옷은 모두 가로의 폭이 넓은 천을 묶어서 서로 이었으며, 실로 꿰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인은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거나 말아서 뒤로 묶었으며, 옷을 만드는 것이 홑이불과 같은데, 그 중앙을 뚫고 그곳으로 머리를 넣어 입는다. 벼와 모시를 재배하고 양잠을 하여 실을 만들며, 세모시, 좋은 비단 그리고 솜을 산출한다.
2515#11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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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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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9 三國志 夫餘
在國衣尙白 白布大袂 袍·袴履革鞜 出國則尙繒繡錦罽 大人加狐狸·狖白·黑貂之裘 以金銀飾帽
국내에 있을 때의 의복은 흰색을 숭상하여 흰 베로 만든 큰 소매달린 도포와 바지를 입고 가죽신을 신는다. 외국에 나갈 때에는 비단옷·繡놓은 옷·모직옷을 즐겨 입고, 대인은 그 위에다 여우·삵괭이·원숭이·희거나 검은 담비 가죽으로 만든 갓옷을 입으며, 또 금·은으로 모자를 장식하였다.
※履 신 리, 革 가죽 혁, 鞜 가죽신 탑
2515#11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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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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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9 三國志 馬韓
其人性彊勇 魁頭露紒 如炅兵 衣布袍 足履革蹻蹋
(마한) 사람들의 성질은 굳세고 용감하다. 머리칼을 틀어 묶고 상투를 드러내는데 마치 날카로운 병기와 같다. 베로 만든 도포를 입고 발에는 가죽신을 신고 다닌다.
※ 章懷云 魁頭 猶科頭也 謂以髪縈繞 成科結也 紒 音計 장회 태자가 말하길, "괴두는 유과두다. 머리털을 얽고 둘러 묶는 것을 말한다. 紒는 발음이 計다."
※猶 원숭이 유, 髪 머리털 발, 縈 얽힐 영, 繞 두를 요, 蹻 발돋움할 교, 蹋 밟을 답
2515#11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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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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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9 유목민과 농경민
▐ 오환과 선비는 유목민이고 부여, 맥고려 그리고 읍루는 농경민이었다. 이 차이가 옷에 대해 필요로 하는 기능의 근본적인 차이를 가져왔다.
▐ 맥고려 지역은 유목을 할 수 없는 지형이다. 기록을 보아도 맥고려는 오곡이 잘 되는 곳을 찾아다녔으며 토지와 곡식의 신 그리고 농업을 관장하는 별을 숭배했다고 나와 있다. 그리고 수렵과 채집 단계의 생산력으로는 나라를 세울 수 없다. 맥고려는 농업을 기반으로 하되 낮은 생산력을 읍루처럼 약탈로 보완하였을 뿐이다.
2515#11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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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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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50± 무용총
○ 웃옷은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것과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것 두 가지가 있고 바지는 헐렁하되 발목 부위에서는 죄는 방식이며 남자는 머리 쓰개에 깃털 장식을 하기도 하였다. 옷에 점박이 무늬를 한 것이 특이하다.
○ 긴 새깃으로 머리를 장식하는 것은 중국 사천의 한나라 벽돌 그림에서도 발견되고 미국 원주민에게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삼한시대에 긴 새깃으로 쓰개를 장식하는 것은 동북아에서 고려 이외의 나라에서 발견된 적이 없다.
2515#1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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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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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0539 職貢圖(閻立本)
왼쪽으로부터 신라, 고려 그리고 백제의 사신이고 그 다음이 양나라 황제다.
옷은 신라, 고려 그리고 백제가 거의 동일하고 양나라도 다른 나라에 비하면 비슷한 편이다.
특히 목 아래가 쐐기 모양으로 파여 있는 모양은 그 부분을 둥글게 감싸는 중앙아 사신들의 옷과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네 나라의 옷이 비슷해진 이유는 한반도에 400여년이나 존재했던 낙랑군을 통해 중국 문화가 고려와 한국으로 퍼져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2515#1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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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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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日本書紀(720)
가라가 신라와 한 편이 되어 일본을 원망하였다. 가라왕은 신라 왕녀를 아내로 맞아 드디어 자식을 두었다. 신라가 처음에 왕녀를 보낼 때에 100인을 함께 보내어 왕녀의 종자로 삼았다. 받아서 여러 현에 나누어 두고 新羅衣冠을 착용하게 했다. 아리사등이 服을 바꾼 것에 화를 내며 사신을 보내어 되돌아 가게 했다.
▶어떤 나라의 복장을 하느냐는 지배 세력들에게 예민한 문제였다.
2515#1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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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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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0± 埴輪(はにわ)
일본의 고분 시대는 기마 문화의 도입을 특징으로 한다. 그런데 말을 타려면 바지를 입어야 한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はにわ에는 바지가 잘 표현되어 있다. 왜인은 바지를 입고 중간쯤을 끈으로 묶었다.
윗도리는 아래위 두 개의 고름으로 고정하였는데, 이는 바지를 묶는 것과 함께 고구려의 벽화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방식이다.
바지 저고리 문화의 도입 경로가 고구려와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515#1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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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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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1626 官服
왼쪽부터 당태종, 원세조, 명태조, 조선태조 그리고 청태조의 그림이다.
조선태조가 입고 있는 옷은 당나라와 명나라의 官服과 같다.
이러한 官服은 정치적 이해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생활의 편리함이나 유행에 따라 변하는 민중들의 옷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한국의 왕조는 대체로 중국의 왕조와 협력하여 북방 민족들에 대처하였으므로 한국의 官服은 중국의 官服을 따랐다.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이 官服은 韓服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2515#14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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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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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6 隋書
人皆皮冠 使人加揷鳥羽 貴者冠用紫羅 飾以金銀 服大袖衫 大口袴 素皮帶 黃革屨 婦人裙襦加襈
사람들은 모두 가죽 관을 쓰는데, 사인은 새의 깃을 더 꽂고, 귀인은 관을 붉은 비단으로 만들어 금·은으로 장식한다. 옷은 소매가 긴 적삼과 통이 넓은 바지를 입으며, 흰 가죽띠에 노란 가죽신을 신는다. 부인은 치마와 저고리에 선을 두른다.
2515#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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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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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6 주서
남자는 소매가 긴 적삼에 통이 넓은 바지를 입고, 흰 가죽띠와 누런 가죽신을 신는다. 그들의 관은 골소(骨蘇)라고 부르는데, 대부분 자주색 비단으로 만들었고 금은으로 얼기설기 장식하였다. 벼슬이 있는 사람은 그 위에 새의 깃 두 개를 꽂아 뚜렷하게 차이를 나타낸다.
부인들은 치마와 속옷을 갖추어 입고 옷자락이나 소매에는 선을 둘렀다.
2515#2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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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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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9 북사 高句麗
사람들은 모두 머리에 절풍을 쓴다. 그 모양은 고깔과 같은데, 사인은 두개의 새깃을 더 꽂는다. 귀한 사람들은 그 관을 소골(蘇骨)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자주빛 비단으로 만들어 금이나 은으로 장식한다. 의복은 소매가 긴 적삼에 통이 넓은 바지를 입고 흰 가죽띠에 노란 가죽신을 신는다. 부인들은 치마와 저고리에 선을 두른다.
2515#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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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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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84 장회태자묘(章怀太子墓) 백라관과 새깃쓰개
새깃쓰개를 한 사신의 국적에 대해서는 신라라는 견해와 고려라는 견해가 병존한다. 차남이었던 이현이 태자로 책봉된 해는 형이 죽은 675년인데 이때는 이미 고려가 망한 후이기 때문에 고려의 사신일 수는 없다는 것이 전자의 논거다. 신라는 649년에 관복을 당나라 식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사신이 조우관을 썼을 수 없고 고려가 망한 후에도 고려왕은 요동도독조선군왕에 봉해졌기 때문에 고려의 옷차림을 한 사신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이 후자의 논거다.
2515#2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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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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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84 章怀太子墓
장회태자묘 묘도와 묘실에는 총 50여 폭의 벽화가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그 내용은 마구(馬球) 경기, 출행(出行), 객사(客使), 의장대(儀仗隊), 남녀시종의 그림과 같이 귀족의 생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그림부터 청룡⋅백호⋅일월성신 등 신앙적인 주제까지 다양하여 미술사에서 가치 있는 자료가 되고 있다. 벽화는 채색화가 많으며 우선 회벽에 밑그림을 그린 후에 연한 먹으로 윤곽선을 그리고 착색 후 먹으로 다시 윤곽선을 그리는 기법을 사용하였다.
2515#2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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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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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45 구당서 고려
의상과 복식은 왕만이 5채로 된 (옷을 입을 수 있으며) 흰 비단으로 만든 관(白羅爲冠)을 쓰고 흰 가죽으로 만든 소대를 (두르는데) 관과 대는 모두 금으로 장식한다. 벼슬이 높은 자는 푸른 비단으로 만든 관을 쓰고, 그 다음은 붉은 비단 관을 쓰는데 새깃 두개를 꽃고 금과 은으로 장식한다. 저고리는 통소매이고 바지는 통이 크며, 흰 가죽띠를 두르고 노란 가죽신을 신는다. 백성들은 베옷을 입고 고깔을 쓰며 부인은 머리에 건괵을 쓴다.
2515#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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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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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0 신당서 고려
왕은 5채로 된 옷을 입고 백라로 만든 관(白羅製冠)을 쓰며 가죽띠에는 모두 금테를 두른다. 대신은 청라관을 쓰고 다음은 강라관을 쓰고 두개의 새깃을 꽂고 금테와 은테를 섞어 두른다. 저고리는 통소매이고 바지는 통이 크며, 흰 가죽띠를 두르고 노란 가죽신을 신는다. 서민은 베옷을 입고 고깔을 쓴다. 여자는 머리에 건괵을 쓴다.
2515#2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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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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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3 三國史記(1145) 왕고
又宋使臣劉逵·吳拭来聘在舘 宴次見郷糚倡女 召来上階 指闊䄂衣·色絲帶·大裙 漢曰 此皆三代之服 不擬尚行 於此 知今之婦人禮服 蓋亦唐之旧欤
또 송 사신 유규와 오식이 내빙하여 숙소에 묵고 있을 때 연회에서 향장한 기생을 보고서 계단 위로 불러와서 활수의와 색사대, 대군을 가리키며 찬탄하여 말하였다. “이것들은 모두 삼대 옷인데, 여전히 쓰이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러한 것들로 볼 때 지금 부녀의 예복도 대개 당의 옛 것임을 알 수 있다.
2515#14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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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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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7~1806 漢服과 韓服
중국의 논갈이와 모내기를 그린 그림과 한국의 논갈이와 모내기를 그린 그림을 비교해 보면 매우 유사하다. 중국과 한국 모두 수시로 맨발로 무논에 들어가 작업을 해야하는 벼농사 농경민이다. 작업이 비슷하면 그에 맞는 옷도 비슷해질 수 있다. 말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기마 유목민과는 근본적으로 옷에 대해 필요로 하는 기능이 다르다.
2515#1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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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털
동북아인은 머리카락이 굵고 곧아서 그대로 기르면 거추장스럽게 된다. 그래서 머리카락을 정수리로 모아 묶는 상투가 일찍부터 틀어졌다. 각종 쓰개도 상투를 먼저 틀고 그 위에 씌워졌다.
진시황릉의 토용은 모두 상투를 튼 상태이며 마한이나 왜인에 대한 기록에도 상투를 틀었다는 설명이 나온다.
그러나 변한과 신라는 장발을 했다.
2515#1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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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한 초원에서 말을 타고 다니며 유목을 하는 사람들과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에서 벼농사를 하며 수시로 무논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의 신이 같을 수 없다. 가죽신과 짚신은 각각 기마 유목민과 벼농사 농민의 신을 대표한다.
2515#5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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